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해석가 Aug 19. 2021

The Split Savior

<마스터> 해석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면 정말 망망대해(茫茫大海)라는 단어만이 떠오른다. 푸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만 곧 발 붙일 곳 하나 없는 장소라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렇듯 바다는 두려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경외심이 느껴지는 장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으로 복무했던 프레디 퀠. 그는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레디는 전쟁 이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배추 농장에서 일하던 그는 살인 누명을 쓰고 달아나다 우연히 랭커스터의 배에 올라탄다. 랭커스터는 프레디가 폭탄주를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랭커스터가 개발한 '더 코즈'라는 기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 랭커스터는 프레디를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폐쇄 공포증이 있는 그에게 다양한 세션을 통해 극복을 돕는다. 그러나 프레디는 랭커스터를 떠나고 옛사랑 도리스를 찾아 나선다.


 프레디는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신다. 그가 군 복무하는 동안 제조해서 마시던 폭탄주이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 독한 술을 끊지 못한다.(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실 알코올이 없자, 선원들은 어뢰에서 에탄올을 빼내 폭탄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폭탄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의미한다. 프레디의 트라우마는 성(性)에 집착하는 형태이다. 그는 로르샤흐 테스트 중 모든 잉크 문양을 여성 혹은 남성의 성기로 인식한다. 프레디가 랭커스터를 따라다니며 한동안 술을 먹지 않았을 때, 옷을 입고 있는 여성들을 나체로 인식하였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다시 느껴진 프레디는 매리와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술 말고는 의존할 대상이 없다. 어뢰의 에탄올부터 페인트 희석액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을 섞어서 만든 폭탄주를 마시고 나면, 한동안 기억을 잃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난다.


 랭커스터는 자신에게 반박이나 논리적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더 코즈' 원리를 설명하는 마스터에게 한 과학자가 딴지를 걸자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헬렌이 두 번째 책에서 바뀐 내용에 대해서 묻자, 윽박질러서 그녀를 쫓아내기도 한다. 평소에 큰 소리를 내지도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그가 유일하게 화를 내는 순간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분노의 폭발은 영화 후반에 랭커스터가 이야기하는 비둘기 전생과 연결된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에게 자신들이 전생에 전서구였다고 한다. 편지를 전달하는 전서구는 국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더 코즈' 기법을 전수하는 랭커스터와 닮았다. 전서구가 총 65번의 편지 임무 중에서 단 2번만 실패했다고 하는데, 실패한 두 번의 경우는 랭커스터가 과학자와 헬렌에게 화를 낸 두 번을 의미한다.


 랭커스터가 출간한 두 번째 책의 제목은 <The Split Sabor>이다. '부러진 칼날'이라는 제목은 언뜻 'The Split Savior'와 유사하게 들리기도 한다. Savior는 구원자를 뜻한다. The Split Savior는 구원자와 갈라섰다는 뜻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프레디는 표면적 구원자인 랭커스터를 떠나서 심리적 구원자인 도리스를 찾아간다. 그러나 도리스는 3년 전 친구와 결혼을 했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프레디는 랭커스터와 갈라섰고 도리스와 갈라졌다. 책의 제목은 이런 프레디의 상황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또한, 부러진 칼날은 프레디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Sabor는 남을 베기 위한 무기이다. 칼날이 부러진 검은 남을 공격할 수도,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다. 부러진 검을 든 기사는 무방비 상태이다. 전쟁 이후, 부러진 칼로 겨우겨우 자신의 내면의 붕괴를 막아온 프레디를 상징한다.


  프레디는 발 붙일 곳 하나 없는 바다에서 청춘을 보냈다. 흔들리고 두려운 바다는 그의 불안정한 마음을 대변한다. 배가 지날 때 뒤로 보이는 포말은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일반 프로세싱 과정에서 프레디를 완벽하게 파악한 랭커스터는 이런 말을 한다.

Lancaster Dodd : Then go, go to that landless latitude and good luck. If you figure a way to live without serving a master, any master, then let the rest of us know, will you? For you'd be the first in the history of the world.

 자유로운 영혼, 프레디 퀠에게 발붙일 곳 하나 없는 바다로 떠나라고 말하는 랭커스터. 어떤 마스터도 섬기지 않고 사는 법을 알게 되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한다. 프레디는 랭커스터를 떠났다. 그는 땅 위 안정된 집에서 그가 원하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다. 그는 더 이상 불안정하지도, 트라우마에 잠식되지도 않는다. 그는 마스터를 섬기지 않고 마스터가 되기로 했다.


이전 24화 혼돈은 해석되지 않은 질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