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고기 떼를 보며 낚싯바늘에 새우를 달고 낚시 준비를 끝냈다. 떡밥 미끼를 쏠채에 가득 담아 바닷물로 던졌다. 떡밥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중간층 물에 놀던 물고기 한 마리가 미끼 사이에 낀 새우를 순식간에 덥석 채 갔다. 무리 중 가장 빠른 행동이었다. 새우를 채 간 물고기는 물 위까지 완전히 떠올랐다가 줄행랑을 치기 위해 방향을 바꿨다. 나는 그 순간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함으로 녀석이 낚였다는 걸 직감했다. 다 자란 성어였다면 영리하게 새우만 따먹었거나 낚싯바늘을 피했을지도 몰랐다. 다 자랐다고 모든 면에 완벽할 수는 없다. 녀석은 낚싯줄을 힘껏 끌어당겼다. 바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애를 쓰면 쓸수록 바늘은 더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녀석은 분명 미끼를 쉽게 따먹은 후회와 더불어 큰 위기임을 직감했을까? 올라오지 않으려고 힘을 쓰느라 하얀 배가 드러났다가 뒤집히길 거듭했다. 낚싯줄에서 핑핑 피아노 건반 소리가 났다. 나는 묵직한 녀석을 놓치지 않으려고 낚싯대를 놀리면서 녀석의 힘을 뺐다. 잡힌 녀석에게 흥분되어 낚싯대를 힘껏 걷어 올리면 물고기는 그 힘으로 떨어지고 만다. 녀석이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손으로 전해지는 손맛도 대단했다. 물 밑에서 마지막 힘까지 다해 달아나려 용을 쓰는 녀석의 모습이 선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은 달아나기를 포기한 듯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죽을힘을 다해 버티다 파닥파닥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온몸을 털며 올라왔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와, 고등어다’ 소리쳤다. 고도리가 아닌, 고등어가 잡힌 것이다. 새끼를 먹이 쪽으로 유도하는 어미 고등어였을까? 먹이는 이렇게 먹는 것이라고 시범이라도 보이려던 것이었을까? 새끼를 기르는 어미는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것인가? 어쩐지 새끼에게 먹이 활동을 가르치려다가 재수 없게 걸린 어미 고등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나와 가족을 먹이기 위해 직장을 나갔다. 그날 이후 누구도 아버지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많은 생각이 머리에 쌓였다.
고도리 무리는 누군가 없어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기차게 먹이 활동을 했다. 무리에서 한 마리씩 두 마리씩 없어지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알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배를 채워야 했던 것일까? 삶은 전쟁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동안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했던 일들이 전쟁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