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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에게 시청률이란...

by 정작가

오늘의 운세에 그날의 기분이 좌우된다면, 방송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좌우하는 건 아침에 날아오는 ‘시청률‘이다.

“드디어 4!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하아! 이건 뭐… 시청률이 튕겼나 봐요. “

아침마다 전달되는 숫자 하나에 팀 전체 대화방 분위기가 왔다 갔다 한다. 평균을 상회하면 기쁨과 환호의 이모티콘이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 팀장과 앵커가 커피를 쏘기도 한다. 못 나오면 긴 침묵이 흐를 뿐이다. 잠시 후 올라오는 발제를 두고도 어제의 시청률을 만회하기 위한 고심의 문장들이 오간다.

뭐 그까짓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냐.. 고 묻는다면 일단 한숨부터 쉬게 된다. ”프로그램의 생사가 그 녀석에 달려있어 대적할 수가 없어요. “

내친김에 시청률에 대한 기억 몇 가지

하나, 내가 제이본부에 입성한 건 개국 몇 달 전이었다. 교양국 전체 작가라곤 나와 내 후배 딱 둘 뿐. 메뚜기처럼 빈자리 날 때마다 옮겨 다니며 일하던 중 드디어 작가실이 생겼다. 개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작가들도 늘어나면서 인구밀도가 높아져 답답할 지경이 됐다. 그런 가운데 회사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개국하면 시청률은 기본 1은 넘지 않겠어?”

드디어 2011년 12월 1일. 처음부터 시청률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이었을까. 종편 4사 모두 예상 시청률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수치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자 그 많던 프로그램도, 작가들도 하나 둘 사라져 갔다. 개국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작가실에 남은 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었던 나와 후배 작가 둘였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그 후에 나 역시 다른 프로그램들을 했지만, 시청률에 고전하다 결국 폐지되는 수순을 겪었다.


둘, 처음 방송을 시작했던 당시, 시청률의 강자는 엠본부였다. 케이본부를 압도한 건 물론이고, 신생 방송사였던 에스본부는 좌충우돌 중이었다. 그런데 피디 선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시청률은 움직이는 거야. ” 얼마 후 에스본부 시청률이 엠본부를 능가하더니, 그다음 해엔 케이본부가 압도했다. 종편도 마찬가지였다. 국정농단이 최고 화제였던 때, 제이본부의 시청률은 다른 3사 것을 합친 것만큼 높았다. 지금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고공 행진하던 모 본부가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는, 또 내년은 누가 시청률을 쓸어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셋, 우리 프로그램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글귀가 하나 있다. ‘오후 6시 점령! 4% 달성!’. 처음 이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출근했던 날인 2015년 5월 6일. 그때 당시 평균 시청률이 1 초반이었으니 참 많이 올라왔다. 그 사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가, 거침없이 추락하기도 했다. 들리는 말로, 고전했을 당시 우리 프로그램 폐지설이 사내에 돌기도 했단다. 열심히 해도 시청률이 안 나올 때 제일 힘들다. 시청률을 자동으로 조사하는 피플미터가 설치된 시청자 집에라도 찾아가 읍소하고 싶을 정도다. 결국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봐도 안 나오면 메인 작가로서 자괴감도 쌓여간다.

다행히 요즘은 숨 쉴 만하다. 가끔 종편 전체 시청률 순위 최상위권에 들기도 한다. 다 앵커 덕이다. (앵커 자랑은 나중에 따로 한번 풀어보겠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다. 꽉 잡고 있다 한들 언제 어떻게 도망갈지 모르는 변덕쟁이 시청률이니까...

오늘 아침에도 나는 어김없이 시청률로 하루 운세를 점쳐본다. 부디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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