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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 Dec 05. 2022

05. 울고 웃고 화내기

한국여자의 유러피안 리더십

우리는 회사에서 소리 내어 웃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불편해집니다. 특히 직장에서는 정말 속 터놓는 직장 친구끼리가 아니면 감정 표현이 어색하죠. 만약 너무 솔직하면 프로 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매니저에게 그렇게 마음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죠. 깍듯이 혹은 예절 바름으로 무장된 가면을 쓰고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유럽에서 바라보는 ‘동양 여자’는 성실하고, 조용하고, 일도 잘하는데, 표정도 없고 감정을 읽을 수 없다면, 정말 기계에 다름이 없이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느낌인지 드러내는 게 중요한데요. 이걸 그냥 이성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부족합니다.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게 항상 있잖아요.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아무리 좋아도, 열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고, 너무 슬프다고 하는데 얼굴이나 제스처에 슬픔의 기색이 없으면 슬프지 않으가 보다 하게 되는게 당연합니다. “잘했네요”라는 말도 어떤 감정을 담아 말했느냐에 따라 무관심, 인정, 비꼼으로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의도와는 다른 메시지가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해 다루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게 리더십의 기본입니다. 팀원들이 리더를 이해하고 따르는 데에는 리더가 어떤 감정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자신을 인정해주고 도와주는지, 혹은 혐오하고 무시하는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 리더의 입장에서 반대의 감정표현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가 힘들겠죠. 

루마니아 팀원이 한 번은 제게 “그런데 왜 화가 났냐”라고 물어보더군요. 전 전혀 화가 나지 않았었는데요. 그런 경우가 몇 번 더 있고 나자, 이제는 제 소개를 할 때에 제가 포커페이스가 좀 있는데,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원래 그런 거다, 이렇게 이야기해두곤 합니다. 뭐 바꿀 수 없다면 인정하고 미리 말을 해주어야겠다 싶어서 재밌게 말하고는 해요. 


유럽 회사에서 리더로서 사람을 더 잘 따르게 하고 싶다면 얼굴 표정과, 손짓, 자세, 정확하고 다이내믹한 표현을 통해 감정을 많이 표현해보세요. 직장동료가 “오늘 어때요?”하고 물어보면 “바빠요”, “뭐 그럭저럭이요”처럼 자신을 감추는 대답보다도, 자신을 더 드러내는 답을 해보세요. 예를 들어 “퐌타스틱하죠”, “더 좋을 수 없어요”, “좀 우울해요”, “이 문제 때문에 불안해요”, “지쳐요”, “완전 몰입이에요” 이렇게 더 풍부한 어휘를 사용해보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면, 신기하게도 상대방은 대부분 대화를 시작합니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하면서요. 뻔한 인사성 질문에 뻔한 대답을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니 궁금해지는 거죠. 그러면서 서로 가까워질 기회도 생기고, 나를 알릴 기회도 주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이자 친구는 꼭 마음 따듯한 엄마 요정 같았습니다. 항상 화려한 색의 옷과 장신구를 차고, 눈을 똑바로 맞추며 어깨나 손을 잡고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포옹으로 대화를 끝낼 때가 많았고요. 그  다정했던 마음씨가 같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도 고마워서 많이 생각이 나더군요.


제가 겪은 회사 중 두 곳은 직위를 막론하고 ‘우리는 참 가족 같다’라는 말을 종종 했어요. 그만큼 희비를 공유하며 관계를 돈독히 해서 서로 더 끈끈해진 사문화였어요. 서로 일만 하는 사이라면 가족같지 않죠. 하지만 기업마다 문화가 다르니, 어떤 식으로 감정이 표현되는지 코드를 읽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다닌 그 두 회사에서는 눈물을 내는 광경을 가끔 보았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중견 리더가 송별회에서 보인 눈물이 있었고, 부당한 처사가 답답해 눈물을 흘리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매니저와의 주간 미팅 자리에서 ‘요새 집중이 안 되는 일이 있냐, 회의시간에 졸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겪던 개인적인 일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를 하다가 마스카라가 다 번지도록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어요. 저희 팀원 모두 싫어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한 매니저였지만, 저는 그런 경험이 있고 나니, 어쩐지 그녀와 저는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이건 아니라며 감정을 더해 불만을 토로하던 동료도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팔을 들고 흔들며 기쁨의 환호를 작게나마 외치던 팀원도 있었고요. 한 층이 떠나가도록 호탕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 리더도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 출신이 이 리더는 마치 BBC 앵커처럼 정확한 발음 때문인지 입만 열어도 카리스마가 있었는데요. 함께 커피 마시는 자리에서 자기도 한 때는 BBC 앵커 마냥 정확하고 바르게 하는 게 맞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냥 ‘나이면 되더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답답하면 답답하다고 이야기해보세요

리더십을 떠나 감정은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해지는 핵심 요소입니다. 회사에서의 감정표현이 자연스럽지 않은 우리이기에, 다양한 감정표현용 단어를 사용하고 표정과 제스처를 그와 맞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여러 방식을 더 관찰해서 어떤 방법이 나를 잘 드러내는지 찾아보고, 경청하면서 상대방과 연결고리를 찾아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많이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 - 저는 이게 재미도 있고, 자기 색깔도 있고, 믿음이 가는 인재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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