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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0. 2024

고리 12.

12     




 매섭고 두려운 꿈을 꾸었다 



  울음소리가 들린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울음소리 자세히 들어보니 까마귀 소리다 까마귀가 울고 있다 한 마리가 아닌 다수의 까마귀들 자세히 보니 까마귀 떼는 어딘가로 향해 돌진하였다 아래로 향해 셀 수도 없이 수많은 까마귀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까마귀들은 추락한다 쉴 새 없이 까마귀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절벽인지 구덩이인지 알 수 없는 골 사이로 무수한 까마귀들이 쏟아져 내려간다 까마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검다 너무 검어서 언뜻 보면 까마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분명히 까마귀가 떨어지는 까마귀들은 합창을 하듯 동시에 울고 있다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장황한 울음소리는 중첩의 중첩을 거쳐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거대한 울음이었다 눈을 감자 까마귀의 울음이 아닌 누군가의 절규로 들렸다 찢어지도록 뼈아픈 절규에 가까웠다 거대한 울음은 가슴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소리는 파장을 넘어서 진동을 일으켰다 모든 대지가 흔들린다 지진에 가까운 진동이다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까마귀들은 없었다 검은색의 물체들은 사라지고 대지는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거대했던 울음소리 역시 사라졌다 그런데 여전히 진동은 존재했다 깊게 남은 상처처럼 깊게 뿌리 박힌 고통처럼 대지는 검게 그을려 모든 것이 불살라져 버린 땅과 같았다 큰 산불이 있었고 산불은 모든 산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역사에 길이 남은 거대한 산불의 흔적처럼 다시 눈을 감았다 혼란스러웠다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꿈이 알려주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꿈을 깨고 싶었다 그러나 깰 수 없었다 누군가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깊은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불에 모두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거대하고 기나긴 울음을 하게 될 것이라고 추락하고 또 추락할 것이라고 검은 꿈은 말하고 있었다 눈을 뜰 수 없었다 두려웠다 진실로 현실이 될까 봐 눈을 떠도 감각이 그대로 손과 발 목덜미까지 남아 있을까 봐      



 새벽 네 시 눈을 떴다 다행히도 현실은 아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꿈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현실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음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늦여름과 초가을의 한기가 서려올 만큼 땀을 흘리고 잤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선뜻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두려움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한동안은 침대 위에 누워 현실감을 받아들였다 현실을 충분히 몸에 인식시키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몸에는 힘이 많이 빠져있었다 퇴근 후의 몸 상태와 같이 어깨는 무겁고 다리는 지쳐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채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어 부엌으로 향했다 땀을 진창 흘린 만큼 목이 말랐다 작은 생수 하나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의 감촉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몸은 물을 원했고 물이 신체의 곳곳에 흡수되어졌다 더욱더 꿈을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역시나 시간을 천천히 들여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양치를 했다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그만큼이나 너무나도 선명하고 비현실임을 앎에도 현실적인 감각이 있었고 무언가를 전달받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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