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어른이 되어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불안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릴 적에 갑자기 엄마가 죽을까 봐 불안해서 울었던 기억도 있지만, 에피소드 정도일 뿐, 또래의 아이들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놀이에 빠져 지낼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보다 조금 더 불안의 강도가 높은지, 나의 움직임은 늘 반대편인 안전한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게 좋고, 반복이 지루하지 않고, 익숙한 길로 산책하는 게 편하고,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는 게 부담 없다. 반면에 속도감 있는 탈 것들이 싫고, 여행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서고, 낯선 사람과의 약속이 잡히면 며칠 전부터 전전긍긍한다.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은 하얀 캔버스는 모든 가능성의 일렁임으로 이미 충만하다. 그림 그리는 것은 그런 완벽한 조화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나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혼란에서 질서로, 불안에서 안정으로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 그림 작업은 외부의 불안에 대한 통제력을 화면 안으로 한정하여 다루며 위안 삼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