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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25. 2021

#20. 사무실 간식

시켜달라는 대로 시켜줘도 지랄이야

#20. 사무실 간식


우리 실은 자체적으로 간식을 시킨다. 간식이라고 하면 과자, 컵라면, 간편식, 음료수 등이다. 이런 건 언제나 막내 담당이다. 어느덧 과자를 시킨 지도 2년이 넘어간다. 처음에 간식을 시킬 때,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맛있는 것을 엄선하여 구매하였다. 이왕 시키는 거 맛있는 거 먹자는 주위였고, 나름 과자를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사무실 간식을 맞이하는 자세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고든 램지 형

새로운 과자를 시킬 때마다 미식가라도 된 것처럼 품평회를 열곤 한다. 

"이건 후추 맛이 너무 강해서 자극적이긴 하네. 그래도 타사 신메뉴보다는 이게 노력을 한 것 같네."

"음.. 여긴 옥수수 향이 확 나는데? 마니아 층이 확실히 있겠네."


두 번째. 불평불만형

어떤 걸 입에 넣어도 불평을 쏟아붓는다.

"과자회사는 일 안 하나. 무슨 매일 똑같은 맛만 만드는 거야. 이런 건 나도 만들겠다. 안 먹어보고 파나?"

"어후~ 이건 너무 맵다. 과자를 이렇게 맵게 만들면 도대체 먹으라는 거야 뭐야. 이것 봐 00 씨도 먹다 버렸네. 도저히 안 되겠나 보다."


이런 반응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린다. 난  업무시간을 쪼개서 과자를 산 건데, 그걸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정말 예의가 없는 것 같다. 고든 램지 형의 평가가 듣기 싫어서 평범함 과자를 시키면 불평불만형들이 매일 똑같은 과자라며 강제로 먹으라고 시키지도 않은 과자를 먹으면서 불평을 해댄다. 그렇다고 불평불만형을 만족시키려고 평이 좋은 신메뉴를 시키려고 하면 고든 램지 형은 앞으로 그 과자의 시장 장악 가능성을 논한다. 


이렇다 보니 난 점점 과자 선택에 열의를 갖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먹고 싶은 과자들이 있어서 이를 시키면 부서원들이 맛있는 건 알아서 내가 과자 구경도 하기 전에 이미 다 해치워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부서원들은 회사에서만 과자를 먹는 것 같다. "허니버터 아몬드"가 유행할 때 소량의 아몬드를 구매하였는데, 모두들 신문물을 접한 듯 눈이 뒤집혀가며 흡입하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평소에는 과자를 구매한 경험이 없으며, 새로운 과자를 접하는 건 부서에서 내가 구매했을 때뿐이었다. 


사실 나처럼 먹는 걸 좋아하고 맛있는 걸 골라먹는 사람이라면, 사무실 5분 컷인 GS25에서 편 스토랑 신메뉴나 핫바 등 간식으로 자주 구매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사무실에 간식이 없어서 배고프다고 울부짖어도 아무도 편의점 가서 먹을 걸 사 올 생각을 하진 않는다. 유행한 지 반년은 지난 "꼬북 칩"을 시키면 사람들이 "이게 그 광고했던 그 과자구나~! 이거 뭐야 맛이 여러 가지야? 뭐부터 먹어야 해?"라며 5살 어린아이처럼 과자를 양손에 들고 자리에 간다. 


이렇다 보니 맛있는 걸 사야겠다는 의욕은 점점 사라지고 과자를 선택할 때 무조건 양이 많은 것에 먼저 손이 가게 되었다. 한 6개월은 고든 램지와 불평불만 이들이 뭐라고 하든 듣지 않고 그냥 꾸준하게 과자가 떨어지면 똑같은 걸로 리필해 놓는 패턴을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자가 점심시간 화두가 되었다.

> 서현 씨, 요즘은 유행하는 과자 없어? 맨날 똑같은 과자만 먹으니까 좀 질린다.

불평불만형의 대명사 이 팀장이었다. 맨날 똑같은 과자를 시켜도 맨날 똑같이 하루에 4봉씩 먹는 그였다. 

>> 아. 뭐 딱히 없어서. 그냥 무난한 거 위주로 시키고 있어요.

> 다음에 시킬 때, 레모네이드 좀 시켜줘. 요즘 덥잖아

김 팀장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먹보 수현 씨가 거들었다.

>>> 서현 씨. 난 단 거 좋아해서 트윅스 알지! 아 아님 자유시간이 낫나? 그래 자유시간으로 부탁해


이렇게 레모네이드, 자유시간, 맛동산, 맛밤, 크라운산도 주문을 받았다. 난 입력받은 명령 값 그대로 배송을 시켰고, 한동안 잠잠할 간식 불만들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내 기대는 과자가 배송이 온 날 사라졌다.


자유시간이 배달 왔길래 잘 정리해서 과자함에 넣어놓았다. 혹시 녹을까 봐 일부는 냉장고에 넣어놓을까 잠깐 생각하였지만, 누구 좋자고라고 되새기며 자리에 앉았다. 과자 배달이 온 줄 알고 수현 씨가 바로 과자함으로 달려왔다. 

>>> 아! 트윅스는? 내가 트윅스 부탁했잖아요, 수현 씨.

>> 아니 그때 자유시간 말씀하셔 가지고.

>>> 난 트윅스 말한 거였는데, 척하면 척이지 수현 씨. 트윅스가 더 달고 맛있는데, 다음에는 트윅스로 부탁해요.


"시켜달라는 대로 시켜줘도 지랄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오늘도 꾹 참았다. 마스크 덕분에 표정이 가려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음부터는 시켜달라는 거 품절돼서 못 시켰다고 해야겠다며 소심한 복수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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