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뿐 아니라 전세 개념으로 집을 대여할 수 있는 곳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그들에게 우리나라에선 보증금을 맡겼다가 집을 나올 때 돌려받는다고 얘기하면 깜짝 놀라며 그런 게 가능하냐고 반문할 것이다.
타국 살이도 집 없는 설움이 있다. 지인 중 귀국할 때 집수리 비용으로 2천만 원을 청구한 지독한 주인 때문에 엄청난 맘고생을 한 사람, 사는 동안 주인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탈모가 왔던 사람, 디파짓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주인 탓에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까지 어떤 집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곳 생활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첫 아파트의 주인은 헝가리인이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이 부동산만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라 매달 월세 내는 것 이외에 주인과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2개월 월세를 미리 내는 보증금 개념의 디파짓도 계약이 끝나는 날 모두 돌려받았고 그야말로 깔끔한 관계.
두 번째 아파트의 주인은 러시아계 헝가리인이었는데, 소유자는 아줌마였고 남편이 정유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집을 보러 간 날 주인아줌마가 좀 어이없는 요청을 했다.
"지금 당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좀 가볼 수 있을까요?"
"지금 사는 집엔 왜요?"
"여기 말고 세준 집이 있는데 거기 들어와 살던 사람들이 인도 사람이에요. 음식 냄새가 집에 가득해서 다음 세입자 구할 때 너무 고생했거든요."
"우린 특별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음식을 만들지 않아요. 아이도 어리고."
"그래도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어쩔 수 없이 집주인 부부들 데리고 살던 집에 갔다. 집을 이리저리 꼼꼼하게 둘러보더니 계약서를 쓰자던 집주인. 처음 집을 계약할 때부터 뭔가 찜찜한 느낌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원하는 남향집이 거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선택한 것이 화근.
보통 월세를 계좌로 입금하는데 이 집주인은 역시나, 매달 집으로 받으러 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월세 받으러 와서 집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던 집주인의 무례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세입자의 설움.
집주인의 진상은 이사 갈 때도 만만치 않았다. 4년을 살았던 집인데 페인트 칠을 다시 해야 하고, 블라인드 중 구겨진 부분이 있으니 블라인드 전체를 갈아야겠다고 3개월치 디파짓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우리가 헝가리 법을 잘 몰라 발만 동동 굴렀는데, 다행히 남편 회사 직원이 헝가리에서는 세입자가 페인트를 원상복구 해줄 필요가 없다는 법을 들이밀며, 그동안 세금 신고 안 하려고 직접 현금으로 집세를 받은 내역들 가지고 신고하겠다며 싸워준 덕분에 모두 돌려받을 수 있긴 했지만 까칠한 집주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세 번째 우리 집
세 번째 이사한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부다에 있던 주택이다. 부다는 일종의 구 시가지라 아파트 형태의 높은 건물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단독 주택이나 소규모 가정이 모여 사는 빌라 형태다. 우리 집은 건물 세 동이 모여 있고 가운데는 정원과 놀이터, 지하에는 주차장과 개별 창고가 있는 공동주택이었다.
집을 보러 간 첫날,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꼭 시골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정겨운 할머니. 100kg은 족히 넘을 풍채 좋은 캔터키 치킨 할아버지와 꼭 닮은 너지 파파.
집에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달려와 맥가이버처럼 금세 고쳐주시던 할아버지, 쿠키를 구웠다고 예쁘게 담아 가져다주시고, 헝가리어를 알려주시겠다고 달력 뒤에 적어 설명해주시던 할머니. 다른 일정으로 참석은 못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 집에서 하는 가족 행사에 초대도 해주시고 딸처럼, 손주처럼 챙겨주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덕분에 헝가리에서의 마지막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두 분 모두 영어를 전혀 못하셔서 우리의 대화는 늘 헝가리어였는데(할머니의 딸 마리아가 종종 전화로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난 사실 헝가리어를 몰라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완벽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두 분이 하는 말씀이 웬만큼 이해가 됐다.
허리를 붙잡고 수영하는 모습을 하시며 땀을 닦으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남편에게
"할아버지 허리가 아프셔서 온천 다녀오셨데."
라고 말해주면
"너 어떻게 그걸 알아들어?"
라며 놀라곤 했다.
나도 신기하다.
이상하게 두 분 얘기는 잘 이해가 됐던 것 같다.
마음이 통해서 그랬던 걸까?
한국에 돌아간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시고, 너 지파파(할아버지)는 허리가 아파서 요양원에 계셔 함께 인사 못해 미안하다고 어깨를 토닥이시던 할머니. 헝가리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한 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좋은 사람과 함께였다면 힘든 상황과 환경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비단 헝가리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건 장소 그 자체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 추억들이 그곳을 정의한다는 생각이 든다.
헝가리에 대한 따뜻하고 좋은 기억을 갖게 해 준 집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시 만날 날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