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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Jul 07. 2024

아침에도 빛나는 너에게

아침에는 못생긴 내가

안녕, 난 25살이고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야. 어제는 날이 참 더웠어. 너는 열대야라는 말을 들어봤니? 밤이 끝나가지 않는 그런 밤에 대해서 말이야. 어릴 때 나는 참 밤이 좋았어. 엄마는 내게 언제나 밤에 책상에 앉아서 숙제를 하라고 했는데, 언제나 하기 싫은 마음에 난 누워서 숙제를 했어. 그러다가 숙제를 하기 싫은 날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어, 언제나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듯이 한숨을 쉬며 나를 침대로 옮겨줬었지. 난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눈을 감았어. 그런 행복한 날들도 있었지.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지 않냐고? 아니 그런 건 아니야. 20년이나 더 먹은 나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고 있고 여전히 그 시절의 아이와 다를 바가 없지. 열대야가 너무 심한 어제 괜히 에어컨을 틀자고 말했다가 엄마의 호된 잔소리를 듣고 덥고 습한 내 침대에 눕는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난 이제 너무 무거워서 아무 데서나 누워 자도 엄마는 나를 옮겨놓지는 못하겠구나 하고. 그래도 분명 엄마는 나를 사랑할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찝찝한 기분을 느꼈어. 어디론가 나가고 싶은 날이었지. 아 오늘은 일요일이야.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지. 그런 날에 나는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어. 가만히 있으면 청소하라는 잔소리나 더 듣겠어? 난 2000원짜리 커피를 시켜서 창가자리에 카페에 항상 자리해. 그리고는 3시간이 넘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 시험을 준비하고는 해. 카페 사장님이 보면, 얼마나 속이 터질까. 난 그렇게 적당히 이기적으로 잘 살아남고 있어. 널 발견한 건 공부를 하다 지겨움을 이기지 못한 아침 10시 경이야. 지겨움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게 해. 난 언제나 카페에 갇혀있을 거고. 책을 읽다가 또는 글을 쓰다가 갑갑함을 느끼겠지만. 인스타 속의 세계는 광대하고 끝이 없어. 난 언제나 그 거대한 곳에서 헤엄치며 내가 새장 속에 갇혀 버린 새라는 느낌을 잃겠지.


넌 너의 멋진 구릿빛 몸을 인스타 피드라는 작은 방에 전시하고는 해.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하트를 누르지. 이제 하트가 나를 누르는지 내가 하트를 누르는지 알 수가 없어. 뭐가 더 먼저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야. 그래서 가끔 한 번도 본적 없는 너의 피드에 눌려져 있는 하트를 보면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너를 감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넌 최근에 방콕을 다녀왔더라. 그리고 네가 사진을 찍은 호텔은 참 좋아 보였어.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 아침에 커튼을 걷으면 영화에서 보듯 빠르게 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어. 넌 아무것도 입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었어. 아침이었지만, 분명 그게 일어난 직후는 아닐 거야 그렇지? 너의 머리는 너무 예쁘게 세팅되어 있었고, 너의 표정은 너무나 밝아 보였거든, 그건 아침에 일어나 찍은 사진일 수 없어. 내가 아침에 일어난 모습은 거지꼴이 다름없거든.


며칠 전에 아무렇게나 만난, 아무런 사람이랑 뜨거운 밤을 보내고 일어났을 때 걔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듯했어, 내가 먼저 일찍 일어나 자리를 떴어야 했는데, 아침에 한번 더 하자고 걔를 슬쩍 만지는데. 왠지 기겁을 하더라. 아침에도 멋진 넌 아침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려 얼마나 노력했을까. 넌 그래서 그런 댓글을 받을 자격이 있어. 너의 피드에 적힌 댓글은 언제나 놀라워. 가끔 댓글을 읽어보고는 하는데 현실에서는 하지도 않을 여러 주접댓글들이 적혀있거든. 너의 머리가 너의 손보다 작다는 거라던가, 그만 좀 멋있으라던가. 이런 댓글들 말이야. 넌 그런 댓글들을 어떻게 생각해? 칭찬은 들을수록 좋니? 나는 가끔 칭찬을 듣기도 해. 점잖게 생겼다던가. 어떤 중년배우를 닮았다던가 하는 애매한 칭찬들. 그래도 좋더라. 나는 가끔 들을 정도로 평범하니까. 난 뛸 듯이 기쁜데 너도 그럴까? 그런 댓글을 매일매일 듣는 너는 그럴까?


인스타는 자주 보니? 난 못난 얼굴이지만, 가끔 내 얼굴을 인스타에 올리곤 해. 지울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그러다가도 어떤 친구가 잘 나왔다고 디엠을 하나 보내주면 그게 그렇게 신나서 인스타 피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는 해. 정말 내가 괜찮은가? 가끔 댓글창도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들도 봐. 내게 관심을 보내 준 사람들을 셀 수 있는 작은 곳이라 다행이야. 한 명 한 명 세길 수 있으니까. 무심코 넘어가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내게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에게는 더 신경 써서 다음에 좋아요를 눌러주고는 해. 아빠에게 배운 별것 아닌 교훈은 , 언제나 빛을 지고 살면 안 된다는 거였으니까. (근데 우리 아빠는 매일매일 카드빛을 갚으면서 사는 걸) 너는 쏟아지는 좋아요와 댓글들에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는지 궁금해.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너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하나하나 확인하는 건 아닐 텐데. 만약 내가 그런 관심을 받는다면 나는 쉽게 무너지고 말 거야. 그 모든 관심들에 하나하나 답하다가 혹은 관심을 쏟다가, 내 1년은 2년은 그렇게 가버리겠지. 그래서 평범한 나라서 좋아. 난 네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오늘의 너도 행복했기를 바라. 난 너에게 쓸 글을 생각하며 행복한 아침을 보냈거든. 우리는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만. 내가 항상 너의 피드에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도 모르겠지만. 난 너 덕분에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제나 넌 너의 작은 방에서 빛났으면 좋겠다. 네가 실제로 항상 행복하고 빛나는 건 , 사실 크게 상관없어. 그냥 너는 피드라는 작은 방에서 빛나면 돼. 그게 내가 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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