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영 Apr 19. 2024

서로 헤어진 까닭은....


“이혼 신고서가 정상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영진이 시청으로부터 문자를 수신했을 때는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막 책상에 앉으려던 타이밍이었다. 특별히 슬픈 감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합의된 결별이라 해도 “상처는 그저 상처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실수로 스마트폰에서 스팸 메일을 열었을 때의 찜찜한 기분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제 흔히 말하는 “완전한 돌싱”이 된 것이다.      

직장 내에서는 이미 이혼남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쓸데없이 주눅 들 필요도 없고 눈치 볼일도 없다.           

영진은 아내 경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사랑은 여전한 진행형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다만, 이혼까지 이른 것은 흔히 얘기하는 “성격차이”가 더 컸다. 늘 FM의 삶을 살아온 자신과 달리 너무 자유분방한 성격의 경윤은 특히, 성에 대한 관점이 서로 많이 달랐다.      

영진은 사랑 없는 섹스를 단순히 육체적인 욕구만을 해소하는 지각없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생각해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반면에 경윤은 결혼 후에도 문란한 생활을 이어가 영진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차츰 트러블이 생겼고 결국은 그들의 다름으로 인해서 헤어지게 된 것이다.     

경윤은 오래전부터 정기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남자가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친구들과 집 가까운 정육 식당에서 댕기풀이를 겸한 모임을 하고 나서 자정 무렵 경윤의 오피스텔을 찾아갔던 그날에도 둘은 서로의 몸뚱어리를 자극하는 동물로 변해서 영진이 온 줄도 모르고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묻고 혀로 씻고 있는 애인의 머리를 감싸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뒷날 경윤은 대학 동기이자 친구라며 김종호를 소개했다.     

경윤의 성적 방종과 문란함을 뻔히 알면서도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첫사랑이자 첫정이기도 한 그녀의 밝고 강하게 반짝이는 매력에 홀딱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 후에는 규범에 둘러싸인 세상에 살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처럼 아내의 룰을 지키며 가정에만 충실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경윤은 영진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바람을 피우며 다녔다. 영진과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섹스는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으로만 생각했기에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없이 끝없는 남자사냥에 나섰다.     

감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 수를 헤아리자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아마도 경윤의 감정은 로버트 플루치크의 마음 바퀴(Feelings Wheel)에서처럼 복합적으로 섞여 나오는 감정인 듯했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자극을 경험하려는 듯 자신이 좋아할 만한 남자라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설혹, 마음은 없어도 몸은 부담 없이 그들과 어울렸다. 밤늦게 돌아온 경윤의 몸에서는 상큼한 워시 냄새가 자주 풍겨왔다. 

그럴 때마다 영진은 자신의 욕망과 일시적인 성적 충동으로 인해 자기 조절과 통제를 잃었던 것뿐이라며 애써 이해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영진은 결혼 초기에는 이런 생활을 즐기는 경윤에게 더욱 헌신했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랑을 알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어느 날 섹스를 하고 나서 아직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경윤의 몸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자기를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행복하고 좋으니.”          

“뭐가... 당신이 이쁘게 봐주니깐 그런 거지. 사랑해....”          

경윤이 영진의 머리를 껴안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 눈앞에서 다른 남자랑 뒹구는 현장을 들켜도 그녀는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할 것이다.          

“잠자리에서 항상 똑같은 패턴이 만족스럽질 않지?”     

“당신은 그러려니 하며 참고 사는 거야?”          

갑작스러운 영진의 물음에 경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눈동자가 잠시 잠깐 흔들렸다가 곧 고정됐다.      

막상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이란 걸 한 후에는 아내라는 속박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며, 또한, 경윤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엘리자베스 알론은 그녀의 책 'The Power of Self-Love’와 ‘The Power of Self-Confidence’에서 자기애와 자신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허락하는 만큼 당신은 놀라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녀의 말은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자신을 부정하거나 비하하면, 능력과 재능을 제한하고 낮추게 되며, 반대로 자신을 긍정하고, 칭찬하면, 우리의 능력과 재능을 활용하고, 키우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허락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제발 잊지 말고....”     

결혼 생활 4년 동안 영진은 아내 경윤이 더 이상의 방황을 끝내고 자신에게만 안주하기를 원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잠시 부는 바람은 반드시 짧게 스쳐 지나는 것뿐이니깐.     

바람기 많은 아내 때문에 많은 날을 초조해하며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경윤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믿어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것이 영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때로는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만지고 키스를 하고 뜨거운 몸을 안고 클라이맥스의 폭발하는 경윤을 자신의 삶에 차곡차곡 채워 두었으며 어디든 경윤과 같이 가고 싶어 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배려했던 마음이 결국은 소통의 부재로 이어져 유행가 가사에서처럼,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랑이야.”가 되었다가 둘의 마음 깊은 곳에 큰 생채기를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사랑도 문자로 하고, 이제는 이별까지 카톡거리고.....”하는 것은 이별의 가벼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별은 가벼운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똑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또한, 어떤 이별에 대해서도 의연한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이별 후 느끼는 감정의 단계가 틀린다고 한다. 여자들은 헤어진 초기에 슬퍼해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정리하고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선다. 

반면 남자의 경우는 처음에는 해방감을 즐기지만 이내 공허함을 느끼고 이별을 후회하며 헤어진 여자에게 다시 만나자고 간청을 하기도 한다.      

막상 영진은 아내와 헤어지고 나니 애틋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시기부터는 경윤에게 지쳤다는 핑계로 같이 살면서도 그녀의 생각과 행동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때때로 아프게 저려 왔다.      

둘은, 이혼에 앞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의논하기 위해 차 한잔을 함께했다. 다시 만났을 때 경윤은 세상의 모든 걸 품은 것처럼 행복한 여자의 얼굴이었다.          

영진은 일상적인 질문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넘겼다.     

“별일 없지? 몸은 괜찮아?”     

“네. 그럼요. 영진 씨는 괜찮지?”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영진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구에게 물어도 이혼에 따른 잘못이 큰 것은 경윤이었지만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은 있어?”     

아무리 부부 사이였어도 이혼한 마당에 뜬금없이 묻는 경윤의 속마음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없어.” 짧게 답하고는 더 이상 다른 것은 물어보지도 않고 일어섰다.      

“당신 짐은 모두 따로 챙겨뒀어요.”          

경윤이 차를 마시고 헤어지면서 선심 쓰듯이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체크 아웃해서 “빨리 짐 빼”라는 소리로 여겼다. 경윤이 차라리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진이 집을 나올 때 우선 필요한 짐만 간단히 챙겨 나온 것이다. 지금은 연구원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을 하나 정해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지만, 조만간 정식으로 계약이 성사될 것이다.          

“짐은 금방 뺄 수 있어.”           

별 볼 일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혼자 피식 웃었다.      

순간, 늦가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더운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둘이 결혼 생활을 정리하면서 특별히 악한 마음이나 서로 미워하면서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다만 가끔은 몸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게 된 것은 자신의 못난 놈의 정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도 오래 사귄 연인이라고도 본다면 4년을 같이 살았다면  그만큼의 시간이 쌓여 오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헤어지는 이 순간에도 약간은 남았을 것이다. 진짜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사랑했었기에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가을에는 참 많은 사람과 이별이란 걸 했다.          

그날 저녁 7시, 대산 시청 앞 해물탕집을 예약했다. 

그 가게는 손님이 많아 언제나 시끌시끌했다. 연구실 팀원들과 술을 한잔 마시기로 했던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왁자지껄한 곳이 낫겠다는 꼰대 오 팀장의 달갑지 않은 배려지만 영진이 자주 찾는 식당으로 맛이 있는 데다 가격도 적당한 곳이다.          

“인생이라는 거 생각하기 나름이야. 이제 시작인데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뜻에서 오늘 술은 내가 사는 거야.”           

팀장이 술잔을 권하며 힘주어 말했다.          

“이제는 쓸데없이 허비되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더 바삐 몸을 움직여야겠다.”     

팀장이 주는 잔을 받으며 영진은 생각했다.               

그날 밤늦은 시각, 

직원들과 헤어진 영진은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유흥업소를 찾아 여자와 같이 이차까지 갔다. 호텔에 들어와서도 둘이서 양주 한 병을 반 병쯤 나눠 마신 영진은 오늘따라 컨디션도 정신도 말짱했다.

반면에 양주를 대여섯 잔 마신 그녀의 얼굴은 불빛을 받아 더욱 붉어졌다. 나이는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스물셋, 스물넷 정도로 보이니 막 피어난 봄꽃 같은 나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옷을 벗고 있는 그 여자의 가녀린 몸을 바라보고 있어도 쾌락과 섹스보다는 너무도 허망하게 보낸 날들이 괜히 서글퍼졌다.        


같은 날 저녁, 경윤과 은원은 인근 도시에 있는 갈빗집에 앉아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식당은 둘의 단골 아지트다. 

골짜기 중턱에 세워진 곳이지만 풍수로 치자면 배산임수의 전형이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제법 깊은 강물이 있으며 근처에는 자연 휴양림과 등산로가 있었다. 그렇지만 평일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생각보다 드문 곳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50M쯤의 거리에는 최신식 모텔이 들어서 연인들이 은밀히 즐길 수 있는 세트 코스다. 객실 안의 창문으로는 사방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경윤이 은원에게 전화를 한 게 저녁 5시 무렵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먼저, 은원을 찾는 일이 없었기에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미리 와 있었던 경윤의 얼굴은 술에 취한 듯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은원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을 때 경윤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없어. 그냥 한잔하고 싶었어.”          

맞은편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옆자리에 앉기를 권한 경윤이 은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기야! 나 지금 하고 싶어.”           

“응. 여기서? 아이고 좋아라.....”           

괜히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맞장구를 치느라 반기는 척 대답했다.          

“진짜 여기서 할까?”          

그렇게 말을 하면서 경윤도 따라 웃었다. 어떤 유혹이 있어도 남편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었는데 윤리적으로는 정말 아닌 것 같다며 생각을 했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또 옆에 앉아 있는 은원의 벗은 몸을 상상하니 짜릿한 욕망이 샘솟는다.     

어쩌면 색기를 주체하지 못해 남편과 어린 자식까지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와 야반도주했던 엄마라는 한번 본 적도 없는 여자의 더러운 피를 이어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은원은 경윤의 어깨를 말없이 감싸 쥐었다. 잠시 말을 멈췄던 경윤이 가늘게 숨을 뱉더니 소주병을 들며 잔을 권한다.           

“우선 한잔 마시자”          

달달한 갈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오늘따라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슬픈 표정을 보이는 경윤이다.           

“무슨 일이야. 오는 동안 정말 걱정했어. 말해봐.”           

은원이 웃음기 싹 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까지 봐 온 경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경윤의 손을 잡아 식탁 위에 올려 포개 놓은 채 거듭 재촉해서 묻자 그때 서야 경윤이 입을 연다.    

“나, 이혼했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목소리가 건조하게 들린다. 마치 남의 얘기하듯이 시크하게 말을 했다. 최근 남편은 그냥저냥 연구원 일에만 매달려 살았고 굳이 섹스도 의무적으로 하듯이 대충 서둘러 끝내는 경우가 많았기에 예전의 짜릿한 느낌은 다시 오지 않았다. 연애할 때와 신혼 초만 해도 부지런히 자신의 몸을 찾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해서 말도 없어지고 뒤에는 잠자리도 겨우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다.      

애인을 셋이나 둔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같이 있다가 헤어지면 이내 가슴 한구석에 쓸쓸함이 쌓였고,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우연히 인연이 된 남자들과도 가리지 않고 몸을 섞었다.      

남자는 외도를 하면 상대 여자에게 몸만 주고 마음은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여자의 경우는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남자에게 몸이 가면 마음도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

은원과의 관계도 그랬다. 처음에는 별 죄책감 없는 단순한 일회성의 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차츰 자신도 모르게 결혼 생활에 충실하지 못했고 사랑 따로, 몸 따로 식이 되었다가 이내 자신의 현실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윤은 날이 갈수록 도덕적인 양심 따위는 한 올 만큼도 없었다. 오직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행복했으니 현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경윤의 외도가 잦아질수록 어쩌다 맞추진 남편과는 점차 서로에 대해 일절 참견 없이 무덤덤하게 지내게 되었으며, 둘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인 듯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흘 전, 경윤은 아무 말 없이 출근하는 남편의 등 뒤에다 대고 통보하듯이 말했다        

“나. 만나는 남자 있어요.”          

순간 남편은 고개를 돌려 경윤의 얼굴을 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경윤은 외면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편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알고 있었어.”           

그동안 경윤의 행동을 보면 바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남자가 있다며 직접 밝힐 정도면 하룻밤 스쳐 가는 인연이 아니라 가슴에 깊게 스며든 남자라는 말일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순간 아득해지는 영진이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경윤도 당황스러웠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남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고 불안해  마음이 심란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이 손바닥 뒤집듯이 쉬운 말은 아니지 않은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반드시 상대를 배신한다지 않았던가?”         

자신에게 당연히 가시 돋친 말을 뱉어낼 줄 알았는데 그날 아침 이후 지금까지 남편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오늘에서야 카톡을 보내왔다.      

“세상 사람 누구도 몰라도 스스로를 알고 있지 않나. 당신이 얼마나 많이 참아왔는지.     

 그동안 고생 많았어.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로 매듭짓자.”          

남편의 이혼 통보는 간결했고 깔끔했으며 부가적인 수식 또한 필요 없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더니 함께 했었던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지듯 언제부터인가 부부로서의 감정은 이미 끝내고 있었다. 어쩌면 영진의 마음은 이미 몸도 마음도 떠난 경윤을 억지로 붙잡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은원과 경윤은 식사를 하면서 소주 세 병을 같이 마시고 곧바로 모텔로 들어왔다. 

경윤은 이미 식당에서부터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한꺼번에 옷을 벗고 침대에 몸을 던지며 은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온몸을 꿈틀거리면서 재촉했다.      

이미 한 마리 암고양이가 되어 앙칼진 비음을 토해내며 몸부림친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두 다리를 벌리고 밑에서 꽃잎을 빨아대던 은원이 경윤의 재촉에 몸 위에 포개며 올랐다. 드디어 합쳐진 것이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방안은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가 계속 쌓여 더욱 뜨거워졌다. 경윤은 두 눈만 감고 있을 뿐이지 몸의 구성요소 모든 부위가 깊고도 넓게 열려 있었다. 은원도 벌어진 그녀의 입에서 길게 뻗어 나온 혀를 미친 듯이 빨았다. 둘의 거친 탄성과 신음이 어지럽게 방안을 맴돌고 있다. 

이윽고 절정을 향해 달리던 그녀는 “악~~”하는 참을 수 없는 외마디 탄성을 뱉어내더니 폭발했다.      

그녀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질 못해 부들부들 떨리며 팔다리까지 놔 버렸다. 그리고 은원도 몸속의 수분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간 듯한 것을 느끼며 경윤의 몸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          

“자기야. 사랑해.”          

깊고 깊은 여운이 다 사라질 때까지 은원의 품에 안겨 있던 경윤이 겨우 더운 숨을 뱉으며 말했다. 은원은 말없이 그녀의 눈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따뜻한 손길에 몸이 다시 반응한다. 자신의 알몸이 부드러운 그의 눈길과 손길을 받고 있다.          

“참, 이쁘다.. 언제 봐도 예뻐. 넌...”          

가볍게 입술을 포개며 은원이 말했다. 다시 한번 오늘 밤은 그의 손길에 녹아내릴 수 있고 거친 몸짓에도 마음껏 소리를 토해낼 것이다.          

경윤은 이제야 괴로웠던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외간 남자를 가볍게 접촉한 것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기대감으로 흥분했었지만 새로 만난 남자들도 딱 그뿐. 

자신을 껴안고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는 놈들을 보면 곧바로 시들해지기 일쑤였다. 

여자의 몸에만 관심 있는 남자와 여자의 정신까지 이해하려고 하는 남자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은원을 만난 것이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1년 전이다. 

경윤이 그동안 하고 있었던 헬스를 그만두고 새로운 운동을 하겠다며 테니스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첫 레슨을 받던 날이었다.      

테니스는 대중화가 되었다지만 아직은 많이 보급된 스포츠는 아니다. 

또한 정석으로 레슨을 시작해야만 되는 운동이다. 한마디로 은원은 그녀에게 즐거운 테니스 라이프의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다.      

물론, 친절하면서 키도 크고 잘생긴 은원의 외모도 호감도를 높였다. 세 살 연상의 자신을 챙겨주고 남편보다 더 말을 많이 들어주었다. 

그녀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관심과 응원을 나타내었다.      

경윤은 잦은 대화를 하면서 은원의 내면적인 특징에 더욱 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부담 지울 생각 없어요. 편하게 친구처럼 대하면 돼요.”          

살갑게 챙겨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저녁 식사를 마련한 자리에서 유부녀임을 밝히자 그가 한 말이었다.

호주에서 사업하다가 최근 귀국했다는 그는 서른 살의 한창이다. 아직 미혼이었으며 에이전시를 준비 중이라고만 했다.           

“그 대신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밥 좀 챙겨주시면 안 될까요?.”          

결국 밥값을 그가 계산하자 미안해하는 경윤에게 가볍게 웃으며 한 말이다.     

혼자 있으니 매일 식당에서 사 먹는 생활이 싫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그 말속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경윤은 생각했다. 그리고 은근한 기대감이 생기는 것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 후 운동하러 갈 때마다 따로 반찬을 만들어 챙겨 갔다.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을 냉장고에 정리해 주며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섹스까지 하게 된 것이다.      

“암컷은 수컷의 냄새를 맡고 자신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쪽을 고른다.”      

경윤은 영진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부터 이미 남자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사람이란 게 처음 한 번이 어렵고 두렵지만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면 습관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일상이 되어 버린다. 경윤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의 익숙한 손길에 몸도 마음도 녹아내렸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이미 은원에게 마음이 기울어진 경윤은 그의 손과 혀가 몸에 닿기만 해도 달아오르고 구름 위를 둥실 떠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같이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들이댈 때면 목에 매달려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의 품에서는 항상 대접받는 여자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연애 시절에는 영진에게서 귀한 공주 대접을 받으며 지내왔다.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탄탄하고 다부진 몸은 시각적으로 만족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활활 타오르게 해 매번 열락에 들뜨게 했다.      

어쩌다가 그를 며칠 동안이나 만나지 못하면 퇴근한 남편의 저녁을 챙기기보다는 자기 방에 들어가 은원과의 통화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더해졌다. 

그런 날에는 자신의 껍질을 모두 벗겨 내고 쓰다듬는 손길과 젖가슴을 물고 엉덩이를 받쳐 들고 쑤셔대는 그의 몸을 생각하며 자위를 끝내야 겨우 잠이 들곤 했다.          

남자만 가을을 타는 게 아니다. 가을에는 여자들도 많이 흔들린다. 

집 밖을 나서면 수없이 많은 유혹이 넘쳐나기 때문에 현재의 가정이나 삶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여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때론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이기적일 때도 많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물론, 그녀는 당연히 이기적인 그런 부류의 여자다.      

경윤이라는 여자는 “외도를 꿈꾸고 외도를 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01화 우연한 만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