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클래식하게 [클래식 한입]
창작이 없다면, 영감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일 뿐이다.
[Joannes Brahms]
1833-1897 독일 작곡가 (후기 낭만파)| 135개의 작품
19 세기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독일 전통 클래식의 마지막 대가로 여겨진다. 브람스는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장르를 섭렵한 작곡가이다. 작곡가 ‘바그너’와 ‘리스트’와 정 반대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출생한 브람스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우며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브람스는 부모님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코셀’과 ‘에두아르트 마르크스 젠’ 에게 사사했으며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우며 브람스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브람스는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술집, 식당 등을 전전하며 연주를 하고, 합창단에서 편곡과 지휘를 하며 음악의 발판을 다져 나갔다. 이러한 경험들은 훗날 브람스의 작곡의 훌륭한 초석이 되었다.
1853년, 브람스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을 하노버에서 만나게 되며 그의 생활 전반에 큰 여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그는 로베르트 슈만에게 편지를 통해 브람스를 소개하였다.
뒤셀도르프에서 만나게 된 슈만, 클라라는 브람스의 재능에 경탄했으며 당시 클라라의 일기장에는 “ 하느님께서 직송으로 배달해 준 선물”로 브람스를 표현했다. 음악가이자 평론가였던 슈만은 “새로운 길” 평론을 세상에 발표하며 브람스의 입지는 유럽에서 더욱 굳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단단한 우정을 쌓던 슈만 부부와 브람스에게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우울증을 앓던 슈만에게 정신이상증세가 발병해, 그는 뒤셀도르프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한다.
그때 당시 그가 작곡 한 작품 브람스의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variations on a theme by Schumann op.9 ]
를 작곡해 클라라에게 헌정한다.
https://youtu.be/NP0EfDQHe0Q
브람스는 14살 연상의 클라라, 슈만의 아내를 흠모하였는데,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연주하며
교감하는 중, 금지된 감정이 싹트지 않았을 까 유추한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어요”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
슈만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내용의 편지이다. 이에 클라라는 브람스의 음악적 능력과 친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슈만에 대한 사랑과 소신을 지켜나갔다. 클라라에게 브람스는 음악적 동료애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컸던 것 같다.
슈만은 정신병원에 감금된 후 고작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아내 클라라가 와인을 손가락에 찍어서 떠먹여 주려 하자, 슈만은 클라라의 손을 잡으며
“나는 알고 있다 (ich weib)”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의미 또는 브람스가 클라라를 흠모하고 있었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브람스는 슈만의 죽음 이후, 클라라와 음악적 교류를 계속해서 이어가며 그녀를 사랑하는 온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 해 냈다. 누구보다 사랑의 순애보 였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평생 마음에 품은 안타까운 작곡가이다.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의 건강도 급속도로 쇠약해졌고, 이듬 해 그는
클라라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순애보 브람스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다해 쓴 곡, 피아노,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콰르텟의 연주를 감상해보자.
https://youtu.be/iyAiXNAZ5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