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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24. 2021

#19. 사내연애

만남 주선했다가 친구도 회사 동료도 잃었다.

입사 초반부터 동기 박진영이랑 제일 친했다.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대화가 잘 통했고 무엇보다 둘 다 회사에서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의지가 컸다. 난 이런 박진영한테 인생선배로서 의지도 하고 힘든 일 있을 때마다 고민도 토로하며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친구들을 공유하고 스케줄을 다 꾀고 있을 만큼 친밀했고 그 사이는 점점 더 깊어졌다. 내 친구들 중에서 박진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박진영에게 회사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다. 난 사내연애는 안된다며 마음을 접으라고 거듭 말하였지만, 그분은 완벽한 박진영의 이상형이었다. 나한테 다리 좀 놔달라고 몇 번이고 애걸복걸하였다. 나도 전혀 일면식이 없는 분이었지만 같은 여자, 입사 초년생 등의 공통점으로 다리를 놓아 안면을 트는 데 성공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이유빈. 얼굴만큼 이름도 예뻤다.


이유빈 : 95년생, 여, 미혼, 입사 1년 차, 여자가 봐도 예쁨.


박진영이랑은 무려 6살 차이이고, 아무리 친구라지만 같은 여자 입장에서 박진영에게 소개해주기는 아까운 비주얼이었지만, 난 그동안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박진영과 이유빈 씨와의 만남 자리를 주선하였다. 그냥 선후배끼리의 만남으로 포장된 이 만남은 나름 잘 이루어졌고, 우리는 셋이서 세 번의 만남을 지속하였다. 그 만남 속에서 나는 정말 주선자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유빈 씨는 남자를 대하는 데 선수였고, 내 앞에서도 박진영한테 꼬리를 치곤 하였다. 덥석 손을 잡기도 하고 술에 취했다고 기대여서 집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런 유빈 씨의 성격을 알고 나니 내 동기 박진영은 좀 더 조신한 사람이 어울릴 것 같았지만, 이런 말을 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박진영이 그녀에게 흠뻑 빠진 것이다. 이게 벌써 1년 전 이야기이다. 


박진영과 유빈 씨는 그 이후에도 종종 둘이서 따로 만나면서 관계를 유지하였다. 박진영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나한테 시시콜콜 데이트 얘기를 하였고,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유빈 씨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알고 보니 유빈 씨는 정말 반전이었다. 단둘이 처음 만났을 때, 박진영 옆자리로 와서 먼저 스킨십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박진영이 사귀자고 하였을 때 자기는 아직 아니라며 튕겼다고 한다. 사귀고 나서는 무조건 비밀연애를 하자고 하면서 혹여나 한 명이라도 알게 되면 자기는 퇴사할 거라며 강하게 나왔다고 한다.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둘이서 만날 때도 유빈 씨는 박진영한테 존댓말과 진영 씨라는 호칭을 유지하였고 남들이 있을 때는 아예 모르는 척하였다. 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본가에 간다며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지 않았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예쁘고 성격 좋고 어린 유빈 씨가 동기한테 아깝다고 생각하였지만, 동기 박진영 입으로 들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이유빈=여우"라는 공식을 만들어버렸다. 사내에서 연애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더군다나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를 만난 동기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박진영은 말로는 온갖 불평을 다 터 놓았지만, 유빈 씨와 연애를 꾸준히 하고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결혼 얘기까지 한다고 하였다. 


1년 정도의 연애기간 동안 박진영과 내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연애하니까 시간이 줄어들었겠지 생각하였지만, 알고 보니 이유빈 씨가 나와 가깝게 지내는 걸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박진영이 의도적으로 나와의 거리를 둔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 건 박진영뿐 만이 아니었다. 나도 회사 사람과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기 싫었다. 박진영은 회사 사람이기 이전에 친구라고 생각하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공유한 건데, 그는 이를 여자 친구와 공유하였다. 그래서 가끔은 여자 친구가 이런 의견을 줬다며 나한테 피드백을 해주기도 했는데, 난 그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비밀연애를 추구하는 그들 때문에 난 그들의 연애를 모르는 척해야 했지만, 이런 사소한 이야기는 공유를 한다니 너무 모순적이었다. 아마 유빈 씨도 이러한 이유로 나와 박진영의 친밀함을 경계하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이 둘의 만남으로 불편해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들이 결혼까지 가든 말든 난 유빈 씨와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회사 동료로 만나기 전에 친구의 여자 친구로 만났기 때문에 혹여나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만에 하나 그들이 헤어지고 내가 유빈 씨랑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얼마나 껄끄러울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러한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 그 부부와 내가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사실 그것도 의문이었다. 


박진영과의 관계도 어색해졌다. 이제는 예전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도 없었고 서로가 신경 쓰는 데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었다. 가장 친했던 동기가 이제는 가장 어색한 동기가 되어버렸다.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고자 했던 마음이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그 소개가 나의 회사생활 전체를 껄끄럽게 할 줄은 몰랐다. 


난 만남을 주선해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동기도 잃고, 친해질 수도 있었던 회사 동료도 잃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어색한 회사 동료 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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