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영 Apr 19. 2024

영진과 경윤

영진이 아내 경윤을 만난 것은 연구원에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보통 책임연구원을 그 연구원의 “꽃이자 얼굴”이라고 부른다. 경윤은 책임 연구원인 최 박사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다.      

그동안 영진을 옆에서 지켜봐 온 최 박사는 변함없는 성실함이 마음에 든다며 그녀를 소개해 주었다. 당시 경윤은 지방대학의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시립 미술관의 큐레이터(curator) 일을 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전시 기획자로 흔히, “설계자”로 불리며 ‘트렌드’라는 유행을 실질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뭐 좋아하세요? 맘에 드는 걸로 시키죠.”          

처음 만난 날, 영진이 메뉴판을 건네며 물었다.           

“그냥 편한 대로 시켜요. 저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지만 꺼리는 것도 없어요.”        

대산시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가격대가 높아서 연구원 월급만으로 살아가는 영진은 특별한 날에만 큰마음 먹고 가지 않으면 자주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소개해 준 최 박사의 체면을 고려해 자신의 형편으로는 조금 과하게 선택했다.

솔직히 영진은 경윤이 감동할 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더구나 30분이나 늦게 도착했어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었다.     

영진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웃음 띤 얼굴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 경윤을 맞이했다. 식당 안에는 저녁 시간이어서 손님들이 엄청 많았지만, 그들 중에서도 경윤의 모습이 단연코 으뜸이었다. 뭇 사내들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 쏠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그런 현실을 즐기는 듯했다.      

이탈리아 요리는 가장 발 빠르게 세계화를 이루어낸 요리 중 하나이다. 특히 서양식의 랜드마크가 되어 버린 피자와 스파게티, 서브마린 샌드위치는 전적으로 대표적인 메뉴이다. 물론, 이탈리아 현지인들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본토 음식과는 거리가 확연히 멀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어때요? 장소가 마음에 드십니까?”          

영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괜찮네요.”          

그녀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투로 짧게 대답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무안해진다.      

영진은 다가온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한 후, 식당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나눌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반면에 창밖의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휘몰아치고 있다. 매번 느끼지만 시내는 번잡하고 시끄럽다. 좋게 말하면 분위기가 더 대담하고 역동적이다.           

“드세요.”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영진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손으로 가리켰다.          

“네. 감사합니다.”           

경윤은 영진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마치 1%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또한, 더 이상 영진을 상대로 말을 나누고 싶지 않은 듯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는 성격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눈치를 살피면서도 자신의 꿈이라던가 연구원의 업무는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부분까지도 얘기하며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렸다. 경윤도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같이 더 있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는 것임을 진작에 눈치챘다.     

와인을 몇 잔 마시고 난 후에서야 영진은 처음으로 경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은 경윤도 그때 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어 영진을 보았다. 기분 좋은 포만감인지 약간은 풀어진 모습이다. 영진은 속으로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눈동자가 유난히 검었고 입술이 얇았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고 어두웠다. 문득 그녀의 얼굴을 밝고 반짝이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마음이 닿으면 진실이 통하는 법인지 그날은 둘이 작정하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 후로 짬짬이 영진의 차를 타고 바다 근처로 향했다. 

대산 광역시에서 사는 재미 중의 하나가 지천으로 널린 “예쁜 블루”다.           

자원순환 시행계획 용역은 대산시가 녹색도시를 선포하기 위해 야심 찬 정책을 발표하기 위한 사전 밑그림이다. 자원의 생산단계부터 재활용까지의 폐기물 관리를 자원 순환형으로 전환해 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하면서 순환이용을 촉진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동안 시청 관계 공무원, 유관 기관,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몇 번의 보고회를 거쳐 최종 보고서가 완성된 것이다.      

또한, 현 정부에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탄소중립을 녹색성장 전략추진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기존 ‘탄소중립 위원회’를 ‘탄소중립녹색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었고 다소 무리수가 있을 법도 같은데 목표 달성의 최전방에 원전을 내 세우고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대산 발전 연구원은 정부의 방침대로 2030년까지의 연도별, 부문별 감축목표를 구체적으로 자료를 들어 제시해야 했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시민의 공감대 형성과 이해, 그리고 자원의 재활용과 탄소중립 실천을 유도할 당근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오로지 대산광역시의 몫이다.     

이 한 권의 용역 결과물에는 영진이 밤샘하며 고생한 그간의 시간과 땀이 담겨있다.

그리고 앞으로 추진해야 할 대산시의 다양한 폐기물 시책과 자원순환 제도 조기 정착을 위한 방안, 재원 조달 방법 등도 담겨있다.          

김 박사와 함께 용역 발굴 결과물을 들고 시청 담당부서를 찾았더니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던 뚱중년 과장이 환한 미소를 띠며 극진히 환대했다.         

“아이고..... 우리 두 분 박사님! 그동안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용역의 댓가는 부산시로부터 받은 1억 원이다. 물론, 돈의 액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한권의 책으로 시민들의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의 물결이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영진의 이름도 용역서 결과물에 당당히 등재되었다. 

연구원에 입사 후 첫 번째 작품이었다. 오죽했으면 인쇄소에서 따근한 결과물을 받았을 때 혼자서 감동 했을 정도다.      

물론, 경윤의 오피스텔에서 둘이 만났을 때도 자랑삼아 이 책자를 전해 주었다.          

여자의 요염한 시선만으로도 남자는 달아오른다. 그것을 경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영진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서는 마치 분화구에서 시뻘건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침내 의도를 알게 된 경윤이 불의 열기에 붉어진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나 스커트 부터 벗어던졌다.          

입사 후 곧바로 맡은 과제에 충실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첫 용역 과제를 마무리 짓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니 연구원 일도 생각보다 강도가 덜했다. 맡은 업무에 따라서는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부족함 없이 개인의 취미 생활과 가정생활을 영위하며 지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복장도 사회인 기준으로 봤을 때 캐주얼 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추어진 모습 탓에 NERD(너드)스러운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또한 오산이다. 물론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영진은 솔로였다. 정확히 얘기하면 주변에 친구들은 여럿이 있었지만, 성별이 여자는 없었다. 그동안 몇 명의 여자들로부터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하는 느낌은 있었어도 절대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영진의 마음이 먼저 끌리는 여자도 있었지만 진도를 뺀 적은 없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가난했기 때문에 연애도 사랑도 이 모든 것들을 버리며 살아온 영진이다. 그동안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등의 보편적이고 낡은 감정 따위는 느낄 여유도 없을 만큼 힘겨운 일상을 살아 온 그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이미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다스리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대학 입학 후부터는 틈틈이 과외를 해 용돈과 독서실비, 책값 등을 벌며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먼저 생각하고 뒤에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다. 

그런 손자를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늘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언제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 손자의 삶이 애처로워 한숨이 그칠 날이 없었고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날도 없었다. 그러나 영진은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학업에도 열중했고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었으며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 영진이 경윤을 만난 후부터 최고의 관심사는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뭘 해주면 경윤이 기뻐할지 등에 대해서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고 살피며 관계 유지를 위해 수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영진의 장점 중의 하나는 뭐든지 한번 꼽히면 죽기 살기로 제대로 붙어보는 사람이다.          

“경윤 씨는 인상이 선해 보이면서도 참 예뻐요.”          

잘 다듬어진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영진이 말했다. 사람은 통상적으로 『선하게 보인다.』든가 아니면 『예쁘다.』 둘 중 하나인데 경윤은 둘 다 포함되었다.     

두세 사람이 어깨를 비비고 걸을 만큼 작은 오솔길에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닷 물결 출렁이는 파란 바다 위에는 하얀색의 요트들이 출렁이는 파도 따라 넘실대고 있다. 조만간 경윤과 같이 요트 위에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한층 업~~ 된다.          

“너무 과한 말씀인데요. 그래도 기분은 좋아요.”          

피식 웃으며 영진의 팔짱을 끼었다. 경윤은 영진의 마음과 행동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영진 또한, 경윤과 그동안 몇 번을 만나고 보니 그녀는 애교가 무척 많은 여자였다. 특히 눈웃음이 매력적인 여자다.           

“연구원 일이 힘들지 않으세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연구에 몰두하잖아요.”          

“전혀요. 그건 대개 과학기술자들이 그렇지. 보통은 케바케가 적용되어요.”     

“사실, 우리 연구원들은 높은 업무 강도가 마치 연구원의 상징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   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괜히 일이 바쁘다고 말했다가 경윤이 지레짐작으로 연애를 포기할까 봐 사전 연막을 친 것이다.               

“나 먼저 샤워할게.”     

영진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옷을 훌훌 벗어 던지는 경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만난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때이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발전하기 위해 영진은 모든 걸 제쳐두고 경윤에게 달려가 시중을 들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은 항상 대접받는 여자로 느끼게끔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윤의 도톰한 핑크빛 젖꼭지가 매혹적이다. 그러고 보니 허리도 유달리 잘록해 몸의 볼륨감을 돋보이게 한다. 샤워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더욱 싱그러웠다.      

남자에게 알몸을 보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미 둘은 한 번의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경험이 있었다.

바로 덤벼들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자신도 욕실로 들어가 대충 비누칠만 하고선 옆에 누웠다.           

“나 어때?”          

경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침대에서 내려가 자신의 몸을 보였다. 저토록 멋진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남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훌륭해. 너무...... 경윤 씨... 몸은 진짜 예술이야.”          

정면을 응시하면서 영진이 입술만 달싹이며 말했다. 두 눈은 어느덧 이글거렸고 입안에 침이 잔뜩 고였다. 그녀가 자신의 애를 태우려고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려들었다. 경윤은 이런 자극을 좋아한다. 열에 들뜬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경윤이 입술을 벌렸다. 잠시 입술을 붙이고는 바로 떼었다. 몸으로 그녀를 덮어 맞닿은 곳마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녀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키스를 하고는 그녀의 손을 탱글탱글한 젖가슴 위에 올리고 손가락 사이로 젖꼭지를 물고 빨아본다.      

경윤도 영진의 몸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은 채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영진이 가슴을 장난스레 꽉 움켜쥐었다.      

“아야~~~” 하며 경윤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흘긴다.      

이미 영진의 아랫도리가 팽창할 대로 부풀어 올랐다.           

헐떡이던 그녀가 자신의 침과 윤활액이 묻어 번들거리는 물건을 맘껏 유린하다가 스스로 질 입구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질 속은 무척이나 뜨거웠고 희뿌연 애액은 회음부 골짜기를 타고 내려 항문을 거쳐 시트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박음질을 시작하자 얕은 신음소리와 함께 경윤의 몸이 뒤틀린다.      

순간 영진은 텍스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 없다.      

콘돔 안에 뜨거운 물을 넣고 입구를 묶으면 대용량 손난로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해 친환경적이라고 말했던 대기환경과학과 전공 연구원의 술자리에서 하던 농담이 박음질을 한창하고 있는 영진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이전 03화 대산시 연구원 입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