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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대산시 연구원 입사

영진이 첫 과제를 맡은 것은 정식 연구원이 된 후, 4개월이 막 지났을 무렵이다. 대산시 발전 연구원에서 석사 이상의 자격을 갖춘 연구원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을 가르치던 대학교수의 추천을 받아 반신반의하며 지원했다.     

당초에 그는 사회학이나 역사학 연구원을 선호했다. 탐구형과 관습형의 자신의 적성에도 잘 맞고 인간 집단의 행동과 발달, 사회적 문제 및 구조와 사회 집단생활에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문화적 특성을 가려내고 대안을 모색하는데 흥미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길은 한번 잘못 들어서면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낯선 곳으로 가다 보면 헤매고  다니기 마련이다.”          

영진도 젊은 혈기만 믿고 쉽게 던졌다가 두어 번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했다.     

다행히도 그는 계약직으로 채용되었다가 곧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일반적으로 정규직이 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환경분야에 새로 개설된 자리가 생겨 곧바로 정규직이 된 것이다. 순전히 운빨이 좋았던 경우다. 그 시기에는 국립대학교를 비롯한 연구기관, 진흥원 등에서 교수직 및 일반직 특채 채용공고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한꺼번에 몰렸던 것도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후 4개월 남짓 기간의 짧은 경력으로 곧바로 용역 개발에 직접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례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케이스로 다른 동료들에게는 시샘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하듯 선임들도 한 눈 깔고 쳐다보며 꽈배기 꼬듯이 비비 꼬았다.           

“영진 씨? 무슨 든든한 뒷배경 있는 것 아냐?”          

“쟤가 보기는 순해도 억척스러운 데가 있어서 나중에 뭐가 돼도 안 되겠나?”          

“제 까짓게 뭘 안다고 벌써 과제를 맡는다는 말이야....”     

이럴 때일수록 연구원에서 혼자 고고한 척하다가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영진이 회사 오너로부터 신임을 얻자마자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어 자신을 따돌림하지 않았던가? 이미 아픈 경험을 해본 영진이다. 이제는 동료들의 호흡에 맞추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영진을 두고 자신들의 걱정과 기대를 비빔밥처럼 버무린 뒷얘기들을 쉽게 해댔지만, 자신의 직속 상사이기도 한 최 박사만큼은 누구와도 잘 사귀는 영진의 밝은 성격과 작은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항상 배려하고 격려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최 박사가 없었다면 가슴 한가득 부풀렸던 처음의 용기와 각오는 어쩌면 점점 사그라들어 콩알만 한 점이 되어 의기소침하게 변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잘하면 될 거야. 상처받지 말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너의 그 성실함을 지키는 거야.”       

영진은 언제나 자신을 먼저 챙겨주는 최 박사를 평생토록 “큰 형님이나 삼촌처럼,,,” 의지하며 살리라 생각했다.     

연구원에서 한 단계 승진하면 선임 연구원이 되고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석 연구원도 될 수 있다. 최 박사는 현재, 대산시 발전 연구원의 책임 연구원이다.     

흔히 수석 연구원을 일반 회사에서는 임원급 직급이며 군대에서라면 스타(장성)급 포지션이다. 명문대학교의 정교수처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연구원은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며 연구 성과가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경우에는 큰 성취감을 안겨다 준다.     

연구원이라는 직업은 힘들고 어렵기는 해도 사회적 지위도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직업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식 연구원이 된 영진이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드린 것은 자신의 힘으로 얻어낸 자부심과 성취감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절을 올리고 무덤 앞에 섰을 때 영진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한 것이다.     

대산발전 연구원은 지방자치 단체 출연연구원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곳이고, 먹고사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듯이 더러는 별난 기질의 연구원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사무실 분위기는 좋았다.      

영진의 첫 과제인 『대산광역시의 자원순환 시행계획』은 환경단체와 유기적인 협력과 협의가 매우 중요한 일의 하나다. 시민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는 지역사회의 문화와 전통, 자연 자원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대산 연구원에서 자원순환계획에 대한 현장의 자문을 듣고자 왔습니다. “          

영진이 씩씩하게 환경단체 사무실의 문을 밀어젖혔다. 한가한 듯 보이는 사무실에는 여섯 명의 사내들이 소파에 앉아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사무직원인 듯한 여자 혼자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뽀얀 우윳빛 살결은 초여름의 풀처럼 상큼하면서도 싱그러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바깥 날씨는 반대로 찌는듯한 온도였다. 일기예보에서는 예년보다 더위가 일찍 찾아올 것이라며 연일 떠들어 대었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매끈한 다리를 보기 좋게 드러낸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영진과 그동안 전화 통화로만 몇 번 주고받았다. 그녀는 환경단체 회장을 비롯한 일행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중에 낯익은 얼굴이 먼저 반색하며 아는 체를 했다. 얼마 전까진 대학에 겸임으로 있으면서 연구원 일도 더러 맡아서 해주던 임성훈 교수다.          

“어. 김 연구원, 오랜만이네요....”          

“아이고~~~ 교수님. 여기 계셨네요?”          

항상 세심하고 친절했던 그는 오늘도 영진을 환경단체 관계자들에게 한 사람씩 정중하게 다시 소개해 주었다. 그의 소개로 잠시나마 어색했던 시간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국장을 소개했다. 다시 보니 짙은 갈색 머리에 커트를 한 모습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사무국장 손정미입니다.”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듯 한자씩 또박또박 읊었다. 열린 커튼 사이로 따가운 햇살이 움직임을 설핏 멈추었다.     

정미가 건네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원순환 시행계획의 취지를 설명한 후,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환경단체의 의견을 달라며 요청했다. 일행 중 누군가는 더러 실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부지런히 대답해 줬다. 그럴 때마다 임 교수는 판소리에 추임새를 넣듯이 간간이 영진을 추켜세웠다.     

자칫 어렵고 껄끄러운 자리일 수 있는데 더 없는 청량제 역할을 해주었기에 전혀 문제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영진을 보며 오랜만에 사무실을 방문한 외래인이 반가워서일까? 그동안 각자 비축해 둔 수다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와 여인네들끼리 있을 때나 나올듯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오후 두 시를 훌쩍 지나 세시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영진이 예정한 30분이 훨씬 지나서 다음 일정이 빠듯해질 것이다.       

“참. 능력 있고 성실한 연구원입니다. 힘껏 도와주세요.

 이럴 때 환경단체의 의견을 적극개진해 계획서에 반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임 교수의 말이 끝나자 영진이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회장과 임 교수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국장도 엉겁결에 일어서 나오다가 영진과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영진도 당황했거니와 그녀도 밀려 놀래며 넘어지고 말았다. 얼른 그녀를 부축하였으나 이미 바닥에 주저앉은 뒤였다.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그녀를 영진이 일으켜 세웠다. 부드럽고 기분 좋은 감촉의 손길이 짜릿하게 전해왔다.           

“미안합니다. 이거.....”          

처음엔 말도 못 하고 쩔쩔매는 그녀를 보며 영진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정미는, “괜찮아요.”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김 연구원, 앞으로 우리 사무국장과 의논 잘해봐요. 나도 힘껏 도울테니.”          

할아버지인지 아저씨인지 애매한 경계선의 나이인 환경단체 회장이 그렇게 말하자 사무국장은 겸연쩍어서인지 말없이 영진을 보기만 했다. 

서로 신의가 없으면 불만이 생기고 솔직해질 수가 없다. 환경단체가 요구하는 것을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보고서에 잘 담아 둘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두어 번 정도 단체 사무실에 들렀지만, 환경단체 소관 일이 다른 연구원이 전담하게 된 이후에는 까마득히 그 일을 잊고 살았다.                

대산발전 연구원의 연구과제는 대산시의 요청이나 일반 공모 시 선정된 과제를 주제별로 분류해 팀에 배정하게 되며 이것을 각 과제별로 묶어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책임 연구원이 방향을 잡아 준다.      

그다음은 보조 연구원이 관련 논문과 참고문헌, 그리고 보도자료를 뒤져 그에 맞는 자료를 찾아내 가공해서 첨부하는 방식이다.     

자료 수집을 위한 기관 방문과 업무협의, 실험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분석을 통해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은 보조 연구원의 몫이며 그 과제를 영진이 지금 맡고 있다. 일의 강도가 높은 일은 거의 책임 연구원과 영진이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인턴으로 분류되는 준 조사원이나 보조원도 있어 그들은 통상적으로 반복적인 실무를 수행한다. 얼핏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실상은 최소 2년~3년 이상의 실무 경험자들로서 기본 석박사의 학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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