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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Jul 27. 2021

#8. 가족 같은 회사

가족이요? 그러니까 이러는 게 좋다는 거죠?

오늘이 그날이다. 대망의 생일파티.


우리 실은  22명으로 생일자가 없는 달이 하나도 없다. 생일파티는 보통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케이크랑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는 형태로 운영된다. 8살 이후에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회사에서 매년 내 생일을 챙겨준다.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아무튼 오늘이 그 생일파티다. 보통 같으면 케이크, 치킨, 피자를 시켜먹겠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실장님이 요즘 같은 시국에 놀러도 못 간다고 생일파티로 휴가를 대신하고 싶으시다고 옥상에서 먹자고 하셨다. 옥상은 입사이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원래는 안전상의 이유로 개방되어 있지 않지만, 실장님이 본인의 직위를 이용하여 일시 개방을 요청하였다. 정말 적극적이시다.


여기까지 좋았다. 어차피 먹는 거 회의실에서 옥상으로 위치만 바뀐 건데 뭐? 이런 생각을 한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난 아직도 쪼렙이다 생각하였다. 실장님이 날 따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 서현 씨. 우리 오늘 옥상 가서 뭐 먹나?

>> 배달음식 시키려고 합니다.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신가요?

> 서현 씨. 우리 오늘은 좀 특별한 거 먹는 거 어때? 부서원들도 그걸 좋아하지 않을까?

>> 아? 네.. 혹시 어떤 거며 좋을까요?

> 글쎄..

(답은 정해져 있다. 근데 왜 한 번에 말해주지 않는 거냐고)

>> 부서원들에게 의견을 구해볼까요?

> 그래, 그것도 좋겠다. 근데 순대랑 어묵 어때?

(순대+어묵 : 너희는 언제부터 친했니?)

>> 네네. 그럼 순대랑 어묵이랑 떡볶이 이렇게 시킬까요?

> 아 근데, 국물도 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럼 그냥 순대 파는 곳에서 순댓국이랑 순대 한판씩 사서 먹지~ 그런 데 밥도 나오잖아. 포장도 잘 되어서 나오고. 

>> 아? 순댓국은 저희가 인원이 많아서 먹기 힘들지 않을까요? 국자 같은 주방기구도 없어서

> 국자 하나 사지 뭐? 그거 두면 자주 쓸 거야~ 아니면 컵으로 덜어먹으면 돼.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순대랑 순댓국 준비하겠습니다.

> 서현 씨! 근데 순대만 먹으면 순대 싫어하는 사람 있을 수도 있잖아? 보쌈도 시키자. 

>> 네. 


순대+순댓국+보쌈이요?

10시 30분이었다. 점심은 적어도 12시에는 먹어야 할 텐데, 이 시간에 준비가 되는 곳이 있을까? 멘붕이다.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켰다. 배달 가능한 곳으로 아무 데나. 일단 시켰다. 2인당 1 순댓국, 3인당 1 모둠순대, 보쌈大자 4, 보쌈김치 8개 추가. 음료수 6병. 


완벽한 듯했다. 무조건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게 욕을 덜 먹는다. 남으면 지들이 가져갈 수 있으니까. 아씨. 생각해보니까 국자랑 움푹 파인 국그릇이 없다. 편의점을 털러 가야겠다. 회사 앞 GS25에 도착했다. 꽤 규모가 있는 곳인데 국자는 없다. 국자가 왜 있어. 평소에 편의점에서 국자를 봤으면 아마 이런 건 왜 파는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이소를 가야 한다. 다이소는 무려 횡단 번호 2개를 건너야 한다. 진짜 업무시간에 국자 사러 가는 거 실화? 친구들한테도 창피해서 말도 못 한다. 국자랑 일회용 국그릇 GET. 이제 모든 게 준비됐나?


사무실에 돌아왔다. 난 오전에 내 일 하나 못했는데 벌써 11시 30분이었다. 곧 순대랑 보쌈이 올 것 같다. 혹시 몰라 옥상에 올라갔다. 내가 입사이래 처음으로 접한 옥상은 정말 최악이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그냥 회색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옥상 딱 그거였다. 


하. 여기서 어떻게 점심을 먹냐고!

당장 의자랑 테이블도 없었다. 

비상이다. 비상벨이라도 울리고 싶다.


부서원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의자랑 책상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당장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그렇다고 바닥에 앉아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악이다. 실장님께 이 사태를 말씀드리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 실장님~ 말씀하신 대로 음식은 주문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옥상에 책상이랑 의자랑 아무것도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요..

>> 그럼 그 우리 사무실 의자랑 책상 옮기시죠~ 아 회의실 꺼 옮기면 되겠다

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극적으로 대답하셨다. 회의실은 6인용 테이블인데 그걸 누가 옮기나요? 실장님이 옮겨주실래요?라고 머릿속으로 답했다.

> 네..


우리 실 사람들 모두가 동원되었다. 옥상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책상과 의자를 욱여넣고 13층까지 올라갔다. 다른 층에서 멈춰 설 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숙였다. 혹여나 아는 사람이랑 마주칠까 창피해서. 13층부터는 계단으로 옮겨야 했다. 평소에 운동도 안 하는데 회사가 나의 건강을 챙겨주는구나 싶었다.


테이블보 대신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포장지로 대신하고 숟가락 젓가락 그릇들은 일회용품으로 구색을 갖췄다. 가장 중요한 국자는 가운데 자리 근처에 두었다. 혹여나 햇빛에 피부라도 상하실까, 하대리가 어디서 파라솔을 구해왔다. 하대리의 사바사바가 그를 지금 자리까지 이끈 것 같다. 


다행히 다 세팅이 되었을 즘에 음식이 배달이 되었다. 실장님과 팀장님들을 모셔왔다. 실장님이 옥상에 올라오시자마자 한마디 하였다.

> 아, 여기 뷰가 별로구나?


하..  그걸 이제야 아신 거예요?


실장님 팀장님들은 뭘 그렇게 많이 시켰냐고 입을 모아 말씀하시면서 코 박고 그 누구보다 게걸스럽게 먹었다. 이 와중에 순댓국이 식었다고 한마디를 하셔서, 난 또 국물을 들고 사무실로 내려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왔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혹여나 누군가와 마주칠까 봐 뒤돌아서 있었다. 


> 뭘 이런 걸 데워왔어?

아씨. 먹지 마!


예상과 달리 음식은 거의 남지 않았다. 다들 집에서 굶으시나 보다. 오늘이 치팅데이인 걸까. 나름 옥상 생일파티는 성황리에 끝났다. 오늘 집 가서 기도해야지. 제발 이런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다음 날 우연히 아래층 아라 씨를 만났다. 

> 서현 씨~ 어제 옥상에서 맛있는 거 먹었다며~

>> 아.. 네.. 엄청 고생했어요. 진짜 최악.

> 그니까 고생했겠더라. 근데 대박인 게 뭔 줄 알아요?

우리 실장님이 어디서 들으셨는지 옥상에서 보쌈 먹는 부서 어디냐고 아주 가족 같고 너무 부럽다고 하시더라?


가족이요?

다들 가족 집에 있잖아요.. 회사에 있는 건 가족이 아니라 동료예요.

"가족 같은"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전 가족들한테 이렇게 안해요. 그런 말 함부로 쓰지 마세요.


아? 그리고 가족들은 저한테 이런 거지같은 일들은 시키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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