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30년 동안 이사를 4번 했다. 그러니까 총 다섯 개의 집에서 산 것이다.
신혼집은 떠올리기도 싫은 반지하방이었다. 둘 다 직장이 있었지만 무일푼으로 결혼한 우리는 천만 원(이마저 대출을 받았다.)으로 전세를 구했는데 방 하나에 부엌 하나인 반지하방, 그게 최선이었다.
가구는 아예 없었고 중고 물품으로 작은 냉장고와 짤순이가 전부였다. TV도 없어서 퇴근하고 근처 책대여점에서 소설책을 빌려다 읽으며 심심함을 달랬다.
이웃과의 교류도 없었다.
불러오는 배를 안고 남편을 기다리던 습하고 어두운 방. 방은 그렇다 치고 더 문제는 부엌이었다. 처음에는 곧잘 요리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부엌에서 쥐를 본 이후로는 아예 요리를 그만두었다.
남편이 없을 때는 방에만 콕 박혀 있었다. 남편이 있었으니 견딜 수 있었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어찌어찌 대출을 받아 25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는 작지만 깔끔하고 좋았다. 볕이 잘 들고 5층아파트에 3층이었다.
4년 터울로 둘째도 태어났고 아이들은 아파트 안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녔다. 아이들을 돌봐주던 아주머니가 옆통로에 살아서 그 아주머니를 통해서 동네 사람들하고도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7년을 지내다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친정 부모님이 길 건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학교도 길 건너지 않고 갈 수 있고 아이들이 두 집을 오가기도 편할 것 같아서 건너편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30평 남짓한 이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안정된 시스템에서 잘 지냈다. 두 아이는 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녔고 마치면 할머니집으로 갔다. 나도 남편도 퇴근을 하면 친정집으로 가서 저녁까지 얻어먹고 쉬다가 10시쯤 집으로 갔다. 이모랑 삼촌도 있는 집에서 아이들은 구김 없이 밝게 자랐다. 나도 퇴근하면 친정집 소파에 길게 누워 TV를 보며 쉬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그 와중에 집값 광풍이 불었고 당시 전세에 살던 우리는 부랴부랴 많은 대출을 끼고 46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이들도 할머니의 보살핌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엘베가 있는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싶은 단순한 소망 때문에 무리한 선택을 했다.
전망이 좋은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그것도 34층. 고소공포증이 있는 남편은 한동한 창가에 가지 못했을 정도로 뷰가 좋은 아파트였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갔다. 우리는 빚이 많아 허덕였지만 아이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빛 좋은 개살구였지만 남보기에 우리 가족은 무척 잘 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을 잘 알아서 검소하고 알뜰한 씀씀이를 지니고 자라났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갖게 되면서 신도시보다는 도심 가까운 데 살기를 원해서 다시 한번 이사를 하게 되었다. 7년을 살던 집을 떠나 번화한 도심으로 이사를 왔다.
다섯 번째 집이자 지금도 살고 있는 이 집은 올해가 6년째지만 한동안 정이 가지 않았다. 집 밖에만 나가면 백화점과 마트가 즐비하고 수시로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라 조용한 신도시에서 살던 나는 정신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 아이는 결혼을 했고, 작은 아이는 직장을 갖게 되면서 집을 떠났다.
6년 남짓 살면서 나도 이제 적응이 되어 집 밖의 번화함이 좋아졌다. 혼밥을 많이 먹고 카페 출입이 잦아지면서 가까운 곳에 선택지가 많아서 좋고, 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이 많아서 걷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집안에 있다. 요즘은 남편마저도 취미생활로 늦게 오는 날이 많아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혼자 있을 때가 많다. 짐만 남겨진 아이들 방과 넓은 거실이 쓸데없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방들을 드레스룸이나 작업실로 만들어 볼까 생각해 봤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사를 가기로. 좀 더 작은 집으로.
방마다 가득한 집들을 덜어 내고 가벼운 삶을 선택하기로.
아이들은 떠나고 넓은 공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넓은 집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다.
일단 장롱 속에 가득 찬 옷들부터 과감하게 버려야겠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소중한 물건도 없다.
책꽂이에 가득 꽂힌 책들도 기증하고, 가구들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 주고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세상 속에서 움직이며 살고 싶다. 언젠가는 움직이기 힘든 날이 오겠지만 그 시간까지는 머무르기보다 떠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최소한의 짐만 지니고 있어야 하리라.
최대한 가볍게, 물건에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