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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사과꽃 필 무렵에는....

강물이 흘러가듯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가니 이혼의 아픔도 아물어져 가고 바야흐로 계절은 새로운 봄이 왔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봄날이다. 영진이 농장으로 들어서자 흰색과 연한 분홍색을 띤 사과꽃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 주었다. 흔히 사과꽃은 봄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영진은 이곳에 오는 길에 양조장에 들러 막걸리 두 말과 수육 등의 안주를 준비했다. 해마다 이맘때 이곳 사과 농장에서만 개최하는 단합대회 겸 연례행사의 하나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연구원 일도 바쁠 텐데 뭐 하러 힘들게 와. 한가할 때 천천히 오면 되지.”          

“괜찮아요. 바쁜 업무도 별로 없어요. 아버님.”          

“아휴~~~ 우리 사장님 말씀만 저렇게 하시지. 아침부터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옆에 있던 농장 관리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다른 인부 몇 명은 차에 실어둔 막걸리와 수육을 가져와 사과나무 아래 긴 탁자를 펼치고 음식을 차렸다.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영진의 식욕을 끌어당긴다.     

지금은 4월 중순이다. 어느 농촌이나 한가한 때가 없겠지만 특히 과수 농가들은 이맘때쯤이면 고사리 손길도 필요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      

오늘도 장인어른과 농장 인부들은 새벽부터 사과나무 가지 옆쪽 꽃에 수분을 주는 인공수정 작업을 위해 손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사실상 이 작업이 가장 메인으로 한 해 동안 사과 수확의 승패를 결정한다. 사과꽃이 필 때 수정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과가 달리지 않을 경우도 있고 또한 병충해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올해 사과꽃이 활짝 피는 시기는 4월 16일 전후다. 오늘을 위해 지난 1주일은 과수원 잡초 핀 꽃을 미리 제거했다. 이는 곤충이 사과꽃 쪽으로 이동해 더 원활히 수분 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기온 변동에 따른 저온 피해와 과수화상병 예방을 위해 인공수분은 검증된 꽃가루로 하고, 꽃가루 운반 곤충이 과수원을 서로 이동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          

사과꽃 피는 시기는 사과나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4월 중순에 핀다. 물론,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어 같은 지역이라도 만개 기는 과수원 위치가 기준 해발고도보다 100m 높으면 2일 정도 늦고 반대로 낮으면 2일 정도 빠르다. 또한, 해발고도가 같더라도 햇빛이 잘 드는 남향 경사면과 찬 공기가 머무르기 쉬운 분지 지형의 만개 시기는 또 다르다. 해당 지역 농협도 비상이 걸리는 시기지만 농장 사람들도 바짝 긴장해 주의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과수 농가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 연구소에서는 해마다 봄철 기상자료를 분석해 개화기를 예측하는데 올해 밀양지역은 연초부터 꽃이 필 시기를 미리 발표했었다.          

영진의 대산 연구원 뜰에도 각종 꽃과 여러 종류의 나무와 함께 사과나무 일곱 그루가 심어져 있다. 경윤과 결혼하던 해 기념으로 장인어른의 농장에서 가져온 묘목이다. 영진은 해마다 텃밭에서 조금씩 가져온 흙에다 퇴비를 섞어 주고 수시로 물과 영양제, 거름을 주면서 더 알뜰히 보살폈다. 그래서일까? 가지마다 생기가 돌고 잎이 무성해지면서 한 그루의 늠름한 사과나무 모습을 갖추어갔다. 그리고 해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달았다.   

올 초봄에도 영진이 가지치기를 해주었더니 새순이 돋아나고 4월인 지금에는 하얀 꽃망울을 수북이 달아 연구원들의 기쁨이 되고 있다.           

“와. 이모님! 전이랑 음식이 정말 너무 맛있어요.”          

“하하~~~ 그래. 우리 영진이한테 칭찬받으니 기분 좋네....”          

농장 관리 이모님은 영진의 말에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을 비롯한 농장 식구들은 이혼한 지금도 그를 편하게 생각하며 한 가족처럼 대해주고 있다.          

“이혼해도 경윤과 이혼한 거고 우리 인연은 인연대로 이어가는 거지....”          

“암. 그렇고말고. 당연지사를 왜 거론해.”          

영진이 이혼하기 전에 장인어른을 찾아뵙자 마을 어르신들이 더 안타까워하며 더러는 눈물짓기도 했다. 특히 이모님은 올해 예순다섯의 나이로 아랫마을에서 살고 있으면서 오래전부터 농장의 안 살림을 도맡아서 해왔다.      

원래 조용한 성격인지 부끄러움을 잘 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말수가 적은 편으로 지금까지 영진을 친아들처럼 자상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특히, 음식솜씨 또한 매우 정갈하고 맛이 좋아 칭찬이 자자했다. 이모님은 그날 이혼 얘기에 마침내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흐느껴 울었다.        

그 무렵이 5월이었던가? 6월이었던가?     

농장으로 들어오는 신작로에는 사과꽃 대신에 하얀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여기저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무렵이었다.          

“경윤이 탓이겠지. 모자라는 년....”          

직접 장인어른을 뵙고 이혼하게 되어 “죄송하다.”며 잘못을 빌고 용서를 청하자 아버님은 잠깐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보며 혼자 말씀하셨다.      

영진은 촉촉하게 젖어있는 아버님의 눈을 보면서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결혼 전부터  “내 사위가 아니라, 아들이다.”라고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소개를 했었다.           

“영진아. 네 상처가 너무 깊어 질까 봐 걱정스럽구나!”          

“아버님. 별일 없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내가 못난 딸년 때문에 염치가 없지만 너한테 부탁 하나만 하자.”          

“네 아버님!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여기가 너의 집이라 생각하고 내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가끔 와줄 수 있겠니?”          

“아버님.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행여 힘든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말을 해 다오.     

 나는 언제나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으마!”          

“네, 아버님!”          

영진은 마치 자신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차피 영진이나 경윤도 창창히 많이 남은 날들을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마음이 가라앉으면 각자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재혼을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일을 지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손자 손녀라도 있었다면 늘어나는 재롱에 쓸쓸함도 잊을 수 있을 것인데 불행히도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          

아버님은 사랑에 상처가 많은 분이다. 아내가 떠난 후, 농장 일에만 몰두해 있었지만, 하루하루 늙어가며 단 하나의 자식인 경윤을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당신의 사랑은 갈기갈기 찢어져 바닥에 뒹굴어 온 지 오래되었다.      

영진은 더 이상의 상처를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비록 이혼은 했어도 묵묵히 무거운 가방을 자신이 들어주리라는 결심을 했다. 자신도 일찍이 조실부모했기에 장인어른을 아버지 이상으로 생각하며 따랐다. 그렇게 그날은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끊어야 할 시기는 경윤이 재혼할 때가 될 것이다.          

사과나무 작업을 마치니 7시가 되었다. 오랜만에 육체노동을 한 영진의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렇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농장 사람들은 모두 영진이 힘들까 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이다.          

“힘들지? 좀 쉬면서 해.”          

“그럴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모님은 농장 이곳저곳을 분주히 뛰어다니면서도 영진의 얼굴에 송글 송글 맺혀 있는 땀을 수시로 닦아주었다.     

거실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그새 졸았던지 시간은 벌써 아홉 시를 훌쩍 지나고 있다.          

“영진아.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야지.”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뜨니 거실이다. TV를 보고 있던 장인어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진을 보았다. 그리고 이모는 물을 따라다 영진에게 주며 바닥에 앉아 물 마시는 영진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영진의 동작 하나하나에 그를 아껴주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2층에는 영진과 경윤의 방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혼하던 해 신혼부부를 위해서 새롭게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방으로 이어진 테라스가 있어 언제든지 농장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셔도 좋은 그런 공간이었다. 둘이서 욕실 가운 차림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어둠에 덮인 농장을 보면서 위스키를 마시기도 했었다. 

지금도 경윤은 농장에 들릴 때마다 꼭 이 방에서 자고 간다는데 한 여름밤 펼쳐지는 별들의 향연은 특히, 환상적이었다.     

가끔 아버님은 2층으로 올라와 혼자서 방도 둘러보고 소파에도 앉아 있다고 했다. 언젠가 이 방에만 들어설 때면 경윤의 아기 때 모습과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난다는 말을 했었다. 두 팔을 벌리며 아장아장 걷던 어린 아기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 추억의 공간인 것이다.     

반면에 영진에게는 서로의 몸을 안고 수없이 상대의 이름을 불러대며 사랑을 맹세했었던 약속의 공간이자 사랑의 장소다.     

얼마나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을 했었던 곳인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예. 아버님! 편하게 자고 가겠습니다.”          

영진은 농장에 올 때마다 자신이 이렇게 사랑받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커튼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둘의 방에는 아직도 자신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랑을 나눌 때의 땀 냄새와 달달한 꿀 냄새가 범벅이다. 그리고 경윤의 몸에서 나던 사과꽃 향기가 창문으로 날아왔다. 그때가 새삼 그립다.      

꿀벌들이 사과 꽃향기를 맡고 달려들던 그 시절, 서로를 안고 바라보며 나누던 키스에 하나 되던 날들을 생각하며 영진은 그리움에 온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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