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의 유러피안 리더십
첫 번째 팁으로 가장 하고 싶지 않지만, 또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중요한 기업문화라고 해도, '얼굴' (혹은 인종)과 문화적 뿌리는 그 실력과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둔 조직문화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이니까요.
우리는 김치나 매운 것을 잘 먹거나 한국의 정서를 공감하는 외국인을 경험하면, 신기해합니다. 당연하지 않아서 신기합니다. 그 저변에는 외국인은 한국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죠. 외국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동으로 타자화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요. 만약 그 외국인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었다거나, 한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그런 타자화가 거북하고 되려 "왜 나는 항상 외국인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겠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종이 다르면 일단 외국인으로 보이는 게 누구의 잘못은 아닙니다. 유럽인으로써 선입견을 최소화하는 법을 모두 잘 알고 실천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 남의 마음이 내 마음 같나요.
저는 항상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남한테 개선하는 역할을 떠넘기지 말고, 제가 주도권을 잡고 할 수 있는 일 먼저 부딪혀 봅니다.
동양 여자. 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일까요. 슬픕니다. 전쟁과 혼란스러운 시대를 통해서 세계에 뿌리내린 동양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요. 2012년에 네덜란드에 와서 ‘문화충격 대비 수업’이라는 걸 들었어요. 해외에서 채용된 직원들에게 회사가 1대 1로 제공해주는 서비스였습니다. 어느 날은 그 코치가 ‘많은 아시아 여자들이 네덜란드 사람들하고 결혼하려고 온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르고 속을 알 수 없다는 인식이 많다’고 하더군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전문직을 가지고 제 삶을 개척해 네덜란드까지 온 저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주 불쾌했어요. 하지만 그 코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동양 여자를 그렇게 본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던 거겠지요.
‘겉과 속이 다르다’. 이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 남들에게 겉으로는 맞추고, 속 마음은 털어놓지 않는다는 의미겠지요. 자기 뇌 속의 모든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해 무례하다고 평을 받는 네덜란드의 문화 하고는 정반대인 스타일입니다. 그러면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래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불편하겠죠. 믿기도 쉽지 않겠지요. 한 예로 어떤 캐나다인 동료는 인사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결국 너를 속을 알 수 없는 중국사람으로’ 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처한 회사 문화를 반영해 제가 가장 유의한 선입견은 저를 예의 바르고, 착하고, 조용하고 일만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빈번히 세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전, 제가 조용히 말을 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중국인 아내를 둔 그리스인 리더가 ‘조용히 말하고 예의 바른’ 저를 밀어주고 싶다며, 손을 내밀었었습니다. 그때에는 정말 웃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밀어주고 싶다니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 이유가 달갑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제게는 그런 선입견을 상쇄할 무언가가 필요했지요.
제가 경험한 한 중국인 리더는 아주 껄껄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깨를 팍팍 치며 농담하는 버릇도 있었고요. 그리고 자기 생각에 맞는 것, 안 맞는 것은 확실히 이야기했습니다. 홍콩 출신 동료는 회사의 체육관에서 할 수 있는 복싱 수업에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복싱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맨발로 활약을 했고요. 한 한국계 미국인인 리더는 자신이 한국문화보다는 미국 문화가 더 익숙하다고 말하고 다니고는 했고요. 어느 한국 남성 리더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도 많고,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저는 의견이 없고 수줍어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오히려 반대로 제 의견을 거리낌 없이 제공했어요. 사실 국내의 유럽계 회사에 다닐 때에도 그런 분위기가 있어서 하던 대로 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회사에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 더 나아가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회사 사람들과 놀고 친해지면서 그들의 일부가 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제 생각과 꿍꿍이를 몰라 어쩐지 거리감이 주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나이가 차고 가족이 중요해지다 보니, 정시 퇴근을 하려면 직장 상사나 동료들과 예전 같은 친목도모가 어려워지는데요. 그래도 가능하면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얼굴도 비추고 환하게 웃고 농담도 하는 게 저를 보여주는 길이고 심리 저변에 제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게끔 해주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람으로 알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많이 공유해서, 제가 단순한 '따라쟁이'가 아니라 한국문화와 유럽 문화를 가교하는 특별한 존재임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가볍게는 주목할 만한 한국의 트렌드나 시장환경을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한국의 주요 가치(정, 혁신, 최선 등)를 몸소 실천합니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그 자체가 '조용한 동양 여자'라는 선입견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어왔고요.
그리고 좀 활달하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조성하는 친구도 봤습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타투를 자랑하거나, ‘나는 어릴 때 문제아였다’는 썰을 풀거나, 아주 스포티한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등, 방법은 많습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선입견이 바뀔 수가 없겠지요. 우리가 외국인을 ‘외국인’이라 부르며 이방인처럼 대하듯이요. 나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다름 사람들이 보는 우리는 너무 다른 아시아의 이해하기 힘든 나라에서 온, 왜소하고 자그마한 여자입니다.
행키팽키 상하이 (Hanky Panky Shanghai)와 네덜란드의 은연한 인종차별 혹은 무지
네덜란드의 아이들이 배우는 생일파티 노래 중 하나가 바로 이 ‘행키팽키 상하이’라는 군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생일 축하합니다’의 멜로디에 맞추어 “행키팽키 상하이”라고 부르는 이 노래는 마지막에 손가락으로 눈을 쭉 찢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런 노래가 학교에서 적어도 60년대부터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가르쳐지고 불려지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났습니다.
행키팽키는 섹스 행위나, 부적절한 행위, 속여먹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런 노래를 동양출신 어린아이에게 친구들이 다 같이 부르게 하고 그게 잘 못 된 일인지도 모르는 선생님들과 혹은 어떤 문제도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니 아직도 네덜란드 사회는 인종과 다문화에 대해 성숙해지려면 멀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속여먹는 상해사람 (사실 상해를 특정하기는 해도, 어느 아시아인이든 일컫는 말입니다), 섹스 행위하는 상해사람, 아무리 이런 노래가 “뜻 없이” 지어졌고 재밌게 불린다고 해도, 잠재적 선입견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처사를 알게 되거나 당한다면, 꼭 참지 말고 화를 내세요.
사실 우리나라는 많이 서구화되어 알게 모르게 서구의 여러 가치관과 습관이 익숙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만 해도, 한식 스타일이 있고, 빵이나 시리얼 스타일이 있죠. 그런데 유럽 사람들은 한식 스타일 아침을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생소하죠.
그들에게 동양에서 온 직장동료는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이 동양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우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한국에서도 생일 파티를 이런 식으로 하니? 다 모여서 선물 주고?’, ‘한국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니’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관심은 오히려 고맙습니다. 신나게 정성스럽게 설명해주면 되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질문조차 생각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나지만, 너희의 방식이 익숙하다, 너희 가치관이 나의 가치관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나의 문화적 배경은 우리의 협력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