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달리기와 나. 첫 번째

살기 위해 달려왔다.

by 지우

왜 달리고 있는가.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땐, 이미 중거리 러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왜 나는 긴 거리를 달려야만 했는가. 5km 30분 정도를 달리는 것이 아닌 1시간 이상을 10km 넘게 달리고 있다.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아니면 쫓겨서 달리고 있는 것일까. 달릴 때 음악을 듣거나 강의를 듣지만 머릿속에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떠나가질 않는다. 왜 나는 이러고 있는가. 지면을 수천번 밟고 딛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초부터 있었던 인간적 본능이 왜 이제야 깨어난 것일까.




아마도 나는 살기 위해 달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작년 8월 뒤집기에 열심인 아기를 보고 있을 때였다. '어쩐지 달리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달리기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유랄 것이 필요한가 싶었다. 그저 순수성에 가까운 달리기가 하고 싶어 졌다. 성인이 되고 대다수가 그렇듯 운동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달리기라는 것만큼은 온 힘을 다해 밀쳐냈었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유산소 운동자체를 선호하지 않았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이 제일 아까웠다. 아마도 근력운동을 통해 외적인 근육을 만드는 것에만 포커스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유산소운동은 쓸모없고 오히려 근손실만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근육질 몸매는 아니다. 그냥 핑계였을 뿐이다.- 아마 당시엔 어떤 이유든 찾아내 싫다고 했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산소운동은 정말이지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없이, 어떠한 것도 없이 뛰기만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재밌겠냐 싶었다. - 나에겐 '재미'라는 요소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태엽 같은 존재다. 그만큼 중요하다. - 군복무시절 의무적 달리기의 기억으로 생긴 오해 혹은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군대에 입대하고 나면 싫든 좋든 억지로 뛰게 된다. 게다가 꽤 자주 뛴다. 땀냄새를 폴폴 풍기며 동기 혹은 선후임과 함께 죽어가는 얼굴을 하며 같이 뛰었다. 모두가 뛰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하기 싫음'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다. 구보(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모두들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것 마냥 오이비누를 이곳저곳 장렬하게 문지르고 씻어댔다. 달리기가 취미가 아닌 나에겐 그런 존재였다. 어쨌든 간에 엄청나게 싫었다.


작년 8월에는 무엇 때문에 내가 ‘뛰어볼까?’라고 생각했을까. 건강해지고 싶었을까. 어디론가 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행동으로 까지 옮겨갔던 것일까. 운동회라는 것이 나의 역사에 존재했을 때부터 달리기는 나에겐 그저 장기자랑 일 뿐이었다. 축복스럽게도 달리기에 대한 능력치는 일반인 수준에선 훌륭했다. 매번 계주에선 마지막 주자, 평가 달리기는 항상 1등을 했고 내가 잘 달린다는 감각은 항상 충만했다. 심지어 도망치는 것은 자신이 있었기에 더 과감하게 살았다. - 등교시간 30초 전에는 항상 달리고 있었다. - 그만큼이나 달리기는 나의 우월의식인 것이지 흥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순수하게 달리기를 즐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에 와서 '달리기를 한다.'라는 것 자체가 신선한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에 와서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생각이 생겼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무언가 아찔하고 간지러운 느낌과도 같았다.


또 의문인 것은 나의 삶 중 달리기라는 것이 굉장히 단절되었었다는 것이다. 뚝 끊겨 존재하지 않아 졌다. 나의 일생을 달리기 줄자 - 가령 달리기 줄자라는 가상의 존재 -처럼 늘어뜨려놓는다면 20cm부터 30cm 부분은 없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를 거쳐 사회로 나가면서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데 신체능력만큼은 뒤로 후진했다. 성인이 돼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달려봤을까 싶다. 그것도 아마 다급하게 지하철을 타러 가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저 달릴 공간과 달릴 시간과 달릴 이유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달리기에 대한 정보 역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인 중 달리기를 하던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마라톤 역시 나에겐 관심조차 없었을 뿐, 달리기와 관련된 모든 것은 생물학적 성인이 된 나의 세상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22년 8월로 돌아가보자. 갑자기 러닝을 하겠다고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했다. 와이프도 갑자기 뜬금없는 선언에 놀랄 법도 했겠지만 허락했다. - 근데 왜 허락을 받았을까. 부부로서의 신의였을까. - 아무튼 허락을 받고 이것저것 물품까지 구비했다. 트레이닝 복 상하의, 러닝 시 발바닥이 미끄러지지 않을 양말, 뛰는 동안 핸드폰을 넣어둘 복대, 당시 머리가 굉장히 길었기에 헤어밴드, 적당히 뛰기 좋고 가벼운 러닝화까지. 그러고서는 달리기라는 것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혼신을 다해 공부했다. 다시는 없을 시험처럼 공부를 불태웠다. 다시 돌이켜보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 공부는 참 열심히 했었다. 아마도 시킨 것이 아니고 시발점이 나의 마음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막연하면서도 달리기를 시작하면 아마 평생 해야 함을 무의식 중으로 알았던 것일까. 발이 지면에 닿는 위치의 중요성, 몸의 포지션, 몸의 기울기, 몸의 협응력, 러닝을 하기 위한 다른 보조운동, 러닝전후에 해야 할 스트레칭 방법, 선수들은 어떻게 달리는지, 선수들은 러닝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 최애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구매하여 읽었다. 많은 준비를 거친 끝에 꽤나 맑은 날씨에 무작정 진출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2022년 8월 10일 오전 6시. 3.09km를 달리고 1km당 6’ 54 “페이스, 21분 20초 소요. 집 근처 아무 곳이나 싸돌아다니며 달리고 쉬고 달리고 쉬고를 반복했다. 다시 시작하는 달리기로 정말 내가 신체적으로 나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몸은 오래된 배달음식 누적과 음주로 인해 무거웠다. 게다가 내 무릎은 굉장히 약하다. - 한라산을 완등한 적이 있는데 무릎통증으로 하산만 5시간이 걸렸다. - 그리고 학창 시절 하루 3회전에 가까운 축구로 항상 발목 인대가 좋지 않았다. 첫 달리기를 하면서 전신의 모든 기관들이 비명을 질렀다. 발목, 무릎, 고관절 심지어 어깨와 팔목까지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마음먹은 달리기에 지고 싶지 않았다. 통증은 임계점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통과하리라.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매일 나갔다. - 아직까지는 내가 이기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보호대 없이도 통증이 없다! - 그리고 정말 열심히 달렸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집중했고 또 집중했다.


이후 2022년 8월에는 78km를, 7월 86.2km, 10월에는 113.3km를 달리고야 말았다.- 달리고야 말았다 보다는 습관으로 만드는 것을 해내고 말았다가 사실 더 어울릴 듯하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다. ‘이 운동은 내가 평생하고 살아야겠구나.’라고. ‘순수 뜀박질’을 하는 것에 잠재되어 있던 DNA가 꿈틀대다 윽박지르며 세상으로 나왔다. 마음속 어디엔가 있던 '달리기'라는 녀석의 해방기념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32세에 접어들어 새로운 달리기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는 달리기 능력 뽐내기가 아닌 생존집약적 행동으로 탈바꿈되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을 위한 달리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고 지금까지 진행한 달리기. 그것을 통해 얻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해 겨울, 고됬던 응급실 간호사생활과 육아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 굉장히 스트레스에 취약한 타입이다.- 간호사인만큼 사실 정신건강의학과에 문을 여는 것은 나에게 형刑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정신건강진단을 경험했고 또 - 부끄럽게도 - 그 분야를 싫어하기도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열어볼까?'했을 땐 나는 강렬하게 혼자임을 느꼈다. 정말로 문을 열어야만 했다. 그것도 내손으로. 아무도 열어줄 수 없는 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정리하였으나 그 와중에 달리기만큼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냥 나 자신이 너무나도 흔들리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어떤 것이든 붙잡아야 했다. 그게 옳은 방식이었는지 모르겠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면서 경구약과 함께 달리기 만큼은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라니까 더 열심히 달렸다. 달리기를 처방받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마음이 죽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악으로 달렸다. 죽어져 불씨가 꺼져버린 마음에 다시 바람을 불어보려 했다.


비가 오든 미세먼지가 좋지 않든 정말 열심히 달렸다. 하루에 10분만 달리더라도 달렸다. 정말 살기 위해 달렸다는 말이 어울리는 나의 달리기였다. 치열했고 나약했다. 나약하고 희미했다. 희미하고 가련했다. 마음이 더 깊이 잠수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물을 퍼냈다. 나의 감정은 하루하루 나아지는 듯하다 하루하루 더 나빠졌다. 하루는 기분이 적당했다가 하루는 모든 것이 내동댕이 쳐졌다. 그런 내가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매우 가여웠다. 그래서 꼭 하나만큼은 나를 위해 했어야 했고 그것은 달리기였다. 끈질기게 달리기를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를 건너뛰는 날이 있더라도 한 주 동안 한 번도 뛰지 않은 적은 시작하여도 없었다. 정말 살려고 신발끈을 열심히 동여매었다. 다 달리고 신발끈을 푸를 때는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해소감이었을까. 안도감이었을까. 혹은 날아간 우울감의 조각이었을까. 어쨌든 그간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 거리를 달려온 것이다. -지금까지 1,200km를 뛰었다. 서울에서 제주를 한번 왕복하고 한 번 더 제주도로 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달린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우울의 늪에 깊게는 빠지지 않아 3개월 정도 안에 약을 끊었다. - 물론 약을 먹기 싫어 다시 가지 않은 것도 있다. - 이겨냈다기보다는 나의 마음을 정상궤도로 올리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과거에 비해 달리기는 매우 가벼워졌고 페이스 역시 훌륭한 모습으로 올라갔다. 많은 거리를 달리고 있고 그것이 힘들지 않다. 간단히 보자면 순수하게 달린 것으로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만큼은 달리기가 살기 위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정말이다.


달리기를 통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을 달리기로 하고 있다. 덤으로 건강해지고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 볼 수 있다. 체력이 기반이 된 정신은 단단해지고 있다. 단순 몸을 위해서만 달린다고 하면 아마 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많은 복합적인 감정의 탈출구와 배출구 그리고 하수구가 나에겐 달리기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이제는 생존적 달리기를 넘어서 미래에는 마라톤 풀코스도 도전해보고 싶다. 결국 살기 위해 달렸지만 지금은 달리기가 삶의 엔진이 된 것이다. 마라톤을 목표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는 날이 올 것이다. 결국 나는 나의 삶을 이겨냈다. 또 더 나아질 것이다. 달리기. 그것이 내 인생의 방식이다. 나는 또 나와 함께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