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 이야기 말고 가족에게 몽글한 사랑을 남기고 간 분의 짧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제 정신을 일으켜 세우는 책만큼 지금도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분이거든요.
가을입니다.
지금은 곁에 안 계신 엄마를 떠올리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엄마는 원체 사랑이 많은 분이었어요.
제 첫째 딸인 큰손녀를 무한 사랑해 주셨습니다.
원래도 아기를 좋아해서 아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분이니 손녀사랑은 당연한 현상이었죠.
울 딸이 지금의 즤 남편과 연애할 때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께 인사시킨다고 남자친구를 외가에 데리고 갔답니다.
안 그래도 예뻐죽겠는 손녀가 투실하고 건장하며 우걱우걱 잘 먹는 손주사위를 데리고 왔으니 엄마 눈엔 하트가 폭포수처럼 쏟아졌겠죠?
여자친구의 외가까지 방문해서 먹는 식사이니 맛을 음미했을지는 모르지만 원래 먹는 거 하나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사위는 아주 잘 먹었답니다. 기쁘고 대견한 일을 너무나 열심히 해내는 손주사위 옆을 지키며 뚫어져라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을 느끼면서요.(불쌍한 우리 사위~)
식사를 다 마치고 셋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넘치는 귀여움을 주체하지 못한 우리 엄마는
급기야
손주사위가 될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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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딸은 허리를 반으로 꺾어 깔깔깔 넘어가고, 전 아연실색해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사위가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을까요?
같이 있었는데도 우리 딸은 미처 몰랐고 내적충격을 받은 사위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주 나중에 제 아내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손주사위가 맘에 들었기로서니 뽀뽀라니요!
우리 엄마는 정말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할머니네요.
잔소리쟁이 딸인 저는 엄마께 얘기하고 싶어요.
엄마가 아무리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물고 빠는 분이라 해도 아직 우리 가족이 되기도 전인 손주사위를 그렇게 놀라게 한 건 좀 심했다고 말입니다.
지금 엄마가 곁에 없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모녀의 웃음버튼입니다.
할머니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우리 딸은 지금도 할머니가 하라고 한 것들은 눈물을 머금고 해냅니다.
자기는 할머니가 꼭 잘 살 거라고 했다며 힘들어도 씩씩하게 살아내고, 자기 아들들 아침밥 잘 챙겨 먹이고요.
어르신들은 무조건 예쁘게 봐드리고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들, 할머니가 기뻐할만한 일들 다 기억해 가며 할머니를 추억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는 지금도 우리 안에서 개구쟁이처럼 명랑하게 살아계시네요.
오늘처럼 날씨도 흐리멍덩하고 마음도 가라앉는 날은 개구쟁이 우리 엄마생각이 많이 나요.
이런 날은 엄마한테 전화해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짓궂은 엄마 성정이 날씨의 무거움을 손사래로 훠이훠이 걷어버릴 텐데 말이죠.
손주사위에게 뽀뽀를 날린 엄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명랑한 엄마는 그렇게 잘 사셨습니다.