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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02. 2021

#11. 승진

욕심은 없지만, 남들보다뒤처지고싶지는 않아요.


입사 3년 차. 아직 승진은 남의 이야기 같다. 


다른 회사에 나랑 비슷하게 입사한 친구들은 벌써 대리들 달았다. 우리 회사는 큰 규모가 아니어서 그런지 승진연차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더군다나 남자들은 군 복무기간도 근무개월 수에 포함시켜주기 때문에 나와 같은 입사 3년 차 여자는 아직 승진을 꿈꾸지도 못한다. 남자 동기들도 2년 정도 더 근무해야 대리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여기서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난 군대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대리를 달기 위해서는 최소한 4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승진 발령은 내게는 관심 밖이었고, 향후 몇 년간은 그럴 것 같았다. 


우리 회사의 인사는 3월 정기인사와 9월 비정기 인사로 이루어진다. 보통 승진 같은 경우는 3월에 결정되고 9월은 인사이동이나 근무복귀 등과 같은 인사가 대부분이다. 3월을 앞두고 회사 내 가십은 최고치에 다다른다.


매년 2월 경,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는 역시나 3월 정기인사였다. 그 시기 대리급, 과장급들은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되었다. 혹시나 승진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소심족이거나 인사이동에는 관심 없는척하며 어떤 결과이든 만족한다는 쿨내족이었다. 그 틈에서 대리도 과장도 아닌 나는 그냥 그들의 가십을 지켜보며 응원 혹은 격려의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인사이동 시즌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아직 승진이 먼 나에게 직급이 뭔지, 입사한 지 얼마나 됐는지 온갖 질문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다들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큰 이슈이니 나한테도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승진 못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내가 승진을 꿈도 꾸지 못하는 연차라는 사실을 만인이 알게 되는 게 싫었다. 


박 과장님이 메신저를 보내왔다.

> 서현 씨. 서현 씨 입사한 지 몇 년 됐어? 

>> 저 19년 4월이요. 이제 3년 차요. 아직 승진은 멀었죠.

> 어머, 서현 씨 3월 정규 입사가 아니었어? 

>> 아, 네. 저 졸업일자 때문에 한 달 늦게 들어왔어요. 동기들은 3월이고요

> 헐. 서현 씨 잠깐 화장실에서 나 좀 볼까?

>> 네.


뭐지? 당황스러웠다.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박 과장님이 밖에서 따로 보자고 할 때는, 이 팀장이 군기를 잡을 때 혹은 심심해서 바람 쐬고 싶을 때였다. 근데 오늘은 그 둘 중 어느 곳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니 박 과장님이 나를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 칸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후,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 서현 씨. 서현 씨 혹시 우리 인사발령 3월에 나는 거 알지? 9월은 퇴직 이런 것만 나고 승급은 거의 안 나니까, 승진 인사발령은 3월이라고 생각하면 돼.

>>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전 아직 승진이랑 거리가 멀어서..ㅎㅎㅎ

> 응 그래. 알고 있어. 근데, 서현 씨 왜 하필 4월 입사지?

>> 그러게요. 그때 3월 입사였는데, 회사에서 제 졸업 서류 처리를 제때 못해줘서 4월로 밀렸어요. 그때, 합격한 후였는데, 서류 처리가 안됐다고 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한 달 동안 놀지도 못하고 노심초사였어요.

> 아 진짜? 하.. 그게 그렇게 된 거구나. 아니 내 얘기 잘 들어봐?


박 과장님이 하신 말씀은 이러했다. 3월 정기인사 때 승급 대상자를 년수로 따져서 계산하는데, 3월 정기 입사한 동기들은 승급 대상자가 될 수 있지만, 난 1개월이 부족해서 승급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동기들보다 11개월을 더 기다려야 대상자가 되는 것이고, 여기서 1년 뒤쳐지면 그게 계속 그다음 인사 때도 적용되어서, 내가 아무리 칼 승진을 한다고 해도 남들보다는 11개월이 늦는 것이라고 하였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그리고 입사할 때도 난 그저 입사를 시켜주는 것에 고마웠지, 나의 한 달 늦은 입사가 나의 회사생활에서의 위치를 달라지게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이를 알려주는 이도 하나 없었다. 단순 문서처리 지연이 나의 회사 인생에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이야. 이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누구에게는 일 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그게 본인의 일이 되어도 그럴까? 난 동기들보다 뒤처지는 게 없는데 한 달 덜 일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승진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거지 같았다. 인사팀에 항의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항의한다고 소문만 나지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술이 당기는 일주일이었다.


하필 일이 여기저기서 들어와서,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열의가 없어졌다. 어차피 잘해봤자 난 남들보다 느린 데 뭐. 열심히 할 이유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 그냥 했다. 해야 하는 정도만 딱 그 정도만 일했다. 일하는 보람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걸 눈치챈 건가? 이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팀장도 아닌데, 이 팀장은 유난히 여기저기 다 관심이 많다.


> 서현 씨, 요즘 일은 어때?

>> 괜찮습니다.

> 그래? 서현 씨는 인사이동이랑 상관없지? 서현 씨는 누가 승진할 것 같아?

>> 전 제 일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 하긴. 서현 씨는 입사 언제 했어?

>> 19년이요.

> 19년 3월이면....

>> 아니, 4월이요.

> 엥? 4월에 입사를 했어? 그때는 다 4월 입사였나?

>> 아뇨. 동기들은 다 3월인데 전 그렇게 됐어요.

(구차하게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 나만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 그렇구나. 그럼 서현 씨 남들보다 승진도 늦겠네? 어떡하냐?

>> 그러게요. 어쩔 수 없죠. 저도 얼마 전에 처음 알았는데 좀 억울하긴 하네요.

> 뭘 억울해~ 그렇게 일한 건데, 한 달 일찍 들어오지 그랬어?

  아니 서현 씨, 생각을 좀 긍정적으로 해 봐. 서현 씨는 20년 3월 입사자들보다 11개월치 월급을 더 받은 거야. 

  얼마나 좋아?


말이야 방구야. 니 일이라도 그렇게 생각할래? 저걸 조언이라고 하는 건가. 11개월치 월급을 더 받은 거라고? 난 이게 다 나의 회사생활로 쳐주는 줄 알았지. 누가 11개월치는 입사년차에 포함 안 시켜주는지 알았나? 11개월 동안 내가 월급만 받았어? 사람들 비위 맞추고 눈치 보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하냐고. 근데 그걸 내가 11개월씩이나 먼저 했는데, 왜 인정을 안 해주냐고!!!


회사생활에서 배운 점이 하나 있다.

조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 내 일처럼 생각해서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

2.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조언은 하고 싶을 때 하는 도움도 되지 않고 들을 필요도 없는 방구. 


난 회사생활에 큰 욕심이 없다. 적어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지는 않았고, 동기들은 다 승진하는데 내가 동기들한테 호칭을 달리하며 모시게 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가늘고 길게 일하고 싶었지만, 후발주자이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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