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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Dec 21. 2021

8. 한국을 사랑하게 된 헝가리언

헝가리에 있을 때 내 이름은 에스테르.

영어식 발음은 에스더인데 헝가리 식으로 발음하면 에스테르다.

 오늘 한국어를 공부하는 헝가리언들에 대한 뉴스가 메인에 걸려있어 뉴스를 보다가 내가 만난 몇몇 친구들을 떠올렸다.

http://naver.me/GCU3L9Zj

유럽 전역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히트를 친 이후 싸이의 굿즈를 시내 샵에서 종종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 해 지인들과 북유럽 크루즈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크루즈 내에서 열리는 댄스 페스티벌에서 싸이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모여 있던 외국인들이 일제히 말춤을 췄다.

"엄마, 사람들이 한국 노래를 어떻게 다 알아요?"

"그러게, 엄마도 놀랐어."


싸이가 포문을 열고, 이후 한국 아이돌들의 K-pop이 인기를 끌면서 헝가리 내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메트로에서 2NE1의 굿즈 가방을 멘 여학생을 만나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기도 하고, 바찌 거리에서 아이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듣고 다가온 영국 여행객은 자신이 샤이니의 팬이라며 샤이니의 나라 한국에서 온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테스코 마트에서 근무하던 직원 중 하나가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걸어 아이가 뛰어와 나를 불렀다.

"엄마, 저 누나가 한국말해요."

 "안녕하세요. 한국말할 줄 알아요?"

 "네. 한국말 예뻐요. 아기 귀여워요." 라며 환하게 웃었고, 장 보러 갈 때마다 마주친 인연으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국 문화원에서 개최하는 문화 행사에 참석한 수 백명의 헝가리언들이 나는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들의 노래에 맞춰 떼창을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K-pop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사랑에 빠진 수많은 헝가리언들 중 기억에 남는 세 명의 여인이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 남자와 결혼해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다. 문화원 프런트에서 근무하던 친구였는데, 아이 친구의 베이비시터를 할 때 자주 만났던 참 이쁜 R.

 "한국 사람들은 나이가 안 들어요."

 "그게 무슨 얘기예요?"

 "우리는 갑자기 늙는데, 한국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똑같아서 부러워요. "

 "아, 그런 걸 한국에선 동안이라고 해요. 안 그런 사람도 많아요."

 "한국사람 눈이 너무 예뻐요. 코도 예뻐요."

 "난 R 눈이랑 코가 훨씬 예쁜데요. 큰 눈망울에 오뚝한 콧날. 한국 사람들 중에 그렇게 되고 싶어 성형 수술하는 사람도 많아요."

 "나는 한국 코가 갖고 싶어요. 지금 코는 싫어요. 성형수술한다면 에스테르처럼 하고 싶어요."

 코가 낮은 나는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인지라 웃고 넘어갔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는 대략 알 것 같았다.


 또 다른 친구는 우리 아이의 베이비시터를 해주던 A이다.

 그녀 역시 한국 대학에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해서 한국에 들아와 학비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 헝가리어를 좀 가르칠 목적으로 베이비시터를 부탁했는데 2시간 동안 한국말로만 실컷 놀아주던 A. 헝가리어는 배우지 못했지만 A덕분에 아이는 헝가리언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변했다. 친근하고 따뜻했던,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인 우리 아이를 정말 많이 예뻐해 주던 A가 한국으로 간 이후 소식이 닿지 않지만, 밝은 에너지의 그녀는 분명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마지막 한 명은 F

 그녀도 A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베이비시터를 해주던 친구다.

 F와 함께 할 때는 아이가 헝가리어를 제법 할 때라 한국어보다는 헝가리어와 영어로 놀이를 했는데, 나와는 늘 한국어로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최대 고민은 한국에 있는 남자 친구.

 종종 연락이 안 되거나 늦은 시간까지 클럽이나 술집에 있는 남자 친구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며 조언을 구할 때가 많았다. 뭔가 살짝 어설픈 한국말이지만 의사소통은 다 되는 신기한 대화.

 집에 올 때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보드게임을 챙겨 오거나, 오랫동안 모아둔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던 그녀.

 아직도 아이 책장에는 그녀가 준 헝가리 책 몇 권과 헝가리 보드게임이 놓여있다.

남자 친구와 결혼 해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던 그녀는 그 꿈을 이루었을까?

한국을 향한 그녀들의 사랑 덕분에 오히려 우린 헝가리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녀들의 기억 속에도 우리와의 만남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좋은 추억이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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