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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 Nov 26. 2022

03. 더 느리게 일하기

한국여자의 유러피안 리더십

종종 아시아의 길거리 음식 장인 비디오를 볼 수 있습니다. 손이 아주 빠르고, 동작이 정확해서 효율적으로 단시간 내에 너무나 쉽게 음식을 준비하거나 만드는데요. 그 모습이 정말 감탄을 자아내죠. 그런데 어쩐지 이런 건 꼭 한국, 일본, 중국에서 더 쉽게 볼 수 있지 않나요?


우리는 대부분 일을 빨리, ,  완벽하게 하는 것에 성취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하던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는 증명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런 숙달 과정을 통해 장인의 경지에도 오릅니다. 심신의 수련을 중시하던 옛 문화에서 나온 행동일까요?  저도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너무 많이 써서 모르는 사이에 물아일체 (?)가 된 것처럼 뚝딱뚝딱 자료를 만들고는 합니다. 한 번은 제가 10분 만에 만든 자료를 기준으로 인도 출신의 팀원에게 일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당시 중간 관리자였던 저에게 그녀는 ‘너무 대단하다…’라고 말을 띄우더니 ‘로봇 같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제게 생각할 여지를 주었습니다. 로봇 같다는 게 좋게만 느껴지지 않잖아요. 효율적이고, 에러가 없고, 완벽한 것은 그만큼 이질적이죠. 뿌듯하게 여길 나의 갈고 닦은 실력인데,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참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유럽 회사에서 계속 더 경력을 쌓으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게 해가 될 수도 있더라고요.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가지 않는다는 속담이 맞달까요. 누군가 일을 잘하면 상대적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은 위기감을 느끼고, 그 사람이 열심히 하기까지 한다면 그 상대방은 은근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때문에 특별히 더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리더의 역할로 가기 힘든 게 아닐까요. 왜냐하면 사람이 따라야 리더이지, 혼자 잘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니까요.


높은 점수와 등수를 위해 정진하고  정진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은 이상을 잡아두고 그 이상에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채점하면서 언어영역 점수가 오르나 체크하던 저의 수험생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때처럼 저도 회사일을 열심히, 끝없이 노력해 더 빠른 시간에 더 잘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행동이 유럽의 조직생활에서 어떻게 비추어질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확실히 말하자면, 제가 겪어본 유럽 회사에서 일을 빨리 잘하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일만 더 늘어나고요. 멀티 태스킹을 할 수록, ‘그 사람은 얕게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많은 일을 완벽하게, 빠르게 처리할  있는 , 사람인 이상 권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유럽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아요. 복지도 잘 되어있고, 경쟁도 덜 하니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처럼 빨리 어딘가에 도달할 필요가 없는 게 유럽의 문화입니다. 이들은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고 느껴져요. 기계처럼 쉬지 않고 일을 ‘처치’하는 게 덕목이 아니라  발짝 물러서서 ‘라고 물어보는  중요합니다. ‘발코니 모멘트 (Balcony moment)’라는 표현도 있는데요. 한창 파티장의 발코니에 나가 서서 파티를 밖에서 바라보며 순간에 치이지 않는 관점을 회복하고  그림을 보라는 취지에서 나온 표현이에요. 주어진 문제나 업무에 냅다 뛰어들어 고전하기보다도,   일을 해야 하는지, 다른 일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는지, 목적과 근본을 확실히 하는 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그래야 결과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한발짝 물러나 큰 그림을 보기

만약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느리게 한다면 어떨까요. 느리게 할수록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질 생각과 시간의 여유가 생깁니다. 혼자서 하면 훨씬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그들의 참여를 받는 다면, 시간 소요 대비 일의 경과는 아주 비효율적입니다만,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일에 반영할  있고 참여를 이끌어   있습니다. 하물며 혼자 맡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먼저 보여주고 생각을 들어보고 반영할 수도 있겠고요. 여러번 검토하면서 처음에는 보지 못한 부분을 개선할 수 도 있습니다. 서둘러 써서 답해버린 이메일보다도 시간을 갖고 페이스를 맞춰 쓴 이메일이 실수가 덜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하고 성실합니다. 그런 좋은 자질을 유럽의 동료들이 배타적으로 혹은 이질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팀의 자산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혼자만 잘하지 말고, 그들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여주고, 먼저 물어보는 게 좋습니다. 덩달아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기부해야 합니다. 먼저 나서서 팀을 위하는 일에 쓰거나, 고민하는 동료나 주니어 직원이 있다면 코칭을 해줄 수 도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렸던 한 중국 동료는 이를 잘해서 인정도 인기도 많이 받았어요. 자신감 있지만 자만하지 않게,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만큼 다른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이나 방법을 제공하는 모습이 성숙하고 고맙더군요. 우리의 똑똑함은 이렇게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는데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착한 마음을 잘 받아주는 것도 능력이죠. 어린 시절 제게 오스트리아의 친구가 파워포인트 단축키를 알려주었을 때 기분이 나빠서 ‘나도 몇 년 경력에 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 정색을 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어, 고마워’ 하고 말았을 텐데, 마치 이미 아는 것을 누가 가르치려 들 때 드는 짜증처럼 반응을 한 것을 보면, 저도 참, ‘얼마나 아느냐’처럼 공식화된 능력을 가꾸고 지키는데 예민했나 봅니다.


일은 서로의 기대를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상사나 일과 관계된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그 속도도, 필요한 완성도도, 반영해야 할 의견도 참작해보세요. 그리고 맡은 일이 천천히 가도 되는 일이라면,   느리게, “비효율적으로 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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