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에서 눈 돌리어 장점을 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자. 주변을 둘러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더러 그렇지 않은 시간대나 지역이 있을 수 있기는 하다. 그래도 시선의 도착점엔 언제나 사람이 존재한다. 사람을 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눈을 두면 된다. 사람의 여러 부분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 보면 어여쁘고 여려 보일 수도 있다. 혹은 결점처럼 보일 수도 있고 못 나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좋은 것을 보기로 해보자.
사람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비언어적 행동이다. 비언어적 행동에는 제약이 없다. 경계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은 즉슨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좋게 생각할 수 있다. 좋은 모습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내가 행한다. 또 그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기묘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건 나에게도 편안하고 좋은 시간이 된다. 자연스러움은 그러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 이외의 사람들을 보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눈에 들어오고는 한다. 굳이 진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보인다. 찾아 나서지 않아도 보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 인지되는 햇빛의 양 정도랄까. 부담스럽지 않게 정확히 인지할 정도만 들어온다. 그 정도 양으로도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보아야만 삶이 윤택해진다. 사회는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 이외의 사람이 있어야 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람이 없다면 인간적인 것에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관계가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누가 사람이라고 불러 줄까. 관계가 있기에 사람인 것이다.
‘이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고야 말겠어.’라는 마음을 단 한 틈도 가지고 있지 않다. 흘러들어오는 자연의 모습 자체로 인지가 될 뿐이다. 자연스러움과 억지의 차이는 강아지도 알아차릴 만큼의 인지적 차이가 존재한다. 자연스러운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러면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지나간다. 억지라는 것은 강아지도 가던 길을 멈추어 빤히 쳐다볼 것이다. 있는 힘껏 귀를 세우고 꼬리를 바짝 경계적 태세로 전환한다.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만 보여주리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 가면을 착용하고 등장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수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거짓일 거야.’ 따위의 이상한 관념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좋아 보인다. 자세히 보면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타인의 색채를 자신이 보았을 때 아름답지 않은 색이라고 단점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색채들은 굉장한 고유固有한 것이다. 고유라는 것에는 원천적이고 원천적인 것에는 다른 것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 자체인 것이다. 나와는 다른 다른 색채를 즐기는 것이 관계성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쌓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눈을 자연스럽게 두어보자. 뇌를 거치는 판단과 인지를 쑤셔 넣지 말고 자연스럽게 행동해 보자. 눈을 자연스럽게 두면 훌륭한 사람들이 정말 많고도 너무나도 많다. 넘치고 넘친다. 나이불문하고 타인의 훌륭한 부분을 보고 있으면 폭신한 소파에 앉아있는 듯하다. 단숨에 좋은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시간을 들인다면 보이게 되어있다. - 오래 보아야 어여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 단지 시간과 공간과 개념상에서 색채가 나올 틈이 없거나 억눌려 있거나 혹은 아직 스스로도 모르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밤에는 색조가 화려한 꽃들도 눈에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이 트고 빛이 땅에 도래했을 때는 진정한 색이 보이게 된다.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말이다.
단점을 보다 보면 지평선만이 존재하는 늪에 장화를 신고 걷는 것 같이 느껴지곤 한다. 걷다 보면 장화가 벗겨지고 맨발이 된다. 또 걷다 보면 늪에 푸욱 빠져 맨발로도 걷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집중하고 싶지 않아 졌다. - 물론 나에게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한다. 그건 생명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타인의 단점인데 나의 단점인 것 마냥 나의 기분과 감정에 무리를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단점을 본다는 것은 그러하다. 꽤나 해로운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고 인지하는 것은 더하다. 판단까지 한다면 최악이 된다. 최악은 나의 머릿속에서만 맴돌게 되는 것이다. 내가 판단한 '단점'을 지닌 타인은 사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매우 역설적인 것이다. 마치 큰 거미가 다른 곳에서 -부웅- 날아와 나의 몸에 붙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 거미를 떼어 내 몸에 붙일 것 일 수 있겠다.
'큰 사람은 자신보다 큰 사람을 찾는다.
적당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적당한 사람을 본다.
작은 사람은 자신보다 더 작은 사람을 찾곤 한다.'
사람은 큰 사람, 적당한 사람, 작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눈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눈과 마음이 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클 수 있고 작을 수 있고 적당할 수도 있다. 나는 큰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작은 것은 작은 것일 뿐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혹은 품어주고 길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것도 크게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단점이라는 허상에 빠지지 말자. 허상이 아닌 가능성을 보자는 것이다. 혹은 자신이 그렇게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력은 언제나 정방향대로 흘러간다. 옳게 흐른다는 것이다. 노력이라는 것은 배신하는 법이 없다.
장점을 보다 보면 오히려 나의 마음이 가득 차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점을 바라본다는 것은 타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배울 것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탈무드에선 이렇게 말했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말은 진리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나만이 가르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내가 더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차이에서 오는 가르침은 매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 간의 격차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익히고 누적해야 하는 것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세상이고 세상에는 수많은 관계가 존재한다. 관계에서 오는 가르침을 수용하고 체득해야 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인생관에 대해 엿볼 때에는 굉장히 경건한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와는 전혀 ‘다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경건함을 가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다름’이 매우 강한 ‘틀림’으로 다가올 수 있을 수 있다. 위에 글에 장황하게 장점에 대한 마음을 써놓았지만 나 역시도 하찮은 인간이다. 그래서 나의 마음에 보초병을 세워야 한다. 자연스러워도 매번 좋은 것만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하다.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보류하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생각에는 가림막 같은 허상이 존재할 수 있다. 자신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허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나의 허상이 주는 망상은 최악 중 최악이기 때문이다.
마음 보초병에게 확실한 명령을 한다. 마음속에 '틀림 풍선'이 띄워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화살을 준비하도록 한다. 조금이라도 부풀어 오르려는 '틀림 풍선'들을 다 터트려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틀리지 않는 것일 테니 말이다. '다름'일뿐이다. 애초에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기에 실존하지 않게 해 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없으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마음속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 늪이 보인다면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면 된다. 돌아섰을 때 길은 많고도 넓고 존재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뉴스나 SNS에서 썩은 이야기들을 배출해 내도 말이다. 내가 느끼는 세상은 좋은 부분이 많고도 많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둘러싸고 있어 주는 환경과 사람들은 역시나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이 넘치고 넘친다는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지 않아도 보이기 때문에 좋은 세상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도 알아야 한다.
정말이지 모두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두들 좋아하는 것을 하고 행복한 것을 보고 기쁜 생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았으면 한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선순환이 되어야 한다. 베풀고 나누고 주어야 한다. 긍정적인 것은 발화하여 퍼져나간다고 믿는다. 퍼져나가야 무한한 것이 된다. 유한한 것에 갇힌 채 썩어져 가서는 안된다. 많은 관계성을 가져야 하고 그 관계성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나 혹은 누군가로 퍼져나가 더 많은 것들에 행복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