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마치고 돌아왔다. 씻고 나온 삼촌이 티브이를 켰다. 뉴스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이야기를 내보냈다. 삼촌이 뭔가에 놀란 듯 리모컨을 눌러서 티브이를 껐다. 예전에도 삼촌은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티브이를 꺼버렸다. 지진으로 시신도 찾지 못하고 적기를 놓친 채 시간만 흐른다거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모습을 보게 되면 삼촌 기억에서 형인 내 아버지가 다시 소환되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행방불명이 된 사람은 살아있거나 죽었어도 기다리는 사람에게서 지워지지 않았다면 수십 년 수백 년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지진이나 전쟁으로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다면 훨씬 빨리 체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파에 기대 멍하게 앉아있는 삼촌에게 제주도에 왔으니 내일 봉개동을 가보자고 했다. 삼촌은 내 의견에 고개를 저으며 집에서 가까운 ‘섭지코지’를 가자고 했다.
다음 날 의견이 다른 삼촌을 두고 숙모와 함께 봉개동에 갔다. 산자락의 휑한 기운과 달리 기념관의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내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소는 누군지도 모를 주검의 이름 앞이었다. 희생자로 결정되지 못한 무명의 신위와 벽 앞에 기역부터 히읗까지 영상으로 설치된 수많은 이름이 벽을 타고 뒤로 넘어갔다가 되돌아왔다. 그 속에서 동명이인일 아버지 이름을 보자 정신이 아득했다. 몇 번이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동명이인이었을 이름. 나는 넋 놓고 쳐다보았다. 이름을 보자 뭔지 모를 오싹함이 올라왔다. 아버지도 혹시 저들처럼 싸늘한 어느 곳에 누워 있는 것은 아닐 테지.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벽을 타고 줄줄이 올라가는 수많은 이름이 이리저리 몰리는 고도리 떼처럼 까맣게 몰려 올라갔다. 불빛 때문인지 더 빠른 속도로 자막의 이름들이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김윤환은 나와 삼촌에게만 선명한 이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