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빵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소화기관이 좀 부실한 지 빵을 먹으면 잘 체하는 체질이라 의식적으로 덜 먹으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헝가리는 빵순이들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빵 천지다.
아침에 아이를 픽업해주고 마트에 가면 막 구운 빵들이 나온다. 마트에서 파는 빵들 중에 헝가리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들은 가격이 정말 착하다. 100원 이하. 대형 마트에서는 행사 때 40원짜리 빵을 팔기도 한다.
장 보러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고 계산대로 지나가는 골목에 빵 코너가 있다. 직원이 빵 커리어를 들고 나와 바스켓에 쏟아부으면 뜨끈뜨끈 김이나는 동그란 빵, 윗부분은 왕만두를 닮아 5개의 곡선이 중심을 향해 회오리치듯 모여 있고, 윗부분에 까만 아마씨가 콕콕 박혀있다. 가격은 39 포린트. 우리나라 돈으로 160원이다.
우리나라 제과점에서 파는 빵들은 대부분 부드럽고 달달한 편인데, 헝가리 빵은 밥 대신 먹어서 그런가 좀 거칠고, 담백하다.
올리브와 치즈가 박힌 치아바타도 가끔 구입하는데, 천 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 올리브 오일에 발사믹 식초를 섞어 듬성듬성 자른 치아바타를 콕 찍어 먹으면 찰떡궁합.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루아상도 하나에 400원이다. 제과점에서 쵸코가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크루아상이 천 원 정도 하니까 마트가 훨씬 저렴한 편. 반으로 갈라 집에서 만든 딸기잼을 듬뿍 바르고, 반대쪽엔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합체시켜 먹으면 다들 아는 그 맛. 달달하고 맛있는 그 맛.
한국에 와서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크루아상 하나에 4000원. 와우. 헝가리에서 먹던 것과 큰 차이를 모르겠는데 마트에서 파는 것의 10배, 제과점 빵의 4배 가격이라니. 우리나라 물가가 정말 무섭긴 무섭구나.
사실 헝가리가 물가가 많이 싼 편이다. 똑같은 크루아상이 파리에 가니 3유로, 4500원 정도. 파리 여행을 갔다가 크루아상 가격에 충격 한 번. 부동산 가격에 충격 한 번. 혀를 내둘렀는데, 요즘 우리나라 물가를 보니 만만치 않다.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고.
사설이 길었는데, 오늘 빵 얘길 시작한 건 우리 동네에 있던 100년 빵집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한국분들이 늘 100년 빵집이라고 불러 이름이 그런 줄 알았는데 가게 이름은 <Daubner Cukraszda>.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 마카롱, 헝가리 전통 빵, 수제 초콜릿을 판매한다. 여름이면 수제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12월엔 지인들의 생일이 많다.
케이크를 선물하려고 빵집에 들러 구경하다 보니 10년간 먹던 100년 빵집의 케이크가 생각이 났다.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상할 정도.
아이가 좋아하던 초콜릿 케이크, 내가 애정 하던 산딸기 케이크, 매번 같은 것만 먹기 지겹다고 시켜봤던 뽑기가 올려진 케이크, 오렌지향 가득했던 오렌지 트러플 케이크까지. 신기하게 모양과 맛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여름이면 아이와 손 잡고 찻길을 건너 가게 앞에 늘어선 줄 뒤에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 한 스쿱씩 콘에 담아 사 먹던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다.
빵을 좋아한다면, 헝가리에서 맛있는 빵집에 가보고 싶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길 추천하는 100년 빵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