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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 Dec 01. 2022

04. 겸손 떨지 말자

한국여자의 유러피안 리더십

남자 간, 여자 간 대화법을 비교할 때 종종 듣는 이야기가 남자들은 자기 자랑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여자는 그 반대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나 새 차로 000 샀다’라고 누가 운을 떼면, ‘나는 새 차로 000 정도는 살 거다’, ‘나는 새 차는 이래서 안 좋아 안 사고, 요새는 리즈가 최고다’ 이런 식으로 경쟁적 대화를 하는 게 남자라면, ‘너무 부럽다, 나는 이런 불행 (?) 때문에 차도 못 산다’, ‘차는커녕 자전거라도 샀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신을 깎아 상대의 기분을 맞추어 주는 게 여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젠더에 따른 차이는 자주 회자되지만, 문화에 따른 대화법의 차이는 겪어 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우리말에 있는 “잘 부탁드려요”. 이 걸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요? 전 “Nice to meet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이 말을 번역하는 것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 습관적인 표현을 하면서 뭘 잘 부탁드린다는 걸까요? 우리의 부족함도 너그러이 봐 달라, 미숙한 나를 좀 돌 봐 달라, 이런 배경의미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요. 이렇게 자신을 내려서 말하는 게 너무나 익숙한 우리입니다. “아직 부족하죠”, “아, 제가 잘 한게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요.”라고 말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고 어쩐지 사회생활도 둥글게 잘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선배들과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저보다 3년 연상인 한 분이 허허 웃으면서 제게 ‘방금 자신을 이렇게 높여서 말했어!’라고 하시더군요. 그만큼, 겸손하지 않은 (겸손해 보이지 않는) 자세는 지적을 당하거나, 되바라지다고 보이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이러다 보니 무슨 말을 하기가 힘들어지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공식대로 말하는 게 편하고 안정적이라 비슷한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고요. 그런 건 또 진정한 겸손도 아니죠.

하지만 유럽 회사를 다니며 관찰을 해보니, 겸손하다고, ‘겸손을 떤다고’ 좋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을 낮춰 이야기하는 ‘토킹 다운 (Talking down)’도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더랍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잘하는 것, 자신 있는 것을 어필하는 ‘토킹 업 (Talking up)’이 중요해요. 실력이 있어서 회사에 채용이 되었고, 함께 동료가 되었을 텐데,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낮춘다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 해주고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만만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장점도 잘 모르고, 완벽주의자라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기가 쉬워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어필해 자기 자리를 빨리 찾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신감이지, 자만심이나 자랑은 아닙니다. 칭찬을 들으면 온갖 변명을 지어내며 불편해하지 말고, 그냥 감사히 받아들이면 됩니다. ‘고마워요’하면 될 일이죠.


어느 날은 제가 회사에서 만난 사람 중에 토킹 업을 잘하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을 구분해봤습니다. 그렇게 구분을 해보니, 자랑해서 재수 없는 사람이 있고, 자랑해서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매니저 중 한 명은 정말 기회만 있으면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그는 재산, 연봉, 투자 결과, 그리고 숫자 감각에 대한 일방적인 과시가 대화 내용이었는데요. 반면에, 객관적이고 건설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이야기하며 상대방에게 요긴하게 이야기를 하는 동료들 이름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보다 직급이 하나 낮았던 중국 여자 동료와, 직급이 하나 높았던 인도 남자 동료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잘 된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재수 없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 관련되고 도움이 되는 쪽으로 메시지를 정리해, 건설적인 경우였습니다. 핵심은 그들이 자기 자랑이 아니라 도움을 우선으로 이야기를 꾸렸다는 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자기 자랑을 늘어놓아도, 겸손함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오히려 대화에  기울이고, 상대방은 존중하는 사람으로 비칩니다.


주의할 점은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혼자 독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협력을 중시하는 네덜란드나 독일 회사에서는 공로를 팀에게 돌리는 것이 미덕인데요. 이 것도 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프로젝트가 잘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대뜸 ‘아 감사합니다’ 할 것이 아니라 ‘감사합니다. 팀의 노력이 커요’라고 말하면, 개인에게 향한 칭찬을 수용하면서도, 팀을 챙기는 리더의 자질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이곳의 주식인 감자는 익을수록 커집니다. ‘아니 별말씀을요, 천만에요, 아 아직 부족해요, 잘 부탁드려요’도 아니고, 무조건 ‘나 좀 봐줘요, 내가 최고지요’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떤 경험을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지 잘 파악해서, 상황에 맞게 자신의 경험과 장점을 어필하는 것을 연습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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