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돌이 지나고 이사를 갔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한국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는 마리나 아파트.
우이 페스트 쪽으로 올라가는 두나 강변 쪽에 위치한 아파트라 선착장이 아파트 바로 위쪽에 있었다.
트렘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시내로 이동하려면 버스나 메트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계단 오르내리기가 불편해 주로 강변에 있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국회의사당이나 바찌 거리로 마실을 나가곤 했었다.
선착장엔 버스정류장처럼 칸막이가 되어 있고 배 시간표가 붙어있다. 배가 도착하면 직원이 고정 말뚝과 배를 두꺼운 로프로 단단히 묶어 선착장에 붙여 댄다.
차표를 보여주고, 배에 오르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당시엔 월 패스를 끊어 다니던 때라 한 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4만 원 정도 내고 티켓을 끊으면 한 달간 버스, 트렘, 메트로, 배를 횟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월 패스가 아니라면 350 포린트 짜리 버스 티켓을 내면 되고, 그것도 없으면 아저씨에게 현금으로 지불하면 되는데 티켓 가격보단 약간 비쌌다.
말이 유람선이지, 배 버스라 선착장마다 정착하고 멈추면 로프로 고정한 후 사람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 차로 20~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려야 도착할 정도.
왕복 3시간이 넘는 유람선 덕분에 버스 타고 바찌 거리에 나가서 쇼핑하고, 국회의사당 옆 놀이터에 들러 미끄럼 타고, 이슈트반 성당에 내려 꽃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소소한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오면 어느새 어둑어둑,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부다페스트를 눈 속에 담으며 아이와 먹던 파프리카 감자칩. (아이는 요즘에도 가끔 헝가리 감자칩이 너무 먹고 싶다고 얘기한다.) 간식을 먹으며 '에찌, 게뚜, 하롬......' 헝가리 숫자를 연습하던 그때가 종종 생각이 난다.
얼마 전 문대통령이 헝가리에 방문해 유람선 사고 추모공간을 방문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2019년 5월 29일 한국인 관광객·가이드 33명과 헝가리인 승무원 2명이 탑승한 허블 레아니 호가 두나 강에서 야경 투어 중 대형 크루즈선인 바이킹 시 긴 호에 부딪혀 전복된 사건. 이 사고로 한국인 26명이 사망·실종하고, 헝가리인 2명도 숨져 시신을 찾아 수습하는 데만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와 매일 다니던 곳. 많은 추억을 쌓았던 그곳에서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흐느껴 울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강 위에 놓인 수 십 개의 신발이 떠올랐다. 오고 가며 늘 보던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을 추모하며 만든 기념물.
전도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