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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Aug 02. 2024

불행함을 건너가는 법

몰입보다는 부인

y야 안녕.

오늘 너에게 연락이 걸려왔을 때 나는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이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었어. 바다가 보이는 침대에 누워 내가 존경하는 이슬아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는 그런 호사를 즐기고 있었거든.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당황했어. 휴대폰을 바꾼 후에 전화번호를 저장할 기회는 언제든 있었는데 내 칠칠 맞은 성격 탓에 그러지 못했어. 그래도 다행하게도 너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난 단번에 너라는 걸 알 수 있었어. 최근에 가장 오래 그리고 길게 봐왔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너였거든.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그런 좋은 기분을 숨기는 것이 익숙한 나이기에, 그 마음이 전해지진 않았을 거야.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그런 것에 대해 알지 못해 오랫동안 불행이라는 연못에 빠져 살았던 난 군대에 오면서 비로소 그 방법을 깨달았어. 그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이었어. 널 보며 그런 처세술을 배웠어. 심각한 일이 내게 군대에서는 언제든 일어났었는데, 그런 뚱한 얼굴로 너에게 가면 넌 장난스럽게 언제나 그랬듯 날 놀리고는 했었어. 내 불행함을 다 모두 알고 있는 너는 그렇지 않은 척 행동했었는데 그게 너의 속 깊은 생각에서 왔는지, 아니면 바보같이 철없는 생각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가끔 타인에게 보이는 사려 깊은 행동을 보며 전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불행함을 극복하는 건 진지함이 아니라 유쾌함이란 걸 널 통해 깨달아.

  

넌 참 독특했고 이상한 아이였어. 매일 매일 아침에 일어나, 피부에 뭔가 바르고 붙이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난이라고 생각했어. 어떤 주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풋살을 할 사람들을 모으고 하기 싫어하는 얘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풋살을 하고는 했는데, 그걸 보며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너의 독특함이 우스우면서도 재밌었고 가끔 존경스럽기도 했어. 그런 유별남들은 너가 군 생활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한 한 생존 방법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해.

  

중고등학교, 그리고 길고 긴 입시를 거쳐 가면서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를 만드는 것에 항상 미숙했었어. 난 그래서 내 약한 부분을 드러내기 싫어, 매정함을 선택하고는 했어. 그게 너네에게 티가 나지 않았다면 완벽한 사회생활로 잘 감춘 탓이겠지. 그래서 오랜 기간을 거쳐 가며 고백하건데 남은 사람이 하나 없는데, 너의 둥글한 성격 탓에 너와 사무실의 많은 친구들이 남은 사람이 되었네 그렇게 ‘매정함’에 대해 제고하게 해주어서 고마워. 네게 너네들이 남았다는 것이 진짜일까? 가끔 의심되고는 하지만 군대에서 나와서도 우린 가끔 연락하는 사이로 남아있길 빌고 있어.

  

군생활을 편하게만 보냈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불행한 일이 많았고. 화나는 일이 많았고 불평할 곳은 어디에나 있었어. 그때마다 너가 키를 만지며, 날 밖으로 불러내었을 때 머릿속에는 행복함이 감돌았어. 자유가 없는 곳에서의 자유로운 일탈이라니. 지금 생각해봐도 행복하고 좋다. 난 웃고 있지만,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해. 군대만이 우릴 자유롭지 않게 하는 곳일까? 우리가 군대를 벗어나면 우린 자유롭게 될까. 아니 절대 아닐거야. 자유가 언제든 억압받는다고 생각될 때 분명 너가 생각날 것 같다. 다 쓰러져가던 그 더러운 트럭이 생각날 거고. 그곳에서 주고받은 위로가 섞인 농담들이 떠오를거야. 우리가 앞으로 타게 될 어떤 차에서의 어떤 드라이브도 그때만큼 자유롭지 않겠지만. 우린 각자의 어려움이 있을 때 단지, 드라이브를 하러 만나자. 각자의 답답함을 이야기 하며, 각자의 억압된 자유를 말하며 , 더 더 자유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거야. 일단 차가 필요하겠네. 좀 더 자유로운 사람이 돼서 차를 마련해올게. 그때까지 우리 서로가 안보이는 곳에서 애써보자. 잘 지내! y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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