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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3. 2021

혼돈은 해석되지 않은 질서

<에너미> 해석과 현대 사회

 아침 7시 30분쯤에 2호선 신도림 역이나 영등포구청 역을 비롯한 환승역을 방문하면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첫째는 출근 시간 환승역은 지옥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모두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본 채 시체처럼 걷고 있다는 점이다. 직원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여 회사로 향하고, 회사는 이런 직원들로 경영을 유지해 나간다. 한쪽의 부재나 태만은 사회를 극심한 혼돈에 빠지게 하여 균형을 망가뜨린다. 이런 기묘한 공생관계는 21세기 사회 유지의 핵심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영화 <에너미>는 원작 소설 <도플갱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매일 반복적인 생활을 하던 역사 선생님 아담 벨(제이크 질렌할)은 우연한 계기로 한 편의 영화를 보게 되는데, 그 영화에서 자신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조연 배우를 발견한다. 아담 벨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도플갱어 앤소니를 찾아 나선다. 앤소니는 호화로운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둘은 만났고, 알 수 없는 기묘함과 긴장감도 잠시, 앤소니는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앤소니는 아담 벨을 위협하여 여자 친구를 빼앗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담 벨의 여자 친구는 앤소니와의 하룻밤을 보내던 중 그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무기력한 아담 벨 또한 앤소니의 여자 친구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앤소니의 아파트로 올라가던 중 향락의 총체인 비밀 별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독재자들은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지만, 이런 정책들의 공통점은 문화적, 사회적 획일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독재 사회에서의 변화는 적(敵)으로 간주된다. 자칫하면 그 변화가 체제 전복으로 이어져 독재자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담 벨이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은 바로 이런 독재자들의 통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는 독재자에 의해 통치받는 독재 사회와 닮아있는 듯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가 반복적이고 획일적인 삶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학생은 학교에 가고, 직장인은 직장에 출근하며, 선생님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듯이 말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거미의 형상은 이런 추상적인 독재자에 대한 구체화이다. 복잡한 고속도로, 엉킨 트램의 전깃줄 등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 대한 상징이며, 곧 거미줄로 확장된다. 즉, 현대 사회라는 거미줄 위에서 반복적인 삶을 강요하며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거미가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 벨이 출퇴근하며 마주치는 굴다리 벽면의 직장인들의 모습은 이런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를 나타낸다. 그림 속 직장인들이 버스 안에서 한 손을 쭉 뻗어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듯하다. 사람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도, 그 사회는 균형이 유지되는 듯 보인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거미가 우리를 반복적인 삶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런 거미가 지하 별장에서 발로 밟히고 아담 벨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까닭은 그가 혼돈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 도플갱어를 만났고, 그는 가슴 뜀과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안정된 사회에서 튕겨져 나온 존재이다.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거미는 이런 혼돈이라는 아담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며, 그가 앤소니의 별장에 간 순간 균형은 완전히 파괴된다. 이런 모습을 거미를 발로 밟는 것을 통해 암시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안정을 추구한다. 보이지 않는 거미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으며, 조금은 불안정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미줄 위를 걸어 다니고 있다. 그 속의 인간은 반복적인 생활을 강요받으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안정이 불안정으로 변화했을 때, 사회적인 평형은 깨지고 만다. 하지만 곧, 사회는 이러한 혼돈을 해석하여 또 다른 질서로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21세기 현대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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