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지향의 사이
엄마의 오징어뭇국
군대전역 후 아빠와 걷고 먹었던 시간들 속 거리와 대화
빛을 통하여 찰나를 사진기로 잡을 수 있을 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나이트', '인셉션', '덩케르크', '오펜하이머'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바람이 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늦은 밤 홀로 글렌피딕 위스키 혹은 밀러라거맥주
나그참파 인센스를 피워 놓은 오후 그리고 잔잔한 바람
호흡이 잘되고 몸이 가벼운 러닝
러닝을 마치고 하는 온냉 샤워
자기 전에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정재형의 '여름의 조각들', '사랑하는 이들에게'
루시드 폴의 '눈 오는 날의 동화'
빌에반스의 'danny boy', 'green in blue'
아내를 위해 만드는 샌드위치
딸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잘 씻어 내어주고 먹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
계절에 맞게 적당히 잘 차려입은 나의 모습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나열하지는 못하였지만 상세하게 적어 보려 했다.
깊게 먹지는 않았으나 현재의 나이(33) 정도 살아보니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취향이라고 하겠다.
꼭 재미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들이 취향은 아니다.
재미만이라고 한다면 오락프로그램을 시청한다거나
게임을 몇 시간 동안 한다거나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음주라든지.
그 역시 한순간 행복감을 나에게 선사해 주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때를 다시 추억하고 어땠는지 파악해 보면
짙은 공허감으로 가득 찬 순간인 듯하다.
다시 돌아보니 그것들이
무엇인가 했는데 남은 것은 없었다.
무無의 시간.
물론 다시 그런 단순한 재미를 느껴본다고 했을 때(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경우 정도 적당한 음주와 추억팔이는 필수이기에) 너무 필요 없는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최대한 그 속에서 재미를 즐기려 할 것 같다.
사실 그런 삶도 그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기에.
허나,
예전과 그저 즐기는 시간에 나를 저 멀리 떠내려가 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아깝다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깊이 생각해 보자면
조금은 고차원 적인, 내가 나에게 혹은
내가 아닌 무엇인가를 통해 나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좋은 감각이나 감정
그리고 어떤 행동의 결과가 긍정적일 때
‘좋아하는 것’이라는 분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럴 땐 도파민의 유량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취향'은 결국 당시의 행복과 직결된다.
'취향'을 켰을때는 행복감에 젖는 것이다.
안도감이 느껴지고 위로를 받고
생각이 없어지고 쉼을 얻는다.
그것이 나에게는 '취향'이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고 싶어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취향'과 '지향'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현재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성장을 위해 하는 것.
머나먼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부여해 줄 수 있는 것.
전달해 줄 수 있는 의미가 있는 행동들이 쌓여나가는 행위들.
이런 것들이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가령 한 가지 예시로
나의 달리기 목표는 항상 한 달 누적 100km가 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100km란 성실히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수치이다.
한 번의 달리기가 주는 의미도 크겠지만
나는 누적이라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한 번의 달리기는 대게 5km로 집 근처만 배회하는 거리다.
그러나 누적의 100km는 나의 거주지인 안양에서 한우의 고장 횡성까지 간 거리이다.
실로 누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이런 곳에서 발휘된다.
(물론 횡성까지 울트라 마라톤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난 10월에는 누적 130km, 세종시까지 갔다. 11월 26일 기준 11월 누적 역시 100km를 넘었다. 이렇게 목표를 달성했을 땐 정말 나 자신을 너무나도 칭찬한다.)
현재의 작은 부분 부분과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서
미래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거나 트라이애슬론 초심자 코스를 뛸 수 있다거나
장편소설을 한 권 쓰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적이라는 것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고 싶어 하는 일은
결론적으로 성장과 관련된 일에 직결되는 것.
그렇다면 성장이라는 것 자체를 내가 '지향'하고 있나 보다라고도 생각되었다.
아직도 어리고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끼고
(물론 개인적인 성격이지만 자신감이 많거나 자존감이 높은 편은 아니다.)
부정적인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들을 적용하고 찾아 계속되는 노력을 통해 삶을 지속 중이다.
노력만큼은 자신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노력만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성격은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은 이것, 다음 달에는 다른 것이 발전되는 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자면
이렇게 살다 보면 어느 정도 원하는 모습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간절히 그렇게 되길 바라며 살아간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숫자만으로 기록되는 ‘나이’라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95세쯤 나이는 숫자라고 생각할 것 같긴 하다.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나에게 삶이란 끝나는지도 모르겠는 산길을 걷고 또 걷다가
갑자기 숨통이 탁 트이는 제주의 오름들의 정상과 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오름들은 땅이라는 것으로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오르락내리락해도 모두 내 인생선상 위에 동일한 시작점으로 놓여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지금 현 시간의 나는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어느 정도 중독된 것은 아닌가 싶다.
중독이라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나 좋은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지금 이렇게 노력을 해야 하는 때에 맞추어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이러다가 또 엄청나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나 몇 달이고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문명이라는 마약 같은 게임을 좋아한다. 악마의 게임이라고도 불린다.)
그런 쉬는 시간도 있어야 또 다른 성장하는 모습으로 다시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를 돌아보자면 성장의 'ㅅ'자도 못 갔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에게 어느 정도 긍지를 느끼는 것은
내가 나를 보아도 보기 좋은 모습이기에 그렇게 느껴지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취향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의 목록
지향은 나를 구성할 것들의 목록
취향은 나를 소개할 것들
지향은 내가 살아갈 모습에 대한 것들
취향은 내가 서있는 곳
지향은 내가 서있을 곳
지향하는 것이 취향이 되는 것까지 끊임없어 보고 싶다.
인생 마라톤을 한다. 계속해서 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