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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0. 2024

고리 13.

13     




 기획팀 재영 이죠?      


 아 네     


 유메라고 합니다 마케팅팀에 소속되어 있어요     


 끊어진 기억의 끈이 다시 이어진 곳은 회사 건물 메인 승강기 안 이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 잠에서 깨었고 어떻게 회사까지 온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본능적이었을 것이고 숙달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항상 타오던 지하철역에 항상 타던 시간대에 급행 지하철을 타고 항상 내려야 하는 역에 내렸을 것이며 올라가야 하는 일 번 출구로 올라갔을 것이고 회사의 정문 회전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하여 승강기 중 항상 제일 빠르게 일층으로 도착하는 호기를 탔을 것이 분명했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기에 그와 동시에 의식의 끈은 현실과 다시 이어졌다 아니 접속했다 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유메’라는 사람이 아니 일본인이-이름으로 추정해 보자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마케팅팀이라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출판사라 해외 여러 나라의 좋은 작가들의 책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다양한 나라사람들과 공존하는 그런 회사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유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본 적이 있는 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럴 만큼 일은 진부했고 나에게 회사란 회사일뿐이었다 그 이상의 이하의 가치도 발현되지 않는 해변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갈 그중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과도 다른 잡다한 색이 섞여 어느 자갈 옆에 있어도 항상 빛을 보지 못할 그런 색의 자갈 그것이 나에겐 회사였다 그러나 그녀가 먼저 나에게 대화를 걸었기에 충실히 그리고 진실되게 그녀를 대했다 그렇게 나는 살아온 평생을 아버지에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저는 일본사람입니다 일본의 도서를 한국의 출판사에서 출판하기 위해 일해요     


 아 네 고생이 많겠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 저와 같이 식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유메의 갑작스러운 대화에 갈피를 잡지도 못하고 있을 때 더 혼란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이 자연스러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자연스러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 말인즉슨 정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불편하신가요?     


 아니요 어떻게 대답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싫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일을 마치고 저녁에 만날까요?     


 그녀는 나의 부정확하고 부자연스럽고 퉁명스러우며 불친절한 반응에도 밝게 말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부자연의 골에 깊게 들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승강기에 내려서 나의 부서 나의 자리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가 싫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중립적인 감정이 더욱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오히려 좋거나 싫거나 둘 중에 분명하게 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승강기 안이었기에 판단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고 짧은 대화였다  내가 대답을 우물쭈물하자 그녀가 질문을 하고 그녀가 대답을 마무리해 주었다     


 제가 알기론 기획팀은 다섯 시쯤 퇴근해요 저도 비슷합니다 퇴근 후 마곡역에서 만나요     


 마곡역이요? 마곡역 근처에 사세요?     


그녀는 대답하기 난처한 잠깐의 찰나의 시간을 더 빠르게 지나쳐버리곤 더 빠르게 난처하지 않은 듯 대답을 했다      


 네 항상 같이 퇴근해서 같은 열차를 탔어요 재영은 제가 내린 후에 더 열차 안에 있었어요     


 이웃주민을 어디선가 갑자기 만난 듯한 느낌이었기에 반가움으로 가득하여 오랜만에 얼굴에 따듯함이 감도는 듯했다 여름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고 한 승강기에 이성과 같이 있었기에 달아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난이겠지만 그런 따듯함이 주는 평온함도 좋았다 무의식적으로 안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대답을 머뭇거려 죄송합니다 유메님이 싫고 좋고를 떠나 모든 것이 갑작스러워 대답을 잘 못했어요 그럼 퇴근하고 마곡역에서 봐요      


 하이 ハイ 땡큐 재영     



 그녀에겐 부끄러움이란 없는 듯 당당한 걸음으로 십 일층에서 내렸다 그러곤 약 이십 초 뒤 나는 십 이층에서 내렸다 그러고 보니 마케팅팀은 기획팀 바로 아래층이다 이 승강기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내가 먼저 탑승하고 그녀는 후에 탑승했을까 궁금해졌다 궁금했지만 기억 속에 존재하는 유메의 모습은 없었다 승강기라는 공간은 나에게 이동수단이었을 뿐 의미와 감정 그리고 공존의 개념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유메로 인해 일을 똑바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고 온기가 돌아 사람다운 느낌이 스스로도 들었다 고양감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오랜만에 느끼는 따듯함이었다 항상 차가웠던 이마와 눈 그리고 입가에 체온이 미세하게 올라간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 간극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는 삶에 미숙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직장동료이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만큼이나 관계성이 없었고 유메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기에 단순하게 직장동료와 식사한다는 생각에 혹은 일적으로 마케팅팀으로서 기획팀으로서 물어볼 일이 생겨 약속을 잡을 것일 수 있다 별다른 생각이 없어 업무에 집중하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오늘의 업무가 최근 몇 달간 일한 내용 중 제일 만족스러웠던 점은 조금 의아했다 순식간에 점심을 넘어 다섯 시까지 도달했고 역시나 퇴근을 준비하는 팀장의 모습으로 기획팀 전원은 군대처럼 퇴근을 준비하고 다 같이 승강기로 나섰다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승강기 철문을 보니 유메가 떠올랐다 혼란스러움에 그리고 아직 현실로 접속하지 못한 영혼이 의식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탓에 유메의 모습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하얗고 눈이 큰 것만큼은 기억해 냈다 키는 나보다 손바닥 하나정도 작은 듯했고 머리카락은 꽤나 길었던 것 같다 옆을 보고 대화할 때는 몰랐지만 내릴 때 그녀의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곤 늘어뜨린 길이가 허리춤까지 오는 것으로 기억했다 아침의 기억을 더듬는 동안 십 이층에서 탄 승강기는 하강하기 시작했고 혹시나 십 일층에서 마케팅팀이 타진 않을까 작은 긴장감을 느꼈다 혹시나 유메가 승강기를 타게 된다면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또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승강기의 정지는 없었다 혹 다른 승강기를 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획팀은 일 외 다른 공간에서는 굉장히 조용하다 팀 특성상 그리고 팀장의 특성상 일이 너무 번거롭게 커지거나 여러 팀의 귀에 들어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거나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일을 모두들 혐오했기 때문이다 팀 보다 더 윗 라인의 상사들에게 보고나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면 나의 팀원들은 기획팀이라고 적혀져 있는 유리문의 경계를 발로 넘어서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같은 승강기를 같이 타고 같이 내려가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심리적 거리가 존재했다 갑자기 밤에 꾼 꿈이 생각났다 짙고 검은 까마귀 오늘 밤엔 그 꿈을 정말 꾸고 싶지 않았다 처참했고 처절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반영되는 현실이 없는 듯 하지만 분명 무엇을 반영하고 있었고 어떤 것이 반영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두려웠다 차라리 부자연스러운 유메와의 승강기가 낫다고 생각했다    

  

 승강기는 일층으로 하강을 완료했고 문이 열린 뒤 여덟 개의 승강기는 수많은 인파들을 쏟아냈다 대략 한 승강기에 열 명 정도 인원을 수용하니 단 한 번의 하강완료마다 근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을 배출해 내는 것이었다 나름의 장관이었다 나는 그 인파에 섞여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역시나 우리의 팀은 누가 중간에 이탈하든 상관없이 본인들의 발로 본인들의 길을 걸어 나갔다      


 여섯 시가 될 즈음 나는 유메와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유메는 개찰구 입구 쪽에 먼저 나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마케팅팀이 기획팀보다 먼저 퇴근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승강기에서 유메를 만나게 되면 난처하게 될 상황이 애초에 펼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팀 팀장은 정시퇴근을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다 적어도 일분일초라도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팀원들은 그 행동을 요상한 변태성이라고 느끼곤 한다 그리고 퇴근을 알리는 움직임만 해도 일분이 넘을 것이다      


 유메는 감색 슬랙스바지에 푸르고 어두운 계열의 반팔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자신만 알 것 같은 일본 개인작가의 숄더백을 메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그 분위기는 이국적으로 보였다 계단을 올라서며 유메를 알아보았고 유메 역시 내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 쪽을 바라보곤 눈빛으로 작은 인사를 했다 이미 약속을 했었던 터라 별다른 인사 없이 유메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했다 작은 이자카야였다 유메는 아마도 퇴근하고 이따금씩 오는 작은 이자카야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유메는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일본어로 주인과 인사를 했다 짧은 안부를 전하는 듯했고 자연스럽게 나마비루生ビール 후타츠라고 전했다 그러곤 더 자연스럽게 항상 앉았던 것으로 예상되는 창가자리에 안쪽 그리고 나는 반대에 앉았다 내가 보이는 자리에선 유메만 볼 수 있었다 유메 뒤로는 코너 벽이 있어 가게주인 외 볼 수 있는 것은 유메뿐이었다 의도된 듯 의도하지 않은 듯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가까이서 본 유메는 더욱더 일본 스러웠다 동그란 얼굴과 이따금씩 웃을 때 보이는 덧니의 존재는 입을 닫고 있음에도 그 존재를 안 이상 입 위로도 느껴질 만큼 존재감이 있었다 


 자주 오는 곳이에요 주인도 일본인이구요 키린맥주도 팔아서 모국이 그리울 때 자주 와요    

  

 유메는 키린맥주라고 했다 한국에선 기린이라고 발음하지만 그 작은 차이에서 나는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느꼈다 일본인 그래서 그런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일본인 듯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금 일본 도쿄의 어느 곳에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일본여자와 이자카야에 와있다라고 하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네요 좋아요


 그렇죠 키린맥주가 중요해요 저는 도쿄사람이라 키린맥주를 성년이 되고 자주 마셨는데 이렇게 키린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지나갈 때 키린이 보이면 갑자기 안정감을 느끼곤 해요 비록 실제론 일본이 아닌데도 말이죠     

 많이 그립겠습니다 일본이     


 잠시 우리는 정적이 되었다 불을 끈 것 마냥 대화의 끈이 끊어졌다 유메가 갑자기 고국을 생각해 향수가 일어난 것일까 조금은 신경 쓰였다 그 사이 일본인 주인이 가져온 기린맥주는 시원하다 못해 서리가 껴있는 듯 보였고 보기 좋게 그리고 먹기 좋게 작은 목재 잔 코스터를 두고 그 위에 서리 잔을 올려두었다 막 따라진 것을 자랑하는 것 마냥 잔의 입구 쪽엔 하나의 맥주 흐름이 생겨 맥주잔의 머리 목 몸통 다리까지 느끼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맥주를 보고 마시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그것은 참 성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영에게 말을 시킨 것은 무언가를 느껴서였어요      


 무언가?     


 네 무언가 한국말이 부족합니다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해요 그런데 무언가 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재영에게 분명 무언가라는 것이 보입니다     


 나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투명하지 않고 모호하지만 그렇다고 명확하기도 한 존재여부에 관해서 라면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무언가’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본 것인지 궁금해졌다 전혀 모르던 사이에서 말을 걸어 이렇게 마주 보고 말을 하며 자신의 단골가게 그리고 자신만의 모국에 데려와 설명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유메가 보고 있는 나의 무언가를 내가 안다고 해서 어떤 것이 달라질까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것은 그녀의 기개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승강기에서 허공을 바라보던 한 명의 한국인 남성에게 호기롭게 말을 걸었고 부자연스러웠던 대답과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아는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약속을 잡았고 –혹 문화가 달라 일본에선 그것이 자연스럽다 할지라도 이곳은 한국이니- 자신이 보고 있는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눈빛에서 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메는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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