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클래식하게 [클래식 한입]
일찍이 12 살 부터 두각을 나타낸 리스트, 그는 이미 어린 나이에 유럽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유망한 피아니스트 였다. 꼬마 리스트는 그의 재능에 후원해주는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 비엔나로 유학을 떠난다.그곳에서 그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살리에르로부터 음악이론의 기초와 작곡법을 배웠다. 이미 신동으로 이름을 떨칠 정도로 유명해진 리스트는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살롱에서 연주회가 있는 곳, 그야말로 음악가들의 기회의 장 이었다. 리스트는 ‘파리 음악원’에 입시를 치렀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 당했다.
이후, 그의 아버지는 스케일, 에튜드, 바흐의 모든 조성으로 연습을 시키는 등 혹독하고 맹렬하게 연습을 시켰다.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며 수려한 외모에, 열정적이고 파격적인 연주를 펼치는 그의 모습에 팬층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졌다. 1833년 파리에 위치한 바이어 자작의 저택에서 이루어진 모임, 리스트는 그 날 역시 피아노 연주를 했고,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던 마리다구 백작부인 과의 인연 또한 시작 되었다. 모두가 리스트의 연주에 환호하고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겼던걸까.
마리 다구는 피아노 뿐만이 아닌 노래 실력도한 뛰어난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유부녀 였던 마리 다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트는 직진하기로 마음 먹는다., 불과 몇개월 뒤 1833년 5월, 그는 마리 다구를 위한 헌정곡을 그녀에게 바친다.
https://youtu.be/Qlzn6nQpmgE
가곡집과 녹턴이 작곡된 시기는 리스트가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연이어 겪던 시기였다.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던 리스트의 연인 마리다구 백작 부인과는 세 명의 아이를 낳은 후 ,점점 식어갔고, 결국 그들은 1844년 결별에 이른다. 클래식계의 카사노바 답게 여러 여성들과 짧은 만남을 반복하고,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차에, 1847년 그의 운명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의 카롤리네 자인 비트켄슈타인 공작부인. 키예프에 방문 해 연주를 했던 리스트와 비트켄슈타인은 사랑에 빠져, 그녀는 어린 딸을 데리고 리스트가 있는 바이마르에 찾아가기까지 이른다.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이었으며 언제나 리스트의 예술가로서의 행보와 명성에 기를 살려주었고,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권했다.
이 행복한 순간에 작곡 된 곡이 바로 ‘consolation’ 이다.
https://youtu.be/MfDmUk7ie6s
같은 시기에 작곡 된 리스트의 사랑의 꿈
‘Liebestraum’
시인 프라일리하라트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이다. 리스트 하면 생각나는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이다. 비트켄슈타인과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에 대한 가곡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원래의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이다.
https://youtu.be/5sVNk-fSKRQ
리스트는 1886년 7월 31일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75 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 당시 클래식 음악가로선 꽤나 오래 산 편에 속한다.
-모차르트 35세, 슈베르트 31세, 멘델스존 38세
-베토벤 57세,브람스 64세, 리스트 75세
이 두 작곡가 그룹의 차이가 무엇일까?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은 음악과 평생을 연애 하듯이 산 음악가들이지만,
베토벤, 브람스, 리스트의 그들의 역사는 ‘사랑’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한 사람만을 위한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은 그 어떤 힘보다 단단한 메세지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