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가 예전에 이유야 있든 없든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던 말들을 되새겨 보았다. 하찮아 보이는 고도리일지라도 나름의 한 생이 있지 않겠는가, 즐거움이나 취미로 헛된 죽음이 되어서야 말이 되는가. 내 처지를 잊기 위해 낚시에 빠졌던 지난 일이 수평선 너머로 넘나들었다. 저들은 삼촌이 낚은 문어를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도리의 생을 잊은 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 아니겠냐고 하면서. 나는 그들이 둘러앉은 주변을 서성거렸다.
고도리 내장을 모두 먹어 치우고 배를 채운 갈매기 떼가 낚시꾼 머리 위로 힘차게 날아올라 하늘을 배회했다. 바닷물을 퍼 올려 씻어 낸 방파제엔 아직도 질펀한 핏물이 남아 있다. 피를 보자 전쟁 같은 느닷없는 폭력이 느껴졌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을 의지하며 살던 삼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날옛날’ 속 주인공을 자신이 울고 싶을 때 혹은 내가 그리워할 때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김윤환을 찾습니다.’ 김윤환은 현수막 속에서 수없이 나부꼈다. 버스 정류장이거나 역 광장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걸려 있던 현수막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볼 때마다 읊었던 아버지 이름, 현수막이 찢어지거나 빛이 바래 얼굴이 선명하지 않으면 새 현수막을 다시 내걸던 삼촌이었다. 현수막 속 그가 설령 어딘가에서 죽었다 해도 기다리는 삼촌과 내 마음에서 잊히지 않았다면 죽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바닷속 고도리 떼처럼 어딘가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봤다.
삼촌과 숙모 쪽을 바라보았다. 삼촌은 지난 일은 모두 지운 듯한 표정으로 낚시꾼 틈에 앉아 함박웃음을 웃고 있다. 삼촌 얼굴이 편해 보여 좋다. 나는 삼촌이 숙모를 만나기 전 웃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늘 뭔가에 몰두했고, 비 맞은 닭 깃처럼 어깨가 처져 의욕이라고는 일도 없어 보였다. 그런 삼촌과 교회 가는 길에 알 수 없는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삼촌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영주야 그 꽃 이름 알아?”
“아니.”
“삼촌도 모르겠네. 그 꽃도 이름이 있을 텐데…….”
삼촌은 그날 김윤환이란 아버지 이름을 다시 알려 주었고 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오지 않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오랫동안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