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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Sep 18. 2024

네가 등 돌리며 자던 날

냉담함을 느꼈어

그날은 네가 나를 등 돌리고 자던 날의 이야기야.

 

침대와 티브이만 있으면, 우린 어디를 가지 않아도 행복했어. 너는 항상 하이 클로버를 외치면서 티브이를 끄곤 했다. 나는 언제나 티브이를 끄고 너와 눕는 걸 좋아했지만, 너는 약간의 백색 소음을 좋아하는 듯했어. 넌 나를 변태라고 불렀지만 글쎄 누가 더 변태일까. 약간의 빛과 소리를 좋아하던 너와, 암흑과 무음을 좋아하던 나 중에.

 

그 침대에서 야한 것들을 하다가 너는 문득 네게 고백을 했어. 하필 그런 타이밍의 고백이라 너의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네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아무 말 없이 그냥 너에게 입맞춤을 했어. 너의 고백에 담긴 진심과는 상관없이 그 입술 닿음의 진심은 전달되는 듯했어. 그날부터 너와 함께 자는 날은 많아졌는데 그 다수의 날들 중 그날은 넌 나를 등을 지고 잠에 들었어. 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너였기에 너의 차가움을 견디던 그 짧은 시간을 버티는 건 참 힘든 일이었지. 너의 냉담함의 이유는 그날의 내 무관심안에 있었다고 넌 말했어.

 

일요일은, 너의 룸메이트의 애인의 생일이었는데 난 불안에 떨어야 했어. 왜 그랬냐고? 공식적으로 네가 아는 사람들에게 난 처음으로 소개되던 날이었거든. 거의 매일 가던 학원 일이 끝나고 나면 10시가 넘어가는 탓에 밤늦게 매일 밥을 먹던 나는 살이 5킬로 이상 쪄버렸는데 그런 내가 꽉 끼는 검은색 니트와 슬랙스를 입는 건 너의 친구들에게 참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꽉 끼는 니트와 슬랙스의 연결 부위를 잘 부여잡고 떠난 이수역 앞 술집에서 난 너의 친구들을 소개받았어. 오른팔에 검은색의 문신이 잘 어울리던 형은 활짝 웃으며 우리가 참 잘 어울린다고 해줬고, 왼쪽의 마음씨가 좋아 보이던 룸메이트 형의 사촌 누나는 사진보다 실물이 더 멋있다고 했어. 난 괜히 마음이 더 편해져서 형 누나에게 애교를 떨었지. 누구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친구를 사귀는 건 내겐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인정하건대) 그 당시 사랑보단 너의 친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는 일에 크게 집중했었지. 그런 탓에 너를 충분히 신경 쓰지 못했는데 그런 이유로 너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는 듯했어.


j야 그날 밤에 너에게 핑계를 이야기했듯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어. 지금 행동의 이유를 과거를 굳이 굳이 거슬러 올라가 찾아내는 것은 조금 구차해 보이지만, 난 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열심히 그런 것들을 발굴해 내고 이야기했어야 했지. 사실 내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고, 언제든 혼자일 때가 더 많았어. 그 수많은 시간 들 중에서 적적한 마음에 친구들을 만날 때가 많았는데 어느 날은 우연히 커플 두 쌍과 솔로인 친구 두 명이 같이 만났어. 솔로인 친구 두 명 중 한 명은 나였고, 매일매일 외로움을 타던 나는 그런 의미 없는 만남으로 외로움을 잊으려 노력했으나 커플들의 사랑에 외로움은 더 커져갔지. 걔네들은 은근슬쩍 서로를 챙겨줬고, 우리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했고, 화장실을 갔을 때 우연히 걔네들이 서로를 안고, 키스를 하는 모습들을 봤어. 그래, 젊은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표현하는 게 뭐가 문제겠어. 단지, 내가 오랫동안 혼자인 외로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줬다면 그 친구들을 좀 더 오래 봤을지도 모르는데.. j야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지금 솔로인 왼쪽의 누나와 오른쪽의 형이 그저 커플들의 사이에서 외롭고 우리를 오래 보지 않으려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날이 서있었던 나는 그들에게 애교도 부리고, 많이 웃어주고 궁금하지 않은 것들도 물어보려 했어. 대신, 우리 둘이 있는 것처럼 너에게 먹을 것을 입에 넣어준다거나, 너를 바라보면서 웃는다거나, 갑자기 입을 맞추는 것 같은 건 일부로 피했지. 그게 조금 과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잖아.

 

여기까지가 나의 변명이야. 그 밤 내내, 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너를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 아침이 되고 네 화가 조금 누그러트려졌을 때 넌 나를 안아줬었지. 그때 난 울음이 터져 나왔어. 그 울음은 억울함의 눈물이었을 거야. 널 너무 사랑했어서 했던 행동들이 우릴 결국 한 뼘 멀어지게 했다는 사실이 왠지 억울하고 슬펐어서.


서로를 좋아하는 딱 한 가지 이유로 함께 하기로 결정한 두 사람이기에 다른 서로를, 그래서 미치도록 이해가 되지 않는 각자를 이해해보려 하는 벌을 받는다고 생각해. 우린 그런 이유로 얼마나 더 싸우게 될까. 얼마나 더 눈물 흘리게 될까.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하던 너의 차가움을 이겨냈던 길고 긴 밤이었어.

 

<2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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