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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Apr 27. 2024

렌터카를 예약하는 그의 빠른 손

우정은 소중하구나

러닝을 하기 좋은 날씨다. 대가리나 벅벅 긁다가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고민하는데 , 이제 갓 상병을 단 신모 상병과 덜컥해버린 약속이 생각난다. 소화가 채 다 되지 않은 몸뚱이를 싣고 그가 거주하는 생활관에 가, 가자고 외치는데 정일병이 신발을 끌며 따라 나온다. 그, 정일병으로 얘기하자면 일병 중 가장 높은 리더의 자리를 차지한 일병참모총장 계급이다. 그래서 나는 걔한테 그게 일병이랑 다른 거냐고 항상 순진하게 놀리는데  특유의 장꾸스러운 미소로 다른 거라고 대답한다. 우린 그 길로 미군 헬스장(소위 미. 헬. 에 간다. )


30분을 걸어야 하는 곳에 위치한 그곳은 최근에 군인들에게 개방된 천국 같은 곳이다. 사제 음식, 사제 옷 사제(싸제라고 발음한다)에 침을 질질 흘리는 우리에게 이곳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지만 꽤 먼 곳에 위치한 탓에 특별한 날에만 도전할 수 있다. 이곳을 걸어가며 별 영양가 없누 이야기를 시시덕거리는데 , 마침 담양에 비어있는 할아버지 집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생각난 지는 모르겠다. 근데 그냥 걷기만 해도 재밌는 얘들이랑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진 거였을 것이다. 담양에 가자..! 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도 몰랐으면서 신군은 좋다고 가자고 외친다. 일 참총(일병참모총장)은 자신이 젤 싫어하는 게 아갈 약속이라며 흥분해서 호응한다. 그렇게 세 마디 만에 덜컥 전역 여행이 잡혀 버린다. 내 홈타운 같은 곳에 잡힌 여행이라 걱정은  들지만 , 얘네들이랑 떠나는 여행이니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데드리프트를 드느라 아픈 다리를 이끌고 우리는 부대 내에 이디야 카페에 들어가 아줌마들처럼 수다를 떤다. 헬스장에 있는 농구코트에서 점수내기를 한 결과 꼴찌를 한 일병 막내가 커피를 사기로 했는데 , 오늘부터 다이어트라며 텅텅  호통을 치던 친구가 크로플을 잔뜩 사 온 걸 보고 우린  실컷 비웃는다. 그는 실컷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진짜 무해하고 건강해 보여 흐뭇했다. 막내라고 해봤자 부대 내에서 00인 큰 형님일뿐더러 농구를 잘하는데도 선임들 커피 사주겠다고 비껴 친 슛을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와서 든 생각이지만 우리 너무 전세 카페인 것처럼 떠들었다. 그만큼  즐거웠나 보다. 도파민 중독인 내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몇 시간을 떠든 거 보니 많이 즐거웠구나. 우린 거기서 서로의 연애를 묻고 , 자유로운 정 일병의 사진첩을 보면서 잔뜩 부러워하고 , 서로의 개새끼들을 미친 듯이 욕하고, 미래를 푸념하고 먹고살 것들을 걱정했다. 언제나처럼 고상한 사람처럼 독서대를 펼치고 책을 읽던 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니체든 에리히 프롬이든 엄청난 철학자들도,  내게 이 정도의 마음의 평안을 주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걔네들을 오래 보고 싶다고 눈이 흔들리는 순간, 내게 남은 95일이 보인다. 그리고 환불 따위 불가능한 렌터카 예약을 잡는 그 일참총의 빠른 손가락도 말이다. 현재를 그래 현재를 즐기라고 말했던 그 어떤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더 아줌마처럼 떠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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