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정함에 대해 재고하기
j야 안녕,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비가 내리는 탓에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나고 심술이 났던 난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마침 피부과 시술을 받고 볼이 얼얼한 것이 두통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잔뜩 미워져 있는 내 얼굴을 생각해. 집을 나서면서 못난 얼굴을 가릴까 말까 고민했는데 역시 안 가리기로 했어. 우선, 피부과 시술을 한 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두 번째로, 누군가의 시선으로 괴로운 건 그만하기로 했거든. 우린 생각해 보면 얼마나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나. 그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생각들을 하면서 난 요새 걸어 다니고 있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내리는 비에, 줄줄 흐르는 땀에 온갖 짜증이 몰려오거든 가끔 쓸데없는 사색은 그런 짜증들이 짜증이 아니게 해 줘.
심술이 가득한 마음으로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정리하는데 5 기수 선임이 전역을 하며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 ‘난 절대 군대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거다’. 그의 선언이 난 상당히 감명이 깊었어. 왜냐면, 그때는 매정함이라는 단어가 내 뇌에 맴돌고 있던 시절이었거든. 군대에 들어오며, 사회에서 거쳐오며 만나왔던 사람들과 싸우기도 가끔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더는 만나지 않기로 결심하기를 반복하던 때가 있었어. 그 시기를 거쳐가며 난 ‘매정함’이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 탓에 그 태도를 신봉하기로 했었지. 신기하게도 진짜 그랬어. 누군가와 함께할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매정함으로 사람들을 쌀쌀맞게 굴던 시절이 있었다. j야.
널 처음 봤던 곳은 사회와 군대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던 군대의 큰 강당에서였어. 우리 대대의 그가 쌓아온 짬만큼이나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는 원사 덕분에 우린 언제나 신병을 가장 먼저 데리고 올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그 당시 중요한 일을 하던 나는 그 일에 결정권이 있었어. 10명도 넘게 서 있는 사람들 중에 나는 너를 아주 쉽지 않게 선택할 수 있었어.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은 가끔 주제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는 너를 무조건 우리 대대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 내 10초가 안 되는 선택 탓에 간부와 선임은 그 이유를 물었지만 그 이유를 쉽게 답할 수는 없어. 그건 좀 더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냥 네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를 포함한 여러 신병들을 내가 선택하여 우리 대대로 데려오는 오만한 짓을 하면서 난 그 동물적인 감각을, 그런 탁월한 안목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어. 내가 데려온 아이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잘 적응하고는 날 언제나 흐뭇하게 만들었거든. 이후에 사후적으로 그 감각을 생각해 봤을 때, 난 불가피하게 ‘아우라’라는 가상의 기운을 믿기로 했어. 사랑을 많이 받고,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려 애쓰고, 하루하루 자신을 갈고닦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는, 또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기운이 흘러. 난 그 기운을 아직 ‘아우라’라는 단어로 명명하기로 했어. 언제나 내가 보기 싫어 죽고 싶을 때 난 내 아우라를 잃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널 자신 있게 데려오고서 몇 달 후 나는 그 아우라를 잃은 듯했어. 한 달에도 100명이 넘는 신병들을 교육하는 일이 ‘중요한 일’의 정체인데 그 시절 뽕에 취해 너네한테 위선적인 설교자와 같이 ‘잘 사는 법’을 잔뜩 설교했던 시절이 있었어. 너네한테 멋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나는 나 같지도 않은 모습을 연기했고 그때 그 시절에는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어. 너 혹시, 게이를 연기하다가 실제로 남자를 좋아하게 돼버린 연극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봤니. 난 그런 심정이었어. 그렇게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멋있는 모습을 연기하다가 시간이 흘러 내 직책을 잃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때 난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가, 혹은 모순적이었는가, 혹은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가에 대해서 깨닫고는 내가 가르친 500명이 넘는 신병들을 지나칠 때마다 수치스러움에 고개만 떨구고는 했어. 너와 본격적으로 함께 생활했던 건 그즈음의 일이지. 난 아우라를 잃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넌 내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해 주었어. 넌 매일 자격증 공부를 하고, 헬스장을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내가 일어서기도 전에 내 짐을 들어주고는 날 앉히는 신병이었다. 선임들의 눈치를 누구보다 잘 보는 너는 우리들이 이후에 할 일을 마치 예측하는 듯했어. 넌 가끔 내가 멋있다고 말해주고, 좋은 선임이라고 말해주고, 내 글이 재밌다고 말해줬는데, 너의 완벽에 가까운 사회생활 탓에 난 그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데 진땀을 흘리고는 했어. 과연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무튼, 너 덕분에 온전히 잃었을지도 모르는 ‘아우라’를 나는 조금씩 회복하는 듯하였어. 운동을 사랑하는 것 같은 너를 가끔 따라다니며 운동을 하고는 했는데. 조금만 무게를 치면 고통스러움에 치를 떨며 떨어져 나가는 나를 너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한심해하지는 않는 듯했어, 그게 참 고맙더라고. 넌 고통스러워하면서 매일매일 무거운 걸 잘도 들었었는데 너랑 운동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무게를 드는 고통을 참는 행위’를 잘하는 사람들은 참 삶의 크고 작은 고통들을 잘 이겨내겠구나 생각했어. 삶을 잘 살아간다는 건 , 너도 알다시피 삶의 작고 큰 무게들을, 시련들을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난 너한테서 가능성을 봤어. 그래서 난 네가 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사무실에서 일하는 우리 3명은 먹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중에서도 파김치가 들어간 감자탕을 참 좋아했었어. 파지 감자탕은 실로 우리의 구원이었는데, 실제로 우린 사무실의 분위기가 처참해질 때 즈음에는 언제든 감자탕을 먹으러 외출을 나갔어. 감자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반짝이는 너의 눈빛을 보면서 난 다시 날 둘러싸고 있던 ‘매정함’에 대해서 재고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j 너랑 w과 내가 이 잠깐 우리를 묶어주었던 군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왔을 때도 난 너네랑 감자탕을 꼭 먹으러 가고 싶었거든. 매정함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면서 누군갈 오래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그때가 오랜만이라 좀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
아유, 말이 길어졌네. 결론은 웃기지만 난 파지 감자탕을 몇 번이고 사도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되야겠다. 조금만 기다려주라. 곧 데리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