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살이 | 아기가 또 운다

#H7

by 송생님



베트남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 한 번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아기 울음소리. 때는 밤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갈 때였다. 부디 우는 아이가 없기를 바라며 공항으로 향했다. 꾸벅꾸벅 졸며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역시나 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칭얼거리는 소리를 넘어 비명소리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노이즈캔슬링을 뚫고 들어오는 그 소리에 ‘아니 부모는 뭐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소리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바닥에 누워서 뒹구는 아이를 그저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어린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재밌는 영상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맛있는 걸 먹여서 달래던가, 왜 저렇게 보기만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이내 아이를 향해있는 시선이 두 갈래로 분류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들고 이해할 수 없는 이 세태를 성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한국인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심지어는 그 아이를 귀여워하는 듯한 얼굴로- 가볍게 그 둘을 바라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간 내가 꽤나 관대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실제로 웬만한 일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고, 남들의 실수도 곧잘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 소음은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았고 아이의 엄마는 그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결국 그만한 손주가 있을법한 나이의 한국인 부부가 아이 엄마에게 다가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이렇게 저렇게 좀 달래 보라고 권했고, 아이 엄마는 아이를 안아 들고 어떻게든 달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그 과정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떻게 달래야할지를 몰랐던 걸까? 혹은 이 정도의 울음은 아이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이기에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던 걸까? 어떤 이의 행동이 잘못됐고 불편한 일이라면 그 기준은 어디에서, 누가 정할 수 있는 걸까.

몇 년 전 제주행 국내선 기내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참지 못한 한 남성이 아이엄마에게 달래지도 못하면서 왜 비행기를 탔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을 영상으로 접했다. 연신 죄송해하는 아이엄마에게 퍼붓는 남성의 욕설은 차마 보기 힘들었다. ‘애 우는 건 참겠는데 다 큰 아저씨가 소리 지르는 건 못 봐주겠다’는 댓글에도 심히 공감했다. 아이가 우는 건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유아기의 인간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다. 나도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때 울고싶다. 아이를 달래려는 부모의 노력에 마음이 더 누그려 뜨러 지는 건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그 방법을 잘 모르는 부모, 혹은 결코 달래지지 않는 아이도 있다. 갑자기 내리는 폭우에, 대수롭지 않게 우비를 쓰거나 그냥 맞아버리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아이의 울음소리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아이도, 부모도, 그리고 어쩌다 그걸 듣게 될 우리도 조금씩은 덜 불행해지지 않을까. 지금도 비행기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날 때면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갑자기 내리는 비를 향해 분노하지 않듯이.


자세히 보면 참 귀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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