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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0. 2024

고리 11.

11     




 아이는 사라졌다. 분명히 실존했던 아이. 나일론 티셔츠와 카고 반바지를 입고 있던 아이. 머리카락은 단정했고 모든 것이 멀끔했다. 아이에게서 멀끔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비非특이적인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억은 선명했고 시각으로 받아들인 감각의 잔존감은 길었다. 아이가 만약 부모의 손길에 혹은 부모가 부르는 음성에 반응하여 돌아간 것이라면 –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라면, 그것도 십 초도 걸리지 않는 사이에 – 내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기척이라는 것도 있고 음성을 내 귀에 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발견한 사건 자체도 기묘했지만 순간의 찰나에 사라진 상황은 더 기묘했다.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거렸다. 알 수 없는 것을 본 개 마냥 좌측으로 기울어졌다. 뭘까 지금의 상황은. 환시를 본 것일까. 그럴 리 없어 보이는데. 내게 왜 아이가 투영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환시라고 결정된 것도 없다. 내가 본 것은 확실하게 실존했다. 내가 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분명하게 아이는 내 눈앞에 있었던 것이 맞고 노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이 마을에 있었던 것도 맞고 내가 발걸음을 옮기고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근 십 초 만에 사라진 것도 맞다. 환시가 아니다. 실존했다. 근거는 충분했고 나는 그것을 느꼈다. 아이가 있었던 자리엔 분명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실존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병원에 가보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생각만으로는 나를 어디에도 데려다주지 못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하는 일은 항상 똑같은 일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문서작업 그리고 상급자에 대한 보고. 반려. 다시 재작업 그리고 재보고. 무한궤도 안에 속해있다. 돌고 돌아 제자리. 바뀌는 것은 없고 그냥 소모되는 시간만 존재하는 곳이다. 그저 나는 돈을 벌 뿐이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돈으로 치환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곳에 대한 불만도 애정도 고민도 발전도 없다. 더 쉽게 말하면 밥을 먹기 위해 시간을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재차 밥이 될 만한 것과 교환하는 구조이다. 시장의 구조일 뿐. 나는 그 속에 있는 구조의 한 축일뿐이다. 축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축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재빨리 시간이 지나 나의 집이 있는 강서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역에 내려서 걸어가다 보이는 털보네 가게에 불이 켜져 있기를 바랄 뿐이고 털보가 잘 장사를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저녁에 퇴근해서는 털보를 찾지는 않는다. 나의 시간을 돈과 바꾸는 직장생활에선 일정 수준의 에너지소모가 있었기에 나의 공간으로 잽싸게 돌아간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 업무종료를 알리는 팀장의 목소리가 있었고 아무와도 관계를 유지하지 않은 채 재빨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침부터 있던 기묘한 일이 나의 신체 총량 에너지에 비해 꽤 복잡스런 일이었다. 이 정도로 지치지 않는데 다리는 무겁고 발은 욱신거렸다. 발도 부어 적당히 여유가 있는 신발임에도 가득 팽창되어 있음을 느꼈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털보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항상 그랬듯 털보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미 내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털보는 다음날 가게준비를 위해 커피로스터기로 커피를 볶고 있었다. 늦은 오후, 커피가 볶아지는 향은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분명 가스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털보네 가게로 들어갔다. 안정감을 원했던 순간에 편안함을 얻었으니 당연한 것 일터. 바깥으로 공기를 나가게 만들어 놓은 커피 볶는 기계였기에 가게 내부엔 뿌연 연기는 없고 오히려 쾌적했다. 털보말로는 볶는 커피가 로스터기에서 나와 바깥으로 배출되는 순간을 고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최대출력으로 틀어놓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늦여름임에도 털보는 털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나도 소름이 돋고 오줌이 누어지는 것처럼 몸이 떨렸다. 나는 오늘 아침의 기묘한 아이를 떠올렸다.      


 털보. 혹시 최근에 길가에서 잘 다듬어진 것 같은 네 살에서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 본 적 있어? 키는 대략 이 정도일 것 같아.     


 나는 말하며 손바닥을 펴 허리춤에 수평적으로 맞추어 내가 아침에 본 아이의 키를 엉거주춤 알려주었다. 털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이 근방에 아이가 어디 있어. 죄다 귀먹은 늙은이들 뿐이지.     


 그 말이 맞다. 분명 동쪽을 봐도 노인. 서쪽을 봐도 노인. 남쪽 북쪽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강서의 공항동 근처는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것은 부모세대를 넘어 그 위의 세대였다. 그럼에도 나는 털보에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겪은 기묘한 일에 대해. 털보는 이 동네의 새로운 터줏대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털보 역시 몇십 년이 흘러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세대의 시대에선 노인으로 통할 테니까.      


 그치. 그럴 것 같았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넋이 나간 채 걸어가 지나치다가 휙 돌아서 가게 문을 박차고 들어오질 않나.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요즘 좀 그래 뭔가 빠진 기분인데 뭔가 발견하고 있는 느낌이기도 해.     


 무슨 말 이래.      


 나도 모르겠어.     


 그러게 나도 정말 모르겠다.


 오늘은 일 언제 끝나?      


 바빠. 오늘 로스팅 다 끝내야 내일 장사할 수 있을 거야. 계획상으론 아무 차질 없다는 전제하에 열한 시쯤 끝날 것 같은데? 그리고 정리하고 하면 열두 시가 되겠지.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 노는 것도 말이야.     


 당연하지. 세상에 거저가 어디 있어. 그럼에도 그냥 흘러지나 가며 사는 게 다행이지.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털보는 나보다 나이가 많기에 그리고 나보다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에 항상 대화의 주고받음이 길어지면 언제나 설교 식으로 변하고 그것을 즐기는 느낌이 든다.      


 털보. 혹시 아까 말한 남자아이가 여기저기 지나다니는지 혹은 어디 가만히 앉아있는지 그리고 발견했다면 녀석의 부모가 아이를 찾는지 데리고 가는지 확인 좀 해줘.     


털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는데 없다니까? 그리고 왜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 여자꽁무니나 쫓아다니지 그래.     


 부탁이야. 다음에 맥주 한잔 사줄게.     


 거래 성사 완료. 오케이.     


 털보에게 말해버렸다. 계획은 아니었지만 털보에게 내가 본 사실을 전달해 버렸다. 잘못되어질 것도 없지만 일단 이곳에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취급하는 자에게 너무 쉽게 얘기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듯이 얘기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는 털보는 기억력이 좋기에 여느 전당포에 부탁을 하는 것만큼 믿음직스럽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생긴 모습이나 어깨의 크기나 주먹의 질을 보면 혹 무서운 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괜한 말을 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아이의 존재유무를 얘기하는 것이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계속해서 곱씹고 곱씹었다. 반추의 연속. 더는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아 머리를 흔들어 생각의 고리를 끊고 털보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게를 나서고 느꼈다. 날은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정직하게 기울어져있었다. 입추를 지나 처서를 앞에 둔 날. 하늘은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멀어져만 보였다. 나와는 굉장한 거리가 있음을 실제 가늠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늘은 내가 서있는 곳 어디든 그 위치를 기준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 생각해 보니 아침과 낮의 하늘의 구름은 뭉텅이로 있었던 것이 점점 실오라기 풀리듯 실타래가 되어 하늘에 걸려있었다. 하늘의 색도 하늘색에서 짙은 파랑으로 덧칠되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것처럼 하늘의 변화도 나름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러운 변화 덕에 입추가 꽤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골목길에 곳곳이 설치된 주황색 가로등은 오늘따라 유난히 짙은 나무 색처럼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이 오늘따라 길게 느껴진다. 길게 느껴지는 만큼 길게 걸어가야 하기에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 다시 오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혹시 지금 시간에 아이가 있지는 않을까. 그럴 리 없다. 부모의 존재여부를 내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실존하다 사라진 것은 환영이 아닌 실제라고 판단했다. 그러기에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은 부모에게로 갔거나 혹은 다른 보호자의 곁으로 돌아갔을 것이란 확신을 했다. 그래서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 머릿속을 간지럽히는 자그마한 생각의 끈이 풀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매일 다니는 골목길에 이질감을 느꼈다. 발의 감각 그리고 시선으로 수용하는 감각 모두 다르게 느껴졌다.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고개를 퍼뜩 들어 현관문 앞을 응시했다. 인기척은 없다. 인간처럼 보이는 형태도 없다. 그림자도 없고 빛도 없다. 빌라 출입구의 등은 밝지 않아 이 정도의 밝기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과 어둠사이의 격차로 발생하는 윤곽만 확인하며 길을 경험칙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매일 다니는 길에서 무엇이 바뀌었고 어떤 것이 새로이 놓여 있는지에 대한 직감적 감각은 없다. 갑자기 큰 바위가 생겼을지라도 알 수 없는 종류의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없다. 분명히. 마음이 안정되었다. 혹시나 아이가 있다면 내가 이상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런 늦은 밤, 아이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아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공포심이 갇혀 두려움으로 발을 뗀 것이 아닌 오히려 평소와는 다를 것 없음에 집으로 재빨리 들어가 나의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급하게 하려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발걸음도 무뎠다. 신발을 신고 있어 발바닥의 감각이 무뎌진 것이 아닌 마치 발이 없는 것처럼 발의 감각이 무뎠다. 환상통과 같은 느낌이 이런 것일까. 다리가 잘려나갔지만 잘린 다리의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다리가 있음에도 다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갔다. 나의 현실로. 나의 집으로. 마침내 현관문에 기다랗고 작은 원통형의 열쇠를 자물쇠 속으로 넣고 오른쪽으로 힘차게 돌렸다. 덜컥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니 더욱더 긴장감은 해소되는 듯했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소스라치는 시선이 그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봐야 하는데 돌아볼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나는 내가 잡고 있는 현관만 닫으면 나의 세상, 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인기척인들 실제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직감과 본능 그리고 육감과 욕구는 이성을 찍어 누를만한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직감적으로 인기척이 느껴졌기에. 나의 시선적 욕구는 주변을 살피고 위아래와 사방팔방을 두리번거렸다. 육감적으로 어느 곳이든 어떤 것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고 더욱이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감각을 곤두세우게 할 만한 명확한 실제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기척만이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감각적 수용이 없었어도 아직 내겐 기척이 남아있었다. 그뿐이었다. 이제는 문을 닫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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