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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희 Oct 20. 2024

어떤 신위_8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8화    


  물속의 고도리 떼가 사람들이 지른 큰 소리에 놀랐는지 깊은 곳으로 도망치듯 가라앉았다가 미끼를 뿌리면 어느새 나타났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만 한다. 누군들 밥의 유혹을 버릴 수 있을까, 더구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미끼를.

  나는 고등어 입에서 바늘을 제거한 뒤 바닷물에 넣어주었다. 성질이 급한 고등어가 온전한 상태로 새끼를 돌보며 살게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때 숙모의 긴 비명 같은 탄성이 방파제에 울렸다. 낚시하던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촌 릴 아래 문어가 떨어져 먹물을 쏘고 있다. 무척추동물계의 천재인 문어가 또 삼촌에게 잡혔다. 문어는 시행착오를 기억하고 문제 해결 능력도 있다. 그렇게 영리한 문어가 초짜 낚시꾼 삼촌에게 잡힌 것이다. 문어는 물속에서 저를 유인하는 에기를 따라다니다가 날카로운 낚싯바늘을 덥석 잡았거나 실수로 꿰었을 수도 있다.

  문어는 공포를 나타내는 하얀빛으로 몸을 바꿨다. 화가 나면 몸 색깔을 빨강으로 바꾸기도 한다. 지금은 심한 공포를 느낀 듯했다. 공포로 꿈틀대는 문어를 야무지게 잡으려는 숙모 얼굴엔 어떤 만족감마저 느껴졌다. 나는 그때 문어의 까뒤집힌 눈을 보고 말았다. 장기기억과 단기 기억의 지능을 가진 문어는 사람 눈과 흡사하여 물에 사는 어종 중 유일하게 모든 대상을 받아들일 줄 안다고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문어의 망막이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살아서 다시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슬픈 눈. 나는 소름이 돋았다.

  ‘옛날옛날’ 주인공이 사라지고 삼촌은 어린 나를 데리고 주민센터에 갔다. 그곳에서 만난 담당자의 눈이 지금 저 문어 눈과 흡사했다. 나를 바라보던 슬픈 눈.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외면했다. 기초생활 보장수급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눈이 불현듯이 왜 지금 생각났을까?

  문어는 암초 틈이나 구멍에 서식하는 정착성으로 대부분 자신의 영역을 바꾸지 않는다. 나 역시 삼촌과 숙모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숙모의 끈질긴 제주도 타령에 나는 예전보다 더 외로워졌다.

  삼촌은 문어를 낚고도 기쁜 표정도 없이 숙모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고도리 낚시에 정신 팔던 사람들이 문어를 보자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야외용 가스레인지를 누구는 초고추장을 또 다른 사람은 매트를 깔았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는가 하면서. 그들은 문어를 보자 벌써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낚시터에서는 물고기를 먼저 낚은 사람이 주변 사람을 위해 내놓았다. 그것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자신을 소개하거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낚시 얘기를 정답게 나눈다. 안면이 없어도 술잔을 나누며 대화하는 것이 낚시터의 즐거움이고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다.

  사람들이 문어를 두고 둘러앉자, 삼촌은 릴낚시를 놓고 차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내왔다. 아이스박스 안에는 술과 커피 우유 과일 등이 들어있다. 삼촌이 누군가와 사귀고 제주에 정착하려 애쓰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사귈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제 삼촌 마음속 ‘옛날옛날’ 기억은 제주 앞바다에 던지고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삼촌이 아이스박스에 담아 온 술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무척추동물계의 천재라는 문어는 곧 낚시꾼 칼에 의해 생명을 다할 것이고 끝내는 그들의 입으로 들어가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방파제 가장자리에는 고도리가 꾸덕꾸덕 말라 가고 있다. 이곳에 모인 낚시꾼들은 먹거리도 되지 못한 고도리를 잡고 즐거워했다. 말린 고도리는 집에 가져가도 더러는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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