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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26. 2021

라스 폰 트리에의 집

<살인마 잭의 집> 해석

 MBC에서 방송해주는 <출발! 비디오 여행>에는 "숨어보는 명작"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신작을 찍은 배우들이 출연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설명하는 코너인데요. 이 코너를 볼 때마다 답변들이 전부  '숨어보는' 보다 '명작'에 초점을 맞춘 느낌을 받습니다. 만약 필자가 해당 코너에 출연한다면, 단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 중 하나를 언급하겠습니다. "숨어보는"이라는 말과 "명작"이라는 말 모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은 대부분 찝찝하고 충격적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살인마 잭의 집>은 감독의 철학을 한데 함축하죠. (Von Trier also said, that this might be his last feature film, so it can also be seen as a visual summation of his work.)


 <살인마 잭의 집>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中 지옥편>과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수십 명을 죽인 살인자 잭이 버지와 함께 지옥을 향하며 시작합니다. 잭은 자신이 저지른 5가지 살인에 대해서 무작위적으로 이야기하죠. "Mr.Sophistication" 즉, 교양 살인마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잭. 영화 내내 이런 태도가 유지되기에 감독이 마치 살인을 예술이라고 설득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큰 오해입니다. 감독은 살인을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잭이 궤변을 늘어놓는 중간중간에 버지는 "다만 자네의 이야기만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게"라고 말하죠. 버지는 지속적으로 개입해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이런 입장은 영화의 결말에서도 나타나는데, 만약 잭이 다리를 건너서 지옥을 탈출했다면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잭은 지옥의 구덩이로 빠죠.(이에 대한 추가 설명은 후술 하겠습니다.) 잭은 교양 살인마도, 예술가도 아닌 그저 범죄자일 뿐입니다. 이 점을 명시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필자는 <살인마 잭의 집>의 주인공 잭을 두 가지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첫째, 잭은 절대 악(絶對惡)의 상징입니다. 잭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죠. 아동 살해부터 동물 살해에 이르기까지 살인을 일삼는 그는 절대악입니다. 버지는 베르겔리우스로 <신곡>에서 단테를 인도합니다. <신곡>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살인마 잭의 집>에서 버지는 잭의 인도자임과 동시에 절대선(絶對善)을 상징합니다. 버지는 사랑과 도덕을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죠. 그렇기 때문에 절대 악인 잭에게조차도 지옥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버지와 잭은 인간에 내재한 선과 악입니다. 잭과 버지는 지옥으로 내려가는 동안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죠. 마치 하나의 주제로 내면의 선과 악이 논쟁하듯 말입니다. 이때, 잭은 빛을 통해 인간의 악을 설명합니다. 그는 사진을 현상하던 중 반전(Negative)을 발견합니다. 전구와 불같은 빛을 카메라를 통해 찍으면 필름에서 검은색으로 보이죠. 유사하게, 개기 일식의 순간에 태양의 중심은 어둡습니다. 잭은 이를 보고 빛의 악마성이라고 부릅니다. 관객들은 이 말에 현혹됩니다. 절대악의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악마의 유혹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영화는 결말의 영상을 반전시켜서 절대 악의 지론이 틀렸음을 보여줍니다. 빛을 반전시키면 어둠이 되지만, 어둠을 반전시키면 빛이 됩니다.


 둘째, 잭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자신의 투영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살인마 잭의 집>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먼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들을 살펴봅시다. <범죄의 요소>를 시작으로, <유로파> 3부작, <백치들>,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 등 수많은 작품을 찍었죠. 위 작품들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강렬합니다. 기성적인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 탓에 거부감을 표하는 관객도 많고, 날 선 비판과 욕설을 들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런 수많은 비판에 굴하지 않고 스타일대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이런 관점(잭 = 라스 폰 트리에)에서 볼 때, 잭이 가진 강박증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우울증과 동치입니다. 잭의 강박증은 살인 행위를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특히 <오! 마이 보스>와 <안티크라이스트>는 그가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 집필한 각본입니다. 우울증이 극심할 때는 스태프에 둘러 쌓여 폐소 공포증을 느꼈다고도 합니다. 이렇듯, 우울증은 감독이 영화를 찍는 행위를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감독은 우울증에도 소신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우울증이 나아졌죠. 마치 잭이 강박증에도 굴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자 강박증이 나아졌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잭이 집을 짓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잭은 벽돌과 목재 등의 기성적인 재료를 사용합니다. 이런 재료들로 집을 짓던 잭은 평범함을 넘어서 따분함을 느끼고 집을 허물죠. 총 4번을 짓고 허무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잭은 원하는 모양으로 집을 설계하기 위해서 수없이 고민합니다. 잭의 고뇌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적 고뇌와 같습니다.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버리고 기성적인 영화처럼 찍을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좋은 영화 기술자(engineer)로 남겠죠. 그러나 감독은 기술자(engineer)가 아닌 설계자(architect)가 되고 싶었습니다. 잭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

Jack : An engineer reads music. And architect plays music.

Engineer와 Architect는 거의 비슷한 의미처럼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릅니다. 잭의 비유에 따르면, Engineer는 음악을 읽고, Architect는 음악을 연주합니다. 확장해보면 Engineer는 존재하는 음악을 다루고, Architect는 존재하는 음악을 넘어서 창작하죠. 지금까지 잭은, 아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기성적인 자재를 이용해 집을 짓는 Engineer입니다. 감독과 잭은 Architect를 꿈꿨고, 자신만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 틀을 끊임없이 수정했습니다. 잭은 자신만의 집을 완성합니다. 이때, 잭이 지은 육체의 집은 상당히 기성적인 모양이라는 아이러니가 있죠. 이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영화와 유사합니다. 감독의 영화는 이야기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플롯을 가집니다. 그러나 소재와 연출, 주제의식에서 감독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잭이 육체로 지은 기성적인 모양의 집은 단순한 구조이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감독의 영화를 상징합니다.


 <살인마 잭의 집>의 중심이 되는 색상은 빨간색입니다. 빨간색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 빨간색이 등장하는 순간을 살펴봅시다. 잭의 밴이 빨간색입니다. 뿐만 아니라, 살인 후 뿜어져 나오는 피, 차를 수리할 때 사용하는 잭, 길을 걷는 여성이 들고 있는 조명, 피가 묻은 오른쪽 헤드라이트, 집에 달린 조명, 사냥 체험 가족의 모자, 전화기와 전화선, 여자 친구가 가져온 펜의 색깔, 경찰차 전조등과 사이렌, SP의 옷, 그리고 용암이 빨간색이죠. 피는 시선을 끕니다. 길거리에 피가 묻어있다면, 사람들은 흔적을 보고 놀라죠. 피를 본 자들은 자연스럽게 가장 끔찍한 살인 사건을 상상합니다. 그 피가 사실은 누군가 흘린 코피일지라도 말입니다. 잭은 이런 피의 붉은 속성을 빨간 물건으로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영화 내내 노출되는 빨간색 물건들로 관객은 익숙해집니다. 즉, 빨간색 물건들은 자신의 행위를 설득하기 위해 설정한 악마의 장치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데뷔작인 <범죄의 요소>부터 <살인마 잭의 집>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소신대로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로 집을 지었으며, 마지막에 잭이 육체의 집으로 들어가며 마무리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경찰은 잭에게 총을 발사하죠. 이때, 총알은 외부의 평가를 상징합니다. 총알은 잭을 맞추지 못합니다. 그가 만든 집을 맞췄을 뿐입니다. <살인마 잭의 집>은 충분히 폭력적이고 자극적입니다. 남에게 추천해주기 쉽지 않지만, 독특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세계를 엿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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