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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Dec 22. 2021

9. 헝가리에서 먹던 그 맛이 그립다고

어제 주문한 생수와 사골, 달걀 한 판이 좀 전에 배달되었다. 이번엔 빼놓지 않고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블랙 파스타도 주문했다.

태어난 지 6개월에 헝가리에 가서 십여 년을 보낸 아들은 한국에 돌아온 후 가끔씩 헝가리 음식이 먹고 싶다는 얘길 한다. 어느 날은 파프리카가 크게 그려져 있던 감자칩이, 어느 날은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자주 먹던 블랙 파스타가 너무 생각난다고 그걸 먹으러 헝가리에 다녀오자고 조른다.

"아들, 헝가리에 파스타 먹으러 가는 비행기 값으로 한국에 있는 유명한 파스타집 백 군데 갈 수 있을걸? 엄마가 맛있는 파스타집 데리고 갈게."

"맛있는 집 말고, 헝가리에서 먹던 그 맛이 먹고 싶은 거예요."

아이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나도 안다.


 헝가리에서 지내는 동안 난 그렇게 한국 음식이 그리울 수 없었다. 특히 바다가 전혀 없이 내륙으로 이루어진 헝가리의 특성상 해산물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많이 비싸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상에 오르던 갈치조림이랑 조기구이, 주꾸미 볶음 같은 건 꿈속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들.


 한국 과자는 어떻고. 헝가리 한인 마트에서 팔고 있는 한국 과자는 지금도 다 외울 정도로 매번 똑같은 것들. 새우깡, 꼬깔콘, 콘칩, 알새우칩, 각종 깡류, 뿌셔뿌셔, 빼빼로, 칸쵸. 여기에 몇 가지 정도만 더하면 가게 안에 있는 과자의 전부다. 종류만 적은 게 아니라 일단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과자 하나 사려고 보면 정가 그대로는 비싸서 1+1만 골라 살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새우깡 같은 건 천원도 안 할 때였는데 그곳에선 슈퍼에서 파는 일반 과자가 100~300 포린트 사이였는데 한국 과자는 400 포린트 이상이었으니 기본 500원 이상 비쌌던 샘이다. 라면도 마찬가지였다. 초창기엔 한인마트가 로자 돔 한 군데에만 있어서 독과점이나 마찬가지.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하는 서글픈 을의 신세였다.


헝가리에 갈 당시 결혼한 지는 제법 지났지만 살림엔 초보라 할 줄 아는 음식이 거의 없어 <진짜 기본 레시피>라는 요리책을 챙겨 갔는데, 책 맨 앞에 나온 요리가 콩나물 무침, 국, 볶음이었다. 헝가리 사람들은 콩나물을 안 먹는다. 콩나물을 파는 곳은 한인 마트와 먼 구역에 위치한 아시아센터에 있는 중국 마트. 중국 사람이 키우는 콩나물이라 한국에서 먹던 그것과는 살짝 차이가 있었다. 대가 짧고, 덜 신선한 느낌. 그마저도 가격이 비싸서 한국에서처럼 흔히, 쉽게 구해서 하는 재료는 아니었던 샘이다. 또 다른 식재료는 시금치. 한국에서는 시장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식재료지만 헝가리에서는 중앙시장에 가서 비싸게 사야 하던 재료.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밑동에 핑크색 빛이 도는 꼬들꼬들한 시금치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잠깐 나왔다 들어가고 평소엔 아욱인지 헷갈릴 만큼 커다랗고 밍밍한 시금치뿐이었다.

김 구워서 밥만 싸 먹어도 맛있는 달래장. 봄철 되면 달래장이 너무 먹고 싶고, 냉이된장국도 생각났다. 미나리가 살짝 들어가 줘야 하는 나박김치, 동태탕 같은 요리를 할 때의 아쉬움이란. 한국에서 손쉽게 구하던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요리책 첫 장부터 좌절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반면 한국에 들어와 보니 헝가리에서 쉽게 구하던 식재료들이 아쉬울 때가 많다. 특히 고기. 헝가리에 도착해 처음으로 장본 날 소고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바닥만 한 등심 한 덩어리가 3000원. 한우처럼 마블링이 좋아 입에 살살 녹는 맛은 아니었지만 가성비는 단연 최고였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처럼 삼겹살을 즐겨 먹지 않아 삼겹살을 얇게 잘라서 파는 곳이 없었는데 지인 하나가 정육점 한 곳을 뚫어 얇게 잘라 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곳 사장인 러찌 아저씨는 단지 삼겹살을 얇게 썰어서 판매한다는 이유 만으로 한국 엄마들의 사랑을 독차지, 폭풍 주문에 대박이 났다.

 삼겹살 1kg에 8000원.

 소불고기 1kg에 15000원.

 10kg 이상 주문해야 배달이 가능해 몇 집이 나눠 공구를 한 날이면 삼겹살과 소불고기로 꽉 찬 냉동실에 한 동안 먹을 것 걱정 없이 든든했던 그때.


 여기서 종종 먹고 싶어 찾아보지만 파는 곳 찾기가 쉽지 않은 미니 양배추도 거기선 아주 흔했고, 특히 씻어서 나온 샐러드 채소가 한 팩에 이천 원 미만이었으니 샐러드 먹기 최상의 조건이었다. 샐러드 코너에 있던 일회용 소스류도 제법 맛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 마트만 가도 한쪽 색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치즈들. 솔직히 한국에서는 유제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 1200 원주고 사 먹던 래핑카우 크림치즈를 5000원이 넘는 가격을 주고 사려니 마트에서 장 볼 때마다 선뜻 손이 안 갈 때가 많다.

 헝가리에서는 우유도 아주 저렴했는데, 바이오 우유(한국에서는 유기농 우유)가 1300원 정도였고 일반 우유는 대부분 천 원 미만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마트에서 5000원 가까이하는 유기농 유유를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건 한국 물가에 아직 적응을 못해서일까?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 장을 보고, 있는 재료로 맛있게 음식을 만들려고 애썼던 그때. 만두도 직접 빚고, 족도 직접 삶았던 그때에 비하면 여기선 뭐든 손쉽게 구하고 배달시킬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다.

 그때의 그 정성과 열심을 잃어버린 그런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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