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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05. 2021

#12. 똥 치우기 전문가

회사생활 3년 차, 여기저기 싸지른 똥 치우기 전문가가 되었다.

우리 회사는 매년 부서마다 지원금을 지급한다. 전년도 대비 부서 내 업무성과 성장률을 비교하고, 이에 차등하여 지원금을 지급한다. 이런 걸 지급한다고 일을 열심히 하겠나 싶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지원금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다.

하대리다.


하대리 : 88년생, 남, 미혼, 친구는 한 명도 없어 보임.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하대리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면 백실장 님의 위치를 파악해라. 하대리는 그만큼 백실장 님께 잘 보이기 위해 어딜 가든 백실장 님 옆에서 비서 노릇을 한다. 정말 꼴 보기 싫지만, 하대리는 저런 알랑방귀 작전으로 대리를 능력에 비해 빨리 달았다.


하대리는 부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성과 제출자료를 그 누구보다 부풀려서 작성하였고, 하대리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서는 50만 원이라는 지원 금음을 받게 되었다. 하대리는 본인 덕택에 받은 돈이라며 실 전체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 팀장님들은 그런 하대리가 예뻐 보이는지 하대리가 원하는 날 하대리가 먹고 싶은 것을 먹자고 하였다. 난 또 회식이 잡힌다는 소식에 우울했다.


하대리는 지원금을 받자마자 뭘 먹어야 하는지 언제가 좋은 타이밍인 지 주변 사람들한테 떠들어가면서 고민하였다. 어느 날에는 다 같이 먹기에는 역시 고기가 좋다면서 신흥 고기에 가자고 했다가, 다음날은 고깃집은 냄새가 너무 난다며 깔끔하게 양식을 먹자고 하다가, 그날 저녁에는 회사 돈으로 먹는데 매일 먹는 양식보다는 비싼 일식이 낫겠다고 아주 한 달 전부터 난리였다. 


메뉴 선정뿐 아니라, 실장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지, 팀장님들은 가시는 건지 인원 파악하는데 한세월이었다. 평소 같으면 다 같이 회식을 하라고 하겠지만, 팀장님들이 실장님 안 계실 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만 가라고 가식 가득한 멘트를 전한 바람에 하대리에게 회식을 잡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에게는 아주 크나큰 시련이었다. 그를 표현하자면, 더럽게 예민하고, 예의는 차리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는 못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지질함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한테 회식을 맡겼으니, 처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재앙이 밀려올 것을.


회식 한 달 전부터 식당과 회식 인원 일자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더니, 하대리가 나와의 의사결정을 통해 날짜를 정했다. 회식 당일이 되었다. 실장님, 팀장님들을 제외하고 시간 되는 사람들만 고급 일식집에 가기로 하였다. 


회식 당일이 되었다. 하대리가 9시 정각 즈음에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출근하였다. 난 그가 무슨 일이 있는 걸 직감하였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하대리한테 메신저가 왔다.

> 서현아~ 너 오늘 회식 갈 거지?

>> 네 가야죠~

> 아무래도 나 못 갈 것 같아. 오늘 반가 쓰고 퇴근하려고

>> 네? 그럼 회식은요?

> 못 가지. 여자 친구랑 싸웠어. 지금 당장 가봐야 하는데,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가려고.

>> 아 네. 알겠습니다. 

> 어쨌든 말 뱉어 놓은 게 있으니까, 네가 다들 모시고 잘 다녀와. 맛있는 거 먹고! 이런 기회 흔치 않다.

>> 네.

> 아 그리고, 나 오늘 급하게 반차 쓸 거니까, 나 오늘 반차 쓰는 건 쓰기 전까지 모르는 척 해.


갑자기 어이가 없었다. 내가 주최자도 아닌데, 갑자기 나한테 시킨다고? 알고 보니 장소며 시간이며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은 즉슨 처음부터 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인원 파악이 우선이었다. 


실 사람들한테 한 명씩 메신저를 하였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주현 씨한테 먼저 물어봤다.

> 주현 씨? 혹시 오늘 회식 가세요?

>> 네? 무슨 회식이요? 우리 오늘 회식 있어요?

> 엥? 하대리님한테 못 들으셨나요?


하. 큰일이다.

알고 보니, 이 소심 마왕 하대리가 주변 사람들한테만 슬쩍슬쩍 말하고, 부서 전체한테 말을 안 한 것이다. 그래서 하대리와 물리적인 위치가 가까운 사람들만 하대리의 혼잣말로 지레짐작하여 회식의 날짜와 위치를 알았을 뿐이었다. 심지어 정확하게 회식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 하나였다.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지원금이 얼마이고 인원을 어떻게 산정하며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난 오늘 하루 내에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걸 23명의 실 인원에게 안내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회식을. 


일단 인원부터 산정했다. 인원을 정해야 예산에 맞게 장소를 잡을 수 있으니까. 오전 내에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대리가 퇴근하고 난 후에 모든 걸 진행해야 했다. 본인이 반가 쓰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일단 오전에는 최대한 많은 인원이 먹을 수 있는 예약 가능 한 곳들을 리스트업 해놨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하대리는 박 팀장한테 가서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반가 쓰겠다고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을 하였다. 박 팀장의 오늘 저녁은? 하는 물음에 서현 씨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요?라는 답변만 남긴 채.

어이가 없었다. 내가 나서서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네가 시킨 거잖아!


오후 업무 시작하기 5분 전 부서 중앙에 서서 회식 일정을 공지하였다. 

> 하대리님 대신하여 공지드립니다. 저희 부서 지원금 50만 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정대로 오늘 회식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혹시 가능하신 분들 있을까요?

>> 오늘? 난 일정 못 들었는데?

>>> 오늘이라고 했어? 우리 지원금 받은 줄도 몰랐다~ 서현 씨 미리 공지를 하지 그랬어~

> 아 네. 하대리님이 공지하신 줄 알았는데, 제대로 안되었나 봅니다.

>> 근데 하대리는? 뭐 휴가야?

> 네. 몸이 안 좋으시다고 반가 쓰고 가셨습니다.

   회식 장소는 인원수에 맞게 정할 테지만, 후보는 일식집 00, 고깃집△△, 중국집 ☆☆☆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메일로 공지하겠습니다.

>> 서현아~ 너는 하대리가 뭉그적 대면 네가 알아서 다 처리해야지~ 당일에 공지하는 게 어딨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 네. 


난 똥 치우는 건데 똥 치우는 사람한테 뭐라고 하다니.


집이 멀거나 회식 자체를 싫어하는 20~30대 젊은이들은 안된다고 답변을 주었다. 오히려 집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팀장님들과 대리님들은 다 오신 다고 하였다. 입을 모아 회식은 너무 싫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당일에 회식 공지를 해도 팀장님들은 다들 필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식집 00으로 예약을 확정하고 선주문도 해놨다. 회식 인원은 총 10명으로 팀장님 3명, 아이 유치원에서 픽업하고 같이 온다는 박 대리와 집에 갔다가 오겠다는 김대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행히 백실장 님은 다른 회식이 있다고 하였다. 


일식집은 예약한 대로 세팅이 되어있었다. 나는 주최자라는 명목으로 팀장님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먹게 되었다. 팀장님들은 하대리는 왜 그러냐며 은근 험담을 하였다. 몸이 안 좋다고 하니까, 그래도 밥은 먹을 꺼지 않냐며 하대리한테 전화를 해보라고 하였다. 하대리가 먹고 싶어 하던 일식집인데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내가 바로 전화를 하지 않자, 이 팀장이 나서서 전화를 하였다.

> 하대리~ 우리 00 왔는데, 하대리 몸 안 좋다며~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여기 하대리가 좋아하는 곳이잖아~

> 그래~그래 알겠어


난 당연히 거절한 줄 알았다. 체면이라는 게 있으면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하대리가 10분 만에 나타났다. 

> 안녕하십니까~ 좋은 곳 오셨네요~ 

>> 몸은 괜찮아?

> 네. 속이 좀 안 좋았는 데 좀 쉬니까 괜찮네요.

>> 근데 집 여기서 좀 멀지 않나? 한 30분 넘게 걸릴 줄 알았는데,

> 근처에 있었거든요. 전화하셔서 바로 왔습니다.

>> 그래. 많이 먹어라.


이 대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대리의 별 볼일 없는 추진력 때문에 욕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많이 먹으라니 잘 왔다느니 마음에도 없는 말 투성이었다. 그리고 하대리는 무슨 낯짝으로 온 것일까. 나한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그가 싼 똥에 내가 이렇게 잘 치운걸 분명히 알 텐데 아무 말이 없었다. 


입맛도 없는 나는 금방 다 먹어 치웠다. 다들 실장님이 회식에 안 오셔서 그런지 일찍 일어나려는 눈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슬슬 정리하려고 하자 박 대리한테 연락이 왔다. 

> 하대리~ 나 지금 가는 중!

왜 지금 오는 거지? 이건 필참이 아닌 회식인데 왜 오는 거지? 


박 대리가 회식이 시작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났을 때 일식집에 도착하였다. 그것도 박 대리의 유치원생 아들을 데리고. 팀장들은 아들이랑 맛있게 먹으라며 집에 갈 채비를 하셨다. 

> 서현 씨~ 서현 씨가 박 대리랑 밥 좀 더 먹어~ 여기 이것저것 좀 시켜주고! 

   아, 서현 씨 좀 많이 먹었나? 그럼 서현 씨가 왕자님 밥 좀 챙겨줘 어린이 메뉴도 시키고

>> 네. 

박 대리는 신이 났는지 이것저것 다 시키며 먹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럽게 박 대리는 나한테 아들을 맡겼고, 난 밥 생각이 없는 아들과 놀아주면서 박 대리가 밥을 다 먹기 만을 기다렸다. 하나둘씩 일이 있다며 집에 가고, 나와 김대리 김대리 아들 이렇게 셋이 남게 되었다. 하대리 역시 나한테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집에 갔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소규모 2차 회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대리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집에 갔다. 난 혼자 남아서 결제를 하였다. 65만 6천 원. 더럽게 많이 나왔다. 5만 6천 원은 나중에 회의비 처리를 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최악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대리의 똥을 치우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똥을 치우는 내가 아닌 똥을 싸는 사람들한테 고생한다고 하는 걸까. 


이제는 정말 온갖 종류의 똥을 치워봤으니, 다음 똥은 두렵지도 않았다. 난 똥 치우기 전문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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