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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Dec 26. 2021

11. 머릿니 대소동! 빡빡이와 숏 커트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 올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에스떼르, Y를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죠?"

"Y 머리에 이가 생긴 것 같아서요. 병원에 데리고 가서 확인하고 치료 후 없어졌다는 확인서를 받아와야 등원이 가능해요."


이게 무슨 소리지? 이? 내가 아는 그 머릿니? 요즘 세상에도 이가?

집에서 가까운 병원 중 외국인 상대로 진료를 보는 곳을 알아보고, 부랴부랴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머리를 확인해보니 뭔가 희끗희끗한 것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슨 하얀 껍질 같은 것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있다. 인터넷에 머릿니를 검색해 본다. 맞다. 이가 낳은 알 서캐가 아이 머리카락에 붙어있는 저 하얀 껍질의 정체다.


 예약하고 찾아간 병원은 개인 클리닉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진료를 보기 위에 원장실에 들어가니 수십 개의 러버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간호사 러버덕, 의사 러버덕, 요리사 러버덕, 슈퍼맨 러버덕, 배트맨 러버덕 등등 다양한 러버덕이 의사 선생님 책상 위, 책상 뒤 창틀 위에 쪼로록 줄 세워져 놓여 있었다.

 "엄마, 저거 뭐예요?"

"러버덕이야. 정말 많다."

 "신기해요."

 러버덕에 정신이 팔려 병원에 왔다는 긴장감이 풀렸는지 아이가 밝은 얼굴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디가 아픈가요?"

 "머리에 이가 생겼다고 해서 왔어요."

 "한 번 확인해 볼게요."

 간호사가 밝은 전등 같은 걸 들고 와서 머리를 비추고, 선생님이 여기저기 들추며 살펴보셨다.

 "이는 없는 것으로 보여요. 서캐만 남아 있네요. 다른 곳으로 튀어 갔거나 침구류에 남아있을 수 있으니 세탁 후 햇볕에 소독하시고, 처방전에 머릿니 약품 이름 써드릴 테니 구입하셔서 머리에 바르고 빗으로 빗어주세요."

"유치원에서 확인서를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어요. 언제 다시 검사를 받으면 되나요?"

 "3일 후에 봅시다."  

 인사하시며 러버덕 한 마리를 잡고 뿍뿍 누르시는 의사 선생님.

 "러버덕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여행 다니면서 몇 개씩 모으다 보니 이렇게 많아졌어요."

 "아이들이 오면 친근해서 좋아할 것 같아요."

 "하하. 아이들보다 제가 더 좋아할걸요."


 의사 선생님의 러버덕 사랑 이야기가 끝나고, 처방전을 받아 로저 돔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참 빗 같은 건 못 찾겠고, 다행히 쇠로 된 촘촘한 빗이 들어있는 머릿니 약이 있어 샴푸와 함께 구입했다.

 

 머리를 감기고, 약을 발라 촘촘한 빗으로 빗으려니 아프다고 우는 아이. 어쩔 수 없이 바리깡을 가져와 머리를 빡빡 밀었다.

 "엄마, 너무 이상해요."

 거울로 빡빡 민 머리를 보더니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야, 넌 두상이 이뻐서 잘 어울려. 날씨가 추우니까 비니 쓰고 다니자."

 

 아이 머리는 일단 해결됐고, 혹시 몰라 내 머리도 살펴보는데 뒷 머리카락은 잘 확인이 안 된다.

 "M 엄마, 나 머리 좀 확인해 줄 수 있어요? Y가 유치원에서 이를 옮아와서 병원 갔다 왔거든요. 겉 머리는 없는 게 확인되는데 뒷머리 안쪽은 혼자 확인을 못하겠어요."

 근처 사는 M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았어. 금방 갈게. 요즘 세상에 이가 웬 말이야?"

 "고마워요. 나도 완전 어이가 없어요. 이가 웬 말이에요. 머리 확인하고 집에 있는 침구 다 빨고, 소독해야 된데요. 막막해요."


 M엄마가 집에 도착했다.

 "여기 비닐장갑이에요. 이거 끼고 머리 안쪽 한 번 확인해 주세요."

 "알았어. 휴대폰 손전등으로 비춰봐야겠다."

 한참을 꼼꼼히 살피더니 M엄마가 소리를 꽥 질렀다.

 "어떻게 해!"

 "왜요?"

 "뒷머리 아래쪽에 뭐 하얀 게 있어!"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설마 아니겠지?

 "M엄마, 그 머리카락 한 번 뽑아봐요. 서캐면 어떻게 해요. 나도 빡빡 밀어야 되나?

 "그냥 비듬 같은 걸 수도 있어. 이게 사실 잘 안 보여."

 뽑힌 머리카락을 자세히 보니, 이런. 맞다. 아이의 그것과 같은 형태.

 "맞아요. 맞아. 아! 정말 못살아. 이불 세탁기에 넣어두고 머리부터 자르러 가야겠어요. 어디 쪽에 하얀 게 붙어 있어요? 얼마나 짧게 잘라야 되려나?"

 "이게 머리카락 안쪽 목 부분에 500원짜리 동전만큼 딱 몇 개가 모여 있어."

 "목 부분이면 단발선 나올까요?"

 "그보다 위쪽이야. 숏 커트해야 할 것 같아."

 "고마워요. 확인해줘서."

 "긴 머리 자르려면 속상하겠다. 어쩐다니."

 "어쩔 수 없죠. 약 발라서 빗어내는 건 못할 것 같아요. 뒷부분이라 보이지도 않고."

 "그래. 자긴 쇼트 커트도 잘 어울릴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


  베개 커버를 벗겨 이불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침대 주변에 소독약을 듬뿍 뿌렸다. 쿠션 커버도 모두 벗기고, 입었던 옷들도 일단 모두 세탁실로. 한꺼번에 다 세탁하기가 힘들어 종일 돌려야 할 판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숏 커트 이미지를 검색했다. 한국에선 고준희 숏 커트가 유행인지 그 사진이 제일 많다.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찍힌 사진들을 캡처하고 집 근처 미용실로 향했다.

 다들 영어를 못하는 직원들이라 사진을 보여주고 번역기를 돌려 이렇게 잘라달라 부탁했다.

 

 고등학생 이후 처음 해보는 숏 커트. 긴 머리가 잘려 나가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 이 핑계 아니면 언제 이렇게 잘라보겠어.'


 헝가리 말을 못 하는 외국인. 똑같이 잘라 달라며 건넨 사진. 갑자기 특급 미션을 부여받고는 자르는 내내 사진과 내 머리를 비교해가며 심혈을 기울여 커트 해준 미용사 언니 덕분에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


 짧은 머리카락 탓에 유난히 더 추웠던 그 해 겨울.

 빡빡이 아들과 숏커트 엄마는 뭐가 그리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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