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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23. 2021

#18. 업무량은 월급의 반비례

일은 하나도안 하면서왜 제 월급의 두 배를 받는 거죠?

여름은 정말 싫다.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이 좋았고, 햇빛을 쐬는 걸 즐겨하였지만 입사 이후 여름은 나에게 더 이상 반갑지 않은 계절이 되었다. 업무에도 시즌이라는 것이 있다. 루틴한 업무 외에 특정 업무가 몰리는 기간을 시즌이라고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여름이었다. 


난 기획실에서 회의체나 컨벤션 등의 개최 및 운영을 담당한다. 평소에는 정기 회의를 진행하면 되지만, 반기가 지나는 시점에는 여러 회의가 봇물 터지는 듯이 생겨난다. 또한 외부 업체와의 미팅도 주로 반기 실적 발표 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으로 더운 날은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빵빵한 에어컨 아래에서 줄곧 회의만 한다. 


이번 주는 특히 여러 일정들이 맞물려 있어서, 자리에서 주식창 한 번 켤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회의 일정을 잡고, 안건을 논의하고 자료를 만드는 것까지 나의 몫이었다. 일이 많을 때는 상대적으로 매우 피곤하고 퇴근 후에 기진맥진이 되어 바로 뻗어버리기 일수였지만, 9시간이 4시간처럼 빨리 가고 업무시간 내 잡생각 없이 일만 한다는 보람도 있었다. 


나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묵묵히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전화벨 소리와 메신저 때문에 정신이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할 때도 있었지만, 다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정도였고 큰 부담 없이 일을 하나씩 쳐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 실장님이 갑자기 박 팀장님을 부르셨다. 우리 회사와 외부 업체, 지자체가 협업하여 진행하는 사업에 관해 얘기하시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 프로젝트는 2년 넘게 진행된 것으로 박 팀장님이 과장 시절에 추진한 것이었다. 


오늘도 실장님은 열정적이시구나.라고 생각하고 다른 업무처리를 하고 있는 찰나 박 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 서현 씨. ☆☆☆ 프로젝트 들어봤지?

>> 네. 들어는 봤습니다. 한 2년 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 아닌가요?

> 맞아요. 오늘 이사님이 실장님한테 이거 관련해서 물어봤나 봐. 진행사황 공유하자고. 오늘 2시에 회의 집행부 회의 때 얘기하신다니까 준비해.

>> 네? 두시요? 두시면 10분밖에 안 남았는데요?

> 응 그니까 인쇄하고 준비해놔. 인쇄는 다섯 부 정도 하면 될 것 같아요. 


당장 무엇을 인쇄할지도 몰랐다. 인수인계 때 받았던 파일 중에 제목을 보고 대충 아무 ppt나 인쇄를 하여 박 팀장님한테 전달해드렸다.

> 서현 씨. 가자.

>> 네? 저도 들어가요? 

> 그럼. 빨리 따라와요.


당황스러워서 무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몸은 팀장님을 따라가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급하게 뽑은 ppt를 한 장씩 읽어보며 어떤 프로젝트인 지 조금이라도 확인해보려고 하였다. 이사님들이 들어오는 회의에 참가하는 건 처음이라서 오늘 입은 딥블루 티셔츠가 너무 포멀 하지 않게 보일까 봐 걱정되었다. 온갖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어느 새난 회의실 구석에 앉아있었다.


실장님이 박 팀장한테 오늘 발표는 누가 하나?라고 물어보자, 박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 담당자인 서현 씨가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서현 씨가 준비하였습니다.  

박 팀장이 날 쿡쿡 찔렀다.

> 서현 씨. 뭐해요? 발표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걸 가지고 발표를 하게 생겼다. 정말 무슨 내용인 지 모르는 데 발표를 듣는 대상은 이사님들이었다. 이사님들 대상으로 하는 첫 발표였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ppt를 보고 그냥 그대로 읽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회의는 계속되었다. 난 회의 중에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지나간 지 모르게 한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이제 한 숨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정신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박 팀장의 행동 하나하나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본인이 맡은 일을 나한테 떠넘긴 것도 모자라 갑자기 집행부 앞에서 바보를 만들지 않나. 모든 것이 상식 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보다 박 팀장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고, 본인 일인데 이걸 나한테 사전에 말도 없이 떠넘기다니. 그 와중에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하는 것도 짜증 났다. 


자리에 앉아서 이제 남은 일들을 처리하는 데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은 정말 빼박 야근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회의에 시간을 허비했고, 안 그래도 처리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일분이라도 빨리 퇴근하기 위해서 일에 집중하였다. 근데 박 팀장은 또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 서현 씨. 아까 회의한 거 회의록 써서 결재 올리세요. 그리고 실장님한테 보고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내일 보고할 수 있게 자료 만들고. 

> 아! 서현 씨는 보고 안 들어가도 되니까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실장님 보고 진짜 힘든데, 내가 서현 씨 위해서 들어간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본인 일인걸 나한테 미루는 건데,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한테 시키고 보고는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다. 생색은 자기가 내고 일은 내가 하는 꼴이다. 보고는 본인이 하고 싶어서 들어가는 거면서 날 위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것이 더 화가 났다.


사실 이런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 더 화가 나는 건 일에 대한 배경 설명도 없이 직전에 그냥 일을 툭 던졌기 때문이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2년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를 난 최대한 빨리 공부해서 보고서까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이건 주말 출근 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일을 하고 있는데, 박 팀장은 정말 자리에서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김 팀장한테 자식들 얘기를 하다가, 또 이 팀장한테 백신 얘기하고 하루 종일 자리에서 입만 나불거렸다. 일은 나한테 다 시키고 자기는 놀기만 하는 형국이었다. 


박 팀장은 내가 여름에 이렇게 바쁜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업무를 사원 시절 해보기도 하셨고, 어쨌든 팀 내 업무분장을 팀장님이 하셨기 때문에, 업무 일정은 머릿속에 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러니까 더 화가 났다. 


팀장이라는 보직이 일은 덜 하더라도 책임을 지기 때문에 월급을 많이 받는 거라고 한다. 근데, 박 팀장은 일이 터지면, 바로 발 뺄 스타일이다. 문서 그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고, 불리할 것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일도 안 하고 책임도 안 질 거면 무슨 명목으로 내 월급의 두배를 받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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