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배우 강수연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그리고 작가들끼리 하는 말이다.
방송 작가라고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작가들의 업무나 생활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작가료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을 처음 하던 시절, 작가료를 바우처로 받았다. 2주 방송분이 찍힌 바우처를 받아서 엠본부 1층에서 바꾸는 날, 제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어쩌다 조연출이 늦게 정산하는 바람에 원고료가 늦게 나오는 날은 최악의 하루가 됐다. 그래도 그 당시 받은 작가료를 월급으로 산정하면, 대기업 대리 월급 정도 됐다. 문제는 그다음... 세상 물가는 앞쪽으로 성큼성큼 가는데, 작가료는 뭉그적거리며 더디게 올라갔다.
대기업 임원도 아니고 직원 연봉도 1억 원을 찍는 요즘, 30년 차 작가인 나의 작가료는 작가 시작했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오르긴 올랐지만,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된다. 어떤 피디는 작가가 하는 일이 똑같은데 왜 원고료를 올려줘야 하느냐고 했단다. 그럼 해마다 월급 올라가는 피디가 하는 일은 뭐가 달라지는지 되묻고 싶다. 게다가 그들은 보너스도 받고 성과급도 받고 심지어 퇴직금도 받는다. 그러나 작가들은 아무것도 없다. 지상파만 있던 방송판에 케이블 tv가 생기고, 종편이 들어서고, OTT가 대세라지만 굳건하게 변하지 않는 건 작가료뿐이다. 드라마나 예능 작가들 정도 되어야 와~라고 감탄할 정도로 원고료를 받지, 나 같은 시사 교양 작가들에겐 다른 세상이다. 진행자나 출연자들의 출연료 역시 힘차게 올라가고 있지만, 뒤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는 작가들의 원고료는 멈춰있다. 가끔 그들만의 세상을 듣노라면 진짜 깊은 빡침과 자괴감이 몰려온다. 가끔 아나운서들이 출연료가 3만 원이니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본다. 아나운서들은 엄연히 월급이 존재한다. 당연히 방송은 그들의 업무인데도 출연료를 따로 주는데, 그걸 보고 안 됐다고 하다니...
그래도 본사에서 일하면 작가료가 제 날짜에 나온다. 문제는 외주 제작사. 한 번은 외국인들이 출연해서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송을 했다. 반응도 괜찮았고, 본사에서도 재밌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웬 걸, 원고료는 물론 출연료가 방송 시작한 지 4개월이 넘었는데 입금될 생각을 안 했다. 출연자들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한테. 나 역시 손가락 빨고 살 순 없었다. 이래저래 알아봤더니 본사에선 제작사에게 제작비를 이미 지급했고, 제작사 대표가 다른 곳에 그 돈을 다 써버린 것이었다. 일종의 돌려 막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다못한 출연자들이 본사에 전화를 하기 시작하니, 뒤늦게 작가료와 출연료를 입금해 주었다. 그래도 여기는 늦었지만 입금이라도 해줬지, 기획서를 써주었는데도 입 쓱 닦은 곳도 있었고, 원고를 써주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더니 폐업해 버린 곳도 있었다.
작가료는 그대로지만, 여전히 많은 나의 동료, 선배, 후배 작가들은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버티는 이유, 작가로서 자존심 때문이다. “오늘 방송 참 좋았어요. 작가님 덕분이에요.”, “그 프로그램 진짜 좋아해요.”, “작가님들이 제일 고생하고 있죠.”... 아주 가끔, 어쩌다 듣는 이런 말들... 나,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