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 그뿐이다.
세상 모든 곳에 해당하는 하나의 원리원칙이 있다. 방금 지나가서 판단이 되지 않은 이른 과거(대략 1초 전) 혹은 1초 후 다가올 미래는 그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혹여나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고 해봤자, 그게 맞았다고 한다면 정말 단순하게 그 일은 그렇게 될 일이었을 뿐이고 그 선택을 실제로 한 것은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결정’을 했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착각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로 인해 스스로 자만하거나 비난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결과물에 있어서 사실 관여 된 것은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냥 일어난 일인 것이고 시간이 흘렀을 뿐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이 변해 그것이 나에게 밀려들어왔을 뿐인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정말이지 모두 스쳐 지나가고 나를 통과하여 흘러간다. 기쁨은 기쁨으로만 남지 않을 수 있다. 슬픔 역시 슬픔만으로 남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이면이 존재하고 각 면에 옳은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삶의 답을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는 안정감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세월을 후회하고 살아왔다. 왜 그랬을까 하며 또 후회를 하곤 한다. 아마도 당시 상황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후회라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리고 낭비했다. 잘했어도 더 잘 해냈어야 했고 못했으면 내가 나 자신을 최악의 사람으로 몰아갔다. 모든 것이 내 계획 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은 모두 나의 잘못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도 않는데 말이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 탓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 스스로가 스스로를 배척했던 것이다. 게다가 남들에게는 후회하지 않는 척을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재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나’ 자신에게 단 1%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과거가 참 아쉽게 느껴지곤 한다.(이렇게 후회를 한 번 더 한다.) 그래서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너무 자만하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품는 두 가지의 말이 있다.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듯 그저 한번 넘기면 된다. 그리고 그저 웃어야지 어쩌겠어. 이 두 문장이다.
(기억상으론 유퀴즈에서 유재석 님이 하셨던 말인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정말 정말 좋은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성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삶에 대한 태도가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기에 환상에 가까운 말은 그저 이론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래도 한 번쯤은 속아보고 싶었다. 속아서라도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 하루가 된다면 투자해 볼 법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책을 넘기듯, 그저 웃어넘기는 것을 삶에 적용해 보니 아니 이게 정말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유레카!)
매분 매초 어떤 상황이 나에게 와도 적용했다. 아니 적용하려고 '노력했다.'가 올바르겠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나에게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삶에 적용시키고 난 후에는 상황을 작은 파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해바다의 모래사장에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 서있다. 멀리 보이던 큰 파도가 내 발 앞에서는 작은 파도로 잘게 부서져 나의 발을 적신다. 순식간에 적시지만 적신 것 보다 더 빠르게 물이 발에서 탈출한다. 발에는 젖은 물의 감각만 남아있다. 그리고 적셔졌던 것보다 더 빠르게 강한 햇빛에 의하여 물은 증발해 버린다. 물은 이제 나에게서 떠나갔다. 어떠한 상황이든 이렇게 맞이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짐만이 아닌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자잘하게는 층간소음(소음 수준은 자잘하지 않다.)부터 크게는 사람과의 깊은 갈등까지. 모든 것에 적용한다.
나는 회의적인 데다가 애초에 참을성도 많지 않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편은 아니기에 마음속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는 편이다. 그리고 그것이 표정이나 행동으로 매우 잘 보이는 유형의 사람이다. 최근에 SNS상에서 자주 보이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문구가 있는데 마치 나를 저격하는 말과도 같게 느껴지곤 했다. 그만큼 나는 너무나도 감정적인 동물이고 감정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도 못하는 인간이다. 그런 나를 보고 있자면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해파리 같다. 바다는 감정. 해파리는 나. 그만큼 무언가에 의한 구원이 필요했다. 차라리 해파리(나)가 그물에 걸려 바다에서 꺼내졌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 아무도 그물을 던지지 않는다. 인기척도 없다.(해파리가 인기척을 느낄 수 있을까.) 구원의 길은 역시 나 스스로 개척하지 않는 이상 생길 수 없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포획하기 위해 그물을 만들어 던져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 대한 노력에 너무나도 진심이다. 잘되지는 않지만 노력한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듯 상황을 넘긴다는 말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책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정말 가벼운 일이다. 그리고 정말 쉬운 일이다. 가벼움을 넘어서 독서가 신나는 날에는 스네어 드럼을 강타하듯 경쾌하게 넘겨지기까지 한다. 평범한 독서는 1페이지부터 300페이지(대략)까지 정방향의 흐름으로 간다. 그런 독서의 흐름에 단순히 책의 한 페이지를 꾸준히 넘기는 일은 일도 아니다. 상황을 그렇게 인지해보기 시작했다. 책 페이지는 많이 넘겨본 만큼 똑같이 넘겨보기로 했다. 정말 그냥 넘겨보았다. 아마도 처음 적용을 했던 때가 운전을 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저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하고 싶은 사람이 꽤 많다. 그럼 나는 역시나 그렇게 피어난 감정으로 인해 불편해진다. 그날 정말 이상한 운전자가 있었고(꼭 그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흐릿하게 본 다음 넘겼다. 정확히 인지하지 않았고 그 사람은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됐다. 페이지를 한 장 넘겼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의 감정 역시 피어오르지도 못한 채 어디론가 산화되어 사라졌다. 나의 감정은 높은 고지대의 광활한 고원같이 잔잔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갔다.
지금도 물론 그런 불쾌함을 느끼면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흔들어지곤 한다. 하지만 고개를 흔듦으로써 감정을 날려버리고 있다. '왜 저럴까.'라는 절레절레가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든다. 감정이 고원 같아진다는 것은 바람과 같은 외부적 완력이 필요한 것이다. 바람이 일어 먼지 같은 것을 날려버려야 한다. 그것은 고개를 흔드는 것일 수 있고 코로 깊은 숨을 들이 마신다음 1초간 숨을 양 폐 속에 꽉 붙잡아 두었다가 입으로 천천히 내쉬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정을 날려 보내려 한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이 과거 불같이 화를 내던 내가 생각났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남에게 불쾌함을 선사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지만(불쾌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는 많은 화를 낸다. 결국 화를 내서 뱉는 말과 행동은 그 공간을 돌고 돌아 나의 귓바퀴를 타고 나의 고막으로 들어온다. 정말 바보천치가 따로 없었다. 그 행위를 함으로써 결국 기분이 더욱더 나빠지는 것은 나인데 말이다.
이제는 여러 방법과 노력의 결과로 마음을 안정시켜 불편한 상황이 와도 나는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불편해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횟수가 줄어든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모든 것을 그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어쩌면 좀 너그러운 모습을 스스로 보여준다랄까.
그리고 그저 웃어야지 어쩌겠어라는 말은 앞선 말보다 더 행동하기 정말 어려운 고난이도 스킬이다. 웃는다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웃음이라는 것을 달고 사는 편이 아니다. 웃음이 생각보다 헤프지만 그 웃음이 나오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게 만드는 유형이다. 웃음가면보다는 표정이 크게 밝지 않은 무표정한 가면이 주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페이지를 넘기는 것보다 웃음이라는 것에는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했고 더욱이 그런 나의 모습에 적응이 필요했다.
웃자. 웃어보자. 웃어봐. 이 주문을 외우다 거울이 있으면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보며 한번 웃어보곤 한다. 평상시에는 거울의 나를 면도할 때 외에는 특별히 오래 쳐다보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답답하거나 꽉 막힌듯한 일이 있다면 난 거울을 찾는다. 혹은 거울이 없다면 빛이 잘 반사되는 유리를 찾는다. 그곳에서 정반대의 나에게 웃어본다. 미친 사람처럼 '하핳'을 하는 것이 아닌 편하게 미소를 지어본다. 그러면 마법과도 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확 감소되는 것을 느낀다. 스트레스정도가 말도 안 되게 낮아진다. 책장을 넘기는 것과는 완전한 다른 결을 가진 마법이다. 책장을 넘기는 것은 사실 보지도 않고 인지도 하지 않는 것이기에 감정을 무無의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있었으나 없게 만들어 보는 것. 그러나 웃음은 그 자체를 변환시켜 버린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존재하는 것을 다른 의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책과 웃음에는 그런 다름이 존재한다.
나는 한 아이의 아빠이다. 웃음이 적은 나에게 아기를 기른다는 것은 참으로 천로역정天路歷程과도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있다고 했던가. 아기를 통해 미소를 짓는 연습을 반 강제적으로 하게 되었다. 반은 진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나의 아기를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반은 별생각 없으나 아기가 쳐다보니까 미소를 짓는 것이다. 마치 마스크를 낀듯한 웃음을 짓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연습이 되었다. 육아로도 미소 짓는 연습을 온전하게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울과 아기를 통해 적당한 미소 짓는 방법을 알고 배웠다. 세상 참 모를 일이다.(그렇다고 아기를 보는 나의 반절 미소가 가짜라는 의미는 아니다.)
삶 속에는 수많은 불편한 상황들이 있다. 가령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거나 아니면 불편한 사람과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던가.(사회생활에선 주로 있는 일 아니겠나.) 그럴 때 연습했던 미소를 장착하고 출발한다. 상황이 왔을 때 급히 장착하기도 한다. 그 차이가 나의 감정의 출발지점을 다르게 한다. 미소가 없을 때에는 감정의 골에서 출발을 한다. 높고 날카로운 돌들을 손으로 짚고 맨발로 딛고 올라가야 한다. 많은 상처가 생기고 넘어지기도 한다. 발을 잘 못 딛고 손을 잘못짚어 더 깊은 감정의 골로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날은 무척이나 힘든 날이 되는 것이다. 미소를 가지고 대하는 것은 나의 멋들어진 순백의 사무실에 불편한 사람 혹은 상황을 초대하여 서있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순백의 사무실에 들어온 이상 아마 외부요인들은 눈치가 보여 손을 어디에 올리기도 어렵고 매우 신경 쓰이게 될 것이다. 외부적인 것들은 자신과는 다른 경계성에 분명 조심하게 되어 있다. 생각보다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소라는 힘은 그렇더라. 그리고 이상하게도 미소를 가지고 있는 나 역시 모든 것에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이상한 말과 행동을 모두 저 멀리로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려 보낸다.
하루 정말 행복했고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감을 이루 말할 수 없어도 항상 불행이라는 녀석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곤 한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진하디 진한 여름철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여버려 아무 존재가치가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정말이지 지금의 나는 그런 것이 두렵지 않다. 그만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노력해 왔고 체득 중이기 때문이다. 다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다시 만들어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물론 화라는 감정에 휩싸일 때도 분명 있지만(나는 예수 부처 알라가 전혀 아니기에) 능구렁이처럼 스무스하게 비켜지나갈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모든 일은 나의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예측할 수도 없거니와 예측해도 절대 내가 만든 상황이 아니다. 그 말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임소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 판단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일어난 일이고 그 바람에 잠시 나의 감정은 꽤 흔들렸을 뿐이다. 그 바람은 어디에서도 불어오는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이다. 나의 감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돕고 부축해 줄 수 있는 것 나뿐이다.
나는 이제 스스로 고통받지 않은 채 하루를 잘 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하루라는 한 장을 넘긴 것이다. 그러면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