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무색유취

by 다나

나의 집 냉장고에는 얼음 정수기가 있다. 매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유리컵에 얼음이 가득 뽑아 먹는다. 냉장고 얼음은 그리 단단하지 않고 씹으면 쉽게 으스러지는 정도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침에 먹어도 상관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의 주장을 묵살하는 이가 있다. 바로 이모다. 이모는 내가 얼음을 와드득 씹어 먹을때 마다 틀니사진을 내 앞에 들이민다. 나는 얼음을 그만 먹을 생각이없고 이모도 나를 허락할 생각이 없으니 이 조잘조잘한 다툼은 일상이 되어있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빌라에서 나와 이모, 이렇게 둘이 산다. 그닥 알록달록 하지고 달콤한 삶도 아니다. 하지만 쓰지는 않다. 쓸때도 있지만 커피의 쓴맛같이 즐길 수 있을 정도 였다. 그냥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나무가 좋았고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좋았다. 큰 것을 바라지 않았고 그냥 매일 한번씩 크게 웃을 수 있는 삶이라면 만족했다.


그러나 나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는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현재의 안주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꽤나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쯤이었나, 부모님은 나에게 미국으로 이민가자고 했다. 부모님은 두분 다 평범한 교사였지만 자의적으로 선택한 직업이 아닌 그들의 부모로 부터 강요받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부모들은 현재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게 된 자의적 꿈은 아메리카 드림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때 쯤이었다. 그리고 나의 오빠는 중학교 2학년 2학기 쯤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게 움직이지 않는 나무 였던 난 이민 사실이 달갑지 않았다. 친구들과 떡볶이 사먹고 오락하면서 평생 살고 싶은데 이것들을 다 못하게 된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속상한 마음을 부모님께 이야기 해보려했지만 그들은 이미 마음은 미국에 가있었다. 벌써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고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도 바빠 얼굴보고 이야기할 정신도, 시간도 없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오빠였다. 내가 주먹 불끈 쥐며 이민에 대해 불평하면 오빠는 옆에서 아무 말하지않고 그냥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매번 꼭 물어봤다.

"오빠는 정말 가고싶어? 좋아?"

이 질문 뒤, 그제야 오빠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소심했던 오빠의 입에서 이 정도 말은 확신과 긍정으로 가득찼던 말이었다. 그러면 나는 또 토라져 오빠 방을 나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일은 꼭 오빠를 설득하겠노라. 오빠는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다. 한글도 하기 어려웠던 나는 그런 오빠가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의 핏줄에서 천재가 나왔다며 아주 행복해했다. 아마 우리 가족의 아메리카드림의 일부분은 오빠의 영어 그리고 성공도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설득력있다고 생각했던 말들은 그저 그들에게 병아리 삐약거리는 것 같았고 결국은 아무 문제없이 우리가족은 미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향하기 전날 나는 친구 집에 숨어있기로 했다. 혹시 나를 못찾으면 안가도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선생님이었기에 아이들이 할 만한 생각들은 다 꿰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나를 찾아내었다.


통곡하는 날 안고 돌아 온 부모님은 나를 곧장 오빠방으로 보냈다. 오빠방에 들어가도 울음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흘러 나왔다. 오빠는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울음을 참지도 못하면서 오빠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다.

"오빠는 진짜. 왜 가고 싶어..?"

오빠는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나에게 "지금은 무섭고 가기 싫겠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행복하고 웃으면서 살게 될거야." 라고 말했다.


고작 8살이었던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들이었으므로 나에게 그닥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가 한 그말은 오빠가 오빠에게, 자신에게 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오빠는 책장위에 있는 비행기 모형을 가져와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만져보라고 했다. 그 효과는 굉장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울어서 빨개진 볼 아래 묻은 눈물자국과 콧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비행기 놀이에 푹 빠졌다. 그리고 오빠는 말했다. " 이거 타보고 싶지 않아? 궁금하지 않아?"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 쪼꼬만 거에 내가 어떻게 타지? 생각했다.

오빠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냥 웃으며 말했다. "미국 가려면 이 비행기를 타고 가야돼. 왜냐면 하늘을 건너야되거든. 물론 비행기는 이거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당시 온 신경과 땀방울, 모공 하나하나 까지 나의 미국이민을 거부했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소식에 나는 아주 조금 설레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이렇게나 갈대같은가. 다음날 난 누구보다 씩씩하게 집안을 나섰다. 엄마, 아빠는 달라진 내 모습이 좋기도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난 웃는 얼굴로 오빠 손 꼭 잡고 공항으로 향했다.


내 눈에 공항은 마치 미래 첨단도시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신선한 충격들은 나에게 흥미롭고 긍정적으로 인식되었고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이민이라는 거, 미국이라는 데가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생기기도 했다. 커다란 공항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우린 비행기로 향했다. 비행기를 처음 보고 타던 내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설레고 절로 웃음이 나오는 그 기분 말이다. 운 좋게 창문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창문 자리에서 보이는 비행기 날개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이륙을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출발에 나는 와악 하고 소리질렀다.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민폐였을 것 같다. 배가 너무 간지러워서 긁었지만 계속 가려웠다. 하지만 이 붕 뜨고 간지러운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밖을 보기 무섭기는 했지만 흘깃흘깃 밖에 보이는 구름을 보며 또다시 나의 입을 벌어졌다. 하늘 구경을 한창한 후에는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비행기 바닥이 쿵! 하고 흔들렸다.


나는 너무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오빠는 그런나를 진정시켜 주었고 시선을 창문으로 향하게 했다.

"미진아 이거 봐. 우리 미국에 온거야."

하늘구경하고 잠만 조금 잤는데 벌써 도착했다고? 내 상상속에는 하늘 인간들도 만나고 구름도 먹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내가 놓친건 아닐까 불안하기는 했지만 비몽사몽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내 또 잠에 든 나는 아빠 등에 업혀 비행기 밖, 미국으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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