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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9. 2021

인간이 수호하는 정의의 한계

배트맨과 정의란 무엇인가.

 1932년, 슈퍼맨이 탄생한 이후 코믹스계에는 슈퍼맨의 아류가 범람했다. 조금은 독특한 히어로를 만들고 싶었던 밥 케인과 빌 핑거는 인간을 바탕으로 한 히어로를 설계했다. 이렇게 탄생한 히어로가 바로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깊이가 깊어졌고, 세계관이 확장되었다. 오래된 역사만큼 실사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다. 마이클 키튼, 조지 클루니, 크리스찬 베일, 벤 에플렉, 로버트 패틴슨 등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 배트맨 연기했다. 오늘은 <다크 나이트>를 중심으로 배트맨의 본질과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는 원작 배트맨의 철학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이다. 범죄가 만연한 고담 시에 배트맨이 활동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범죄는 근절되지 않는다. 심지어 배트맨을 사칭하는 민병단까지 등장해서 혼란은 더 심해진다. 은퇴를 고민하던 배트맨은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가 경찰 짐 고든과 함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발견한다. 배트맨은 하비 덴트에게 고담에 대한 희망을 걸고 배트맨으로부터 은퇴할 준비를 한다. 어느 날, 범죄 조직이 배트맨을 제거하기 위해서 조커라는 인물을 끌어들인다. 조커는 광기로 하비 덴트를 타락시키고, 고담은 더 큰 혼돈에 빠진다.


Wonder Woman Annual #1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다른 배트맨 영화들보다 배트맨의 본질에 대해서 끈질기게 질문한다. 사람들은 배트맨의 본질이 브루스 웨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에 불과하다. 브루스 웨인의 본질은 배트맨이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알프레드에게 이런 말을 한다.

Bruce Wayne : As a man, I'm flesh and blood. I can be ignored, I can be destroyed. But as a symbol... as a symbol I can be incorruptible. I can be everlasting.

 브루스 웨인은 파괴되고 타락하지만, 배트맨이라는 상징은 타락하지 않는다. 브루스 웨인은 기업의 총수로 남아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고담시의 범죄를 근절하고 싶어 한 그였기에, 브루스 웨인은 그저 껍질일 뿐이다.

 2017년 출간된 DC 코믹스 <Wonder Woman Annual #1>에서도 배트맨의 본질에 대한 답이 나온다. 트리니티(원더 우먼, 슈퍼맨, 배트맨)가 원더 우먼의 진실의 올가미를 잡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더 우먼은 다이애나 여왕, 슈퍼맨은 클락 켄트라는 본명을 말하지만 배트맨은 배트맨이라고 답한다. 이 장면이 배트맨의 본질에 대한 증거이다.


 <다크 나이트>는 정의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하비 덴트와 배트맨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정의이다. 덴트와 배트맨은 사법 체계를 기준으로 한 철저한 처벌과 관리가 정의라고 생각한다. 고담이 정의롭지 못한 이유는 부패한 권력층과 낡은 사법 제도 때문이며 언제든지 정의 구현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조커가 레이첼과 하비 덴트를 납치하여 배트맨에게 누굴 살릴지 결정하라고 시험하는 장면에서 보여준다. 만약, 배트맨이 고담 시의 진정한 정의를 원했고 그것이 1순위였다면 하비 덴트를 선택했어야 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레이첼을 선택했다. 정의가 아닌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조커가 알려준 주소가 반대였음을 밝혀지고 배트맨이 하비 덴트를 구한 순간, 둘은 인간에 의해 집행되는 정의의 한계를 느꼈다. 정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하비 덴트는 투페이스로 탄생하여 새로운 정의를 논한다.


 투페이스가 된 하비 덴트는 기존과는 다른 정의를 논한다. 투페이스는 정의가 곧 운명이라고 주장한다. 하비 덴트는 양면이 동일한 동전을 가지고 다녔다. 이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내면을 상징한다. 그러나, 투페이스가 되고 그는 인간이 수호하는 정의에 대한 환멸과 불신을 가졌고 동시에 동전에 두 개의 면이 생겨났다. 투페이스는 정의는 인간에 의해서 집행되는 것이 아닌, 확률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투페이스는 정의란 인간이 판단하는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을 처단하기 전 동전을 던져서 확률을 점친다.


 배트맨이 탄생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유는 그가 선과 악이 혼재되어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며, 한계를 가지기도 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단순히 히어로 영화를 넘어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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