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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9. 2021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는 하찮은 쓰레기 같은 존재일 뿐.

<파이트클럽> 해석

 당신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타는 차인가? 당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휴대폰 기종인가? 입고 있는 바지? 컴퓨터의 사양?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비자이고, 은연중에 주변의 물건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영화 <파이트 클럽>은 이 모든 것들이 허상이고, 우리가 노래하고 춤추는 하찮은 쓰레기 같은 존재일 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은 유명 자동차 리콜 판매원으로 일한다. 직업 특성상 잦은 해외 출국으로 시차 적응으로 불면증을 겪는다.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라는 비누 판매원을 만나고,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집에 화재가 나서 모든 가구가 불에 탔음을 확인한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타일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함께 지낸다. 타일러는 느닷없이 자신을 때리라고 하고, 싸움이 시작된다. 둘은 싸움 중에 해방감을 느꼈으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이름의 지하 싸움 공동체가 생긴다. (IMDB에서는 에드워드 노튼 배우의 역할을 내레이터로, 브래드 피트 배우의 역할을 타일러 더든으로 하였다. 이 글에서도 이 명칭을 따르겠다.)


 내레이터는 타일러 더든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 계발에 힘썼다. IKEA 가구, 스타벅스 커피 등 다양한 브랜드로 자신을 가득 채웠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낀다. 내레이터가 폭발로 인해 집에서 튕겨져 나온 냉장고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한다 : "How embarrassing... a house full of condiments and no food." 냉장고 속에는 음식은 없고 양념장만 가득하다. 양념장은 음식의 맛을 배가시켜주는 요소이지만, 양념장 만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내레이터는 가득 차 있지만, 실속 없는 냉장고와 닮았다. 다양한 브랜드들을 소비하며 스스로를 채웠지만,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집이 폭발했음에도 미묘한 해방감과 차분함은 그 공허 때문이다.


 <파이트 클럽>에서 내레이터는 자기 계발을, 타일러 더든은 자기 파괴를 상징한다. 내레이터가 나가는 모임은 환자들이 모인 곳이다. 고환암에 걸려서 고환을 제거한 남자들의 모임, 백혈병 환자들의 모임, 결핵 환자들의 모임 등.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특정 부위에 대한 결손이나 병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달리 정상인인 내레이터는 상대적 완벽함을 가진다. 내레이터는 상대적 완벽 감으로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다. 반면, 타일러는 파이트 클럽에서 활동한다. 파이트 클럽은 계급도 지위도 중요하지 않다. 말이 아닌 폭력으로 대화하며 평등하다. 파이트 클럽은 남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집단이다. 내레이터는 영화 초반 자기 계발을 고수했지만, 점점 자기 파괴에 가까워진다.


 타일러 더든의 비누를 만드는 작업은 자기 계발에 대한 조소(嘲笑)이다. 이 비누는 지방 흡입 클리닉에서 훔쳐온 사람의 지방으로 만들어진 후 백화점에 납품된다. 지방 흡입 시술을 받는 사람은 주로 미용의 목적을 가진 부유층일 가능성이 크다. 즉, 지방 흡입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를 백화점에서 사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타일러의 비누는 현대 사회에 가득 찬 허상을 비꼬는 풍자이다.


 현대인은 자기 계발이라는 기준에 맞춰 소비하고 활동한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 명품을 소비하고, 유명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다. <파이트 클럽>은 자기 계발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다. 내레이터와 타일러 더든이 함께 버스에 타 구찌(캘빈-클라인이 아니고 구찌다.) 속옷 광고를 보며 "자기 계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해"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또한, 파이트 클럽 단원들이 유명 브랜드를 대상으로 하는 반달리즘 행위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자기 파괴행위는 어떤가? 타일러가 자기 파괴 행위에 대해 설명하려던 순간, 사람이 밀치고 지나가는 탓에 말을 끝내지 못한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자기 파괴 행위를 보여주면서 설득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설득은 번번이 실패한다. 파이트 클럽에서의 싸움은 땀 내나고 화려한 폭력이 아닌 처절하고 잔인한 폭력에 가깝다. 이런 모습은 설득을 막는 방해 요소이다. 징그러운 손의 흉터와 루의 개입, 밥이 총격을 당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결코 폭력을 미화하지도, 자기 파괴 행위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허상인 자기 계발과 자기 파괴 모두를 비꼬며 사이에 낀 타일러 더든이라는 현대인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쯤에서, 파이트 클럽의 규칙을 잠시 살펴보자. 파이트 클럽의 총 8가지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2.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3. Someone yells "stop!", goes limp, taps out, the fight is over.
4. Only two guys to a fight.
5. One fight at a time, fellas.
6. No shirts, no shoes.
7. Fights will go on as long as they have to.
8. If this is your first time at Fight Club, you have to fight.

 첫 번째와 두 번째 규칙인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은 심리적 저항을 이용한 규칙이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타일러는 사람들에게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고 다니며 세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제6조 인 '상의와 신발을 벗는다'는 그들의 신분과 지위를 버리고 평등하게 싸우라는 취지에서이다. 여기서의 '상의와 신발'과 같은 의미를 갖는 물건은 직장 상사가 매고 있는 넥타이이다. 직장 상사는 콘플라워-파란색의 넥타이와 노란색의 넥타이를 매고 다닌다. 그는 타일러에게 용모를 단정하게 하라며 넥타이를 매라고 강요한다. 넥타이는 화이트 칼라 직종의 상징이며 자유를 구속하는 수단을 상징한다.  


 <파이트 클럽>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영화가 가진 주제 의식이 가볍지 않지만, 컬트 영화로 아주 잘 풀어내었다. 우리는 때론 파이트 클럽에서 싸워야 한다. 지하 클럽으로 내려가면 타일러 더든은 "Gentlemen, Welcome to the FIGHT CLUB"이라는 말로 맞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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